[임의진의 시골편지]르트루바유
한 시인이 쓴 산문집을 넘기다 만난 프랑스말 ‘르트루바유’. 이게 뭐냐면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찡한 재회 같은 걸 일컫는 말이란다. 사람뿐 아니라 장소에도 이 말을 붙여 쓸 수 있단다. 충청도 말로 화답하자면 ‘그릉가바유’. 내가 전에 한 번 맛본 좋은 느낌의 연장선. 사람도 자꾸 봐야 새로운 면을 알게 되고, 미운 정까지도 쌓이며 깊어지지. 오랜만에 친구를 다시 볼라치면 둘이 정들었던 장소를 물색하면 좋다. 적조했던 세월을 싹 잊고 일순 편안해지며 친근해진다. 당신과 나는 ‘로또 사이’여서 도무지 맞지 않지만, 장소에 대한 추억만큼은 르트루바유일 수 있지.
장성한 아이를 가끔 만난다. 좋아하는 요리도 같고, 밥 먹는 습관까지 닮아서 르트루바유를 연발하게 돼. 비유가 거시기하다만, 친일파들이 일본의 본부 요원을 만나면 생기는 ‘반가운 마음’도 비스무리하겠지? 으이그 그릉가바유. 남정네들이 보통 젊고 새로운 여성이라면 눈알이 쌩쌩 돌아가. 겪어보슈~ 정든 친구가 배나 살갑고, 나눈 세월은 또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요즘은 세상살이 속도가 급행열차. 너무나 재빨라서 제철 음식이나 제철 과일조차 도대체 때를 간파할 수 없다. 그래도 입추가 지나니 가을 전어 소식이 들린다. “어이 임목!(보통 목사에서 사를 빼고 이리 불러) 횟집에 전어가 나와부렀대. 잡수러 가야재잉.” 그 말에 전어를 숯불에 굽던 부모님 생각이 더럭 나더라. 아버지는 아궁이에서 타닥타닥 숯불을 모으고, 어머니는 전어에 소금을 뿌리던 모습. 후대의 아이들이 제철 생선을 구워 먹으며 시방 우리가 나누고 사는 르트루바유를 ‘그릉가바유’로 느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참 좋겠다. 이국적인 별난 음식보다 대대로 익숙한 전통 요리를 즐기며, 또 ‘당신 참 그 일 생각나?’ 하면서 이 땅에 같이 살며 나눈 동시대적 기억에 젖는다면 좋겠다. 나만의 바람일까.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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