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국장’이 싫어서 떠나는 주주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해외로 발길
분할·합병과정 소액주주 잇단 홀대
지배주주만 위하면 국내 증시 외면
2020년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주식시장을 뒤흔들었을 때 동학개미들의 진격은 대단했다. 외국인·기관 투자가들은 주식을 내던지기 바빴으나 개인들은 달랐다. 공포에 폭락한 주식은 중앙은행의 돈풀기가 시작되면 오른다는 것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2020~2022년 3년간 개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총 165조 9443억 원어치 주식을 사들였다. 그전 10년 동안 총 32조 원 규모의 순매도로 일관했던 개인투자자들의 대반전이었다. 국내 가계 자산의 흐름이 예금·부동산 일변도에서 금융투자로도 물꼬가 트이는 변환점이었다.
이후 동학개미의 ‘K증시’ 사랑은 서서히 식었다. 한국 증시는 유동성의 힘으로 2020년 반짝 올랐으나 이후 상승 동력을 상실하고 3년여간 횡보하고 있다. 그사이 미국·대만·일본 증시는 꾸준히 우상향하며 사상 최고치를 여러 차례 갈아치웠다. 한국 증시는 글로벌 증시 악재에 동반 하락하고 반등할 때는 찔끔 오르기를 반복했다. 저조한 수익률에 실망한 개인들은 이제 해외로 ‘주식 이민’을 가고 있다. 이들은 올 들어 국내 증시에서는 13조 원의 순매도를, 미국 증시에서는 96억 달러(12.7조 원) 이상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국내 자본시장에 자금줄이 됐던 개인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 증시의 힘이 떨어지는 원인,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이유는 복합적이다. 첨단기술 기업이 드문 데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은 점은 투자 매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세금, 관치 금융과 같은 정책의 불확실성도 디스카운트 요인이다. 무엇보다 일반 주주들의 권익 보호를 소홀히 하는 기업 거버넌스 문제도 큰 몫을 차지한다. 국내 증시에서는 ‘1원1표’ 원칙이 무시되는 상황이 잊을 만하면 반복돼왔다. 정부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 정책을 들고나왔지만 효과가 아직 신통치 않다.
최근 주요 그룹의 상장 계열사 간 분할·합병 추진이 일반 주주 홀대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두산그룹은 지난달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로 합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유사 사업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취지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연 1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는 두산밥캣을 지난해 매출 530억 원에 불과한 적자 기업 두산로보틱스에 합치면서 산정한 합병 비율에 일반 주주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소액주주뿐 아니라 기관투자가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운용사인 테톤캐피털의 한 펀드매니저는 “소식을 듣고 두산밥캣 지분을 대거 처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당국의 밸류업 행보에 대한 ‘뺨 때리기(slap in the face)’라고 보도했다.
금융감독원이 해당 기업의 분할·합병 증권신고서에 제동을 건 것 역시 논쟁거리다. 그간 이복현 금감원장의 거침없는 행보에 다 찬성할 수는 없지만 이 사안만큼은 감독 권한의 정당한 행사로 판단된다. 기업의 인수·분할·합병은 자본 구조의 변화가 수반되는 최상위 경영 판단이다. 상장사 경영진은 중대한 경영상 판단의 이유와 기대효과를 다수의 주주들에게 최대한 소상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합병 과정을 통해 신주 발행이 이뤄지므로 자본시장법에서 요구하는 증권신고서만큼 정확하고 자세히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 상장사들은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추상적이고 간략한 설명만 공시해왔다. ‘요식 행위’로 전락한 분할·합병 등의 공시는 투자 판단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당국과 정치권이 소액주주들을 의식해 과도한 규제와 개입에 나선다는 경영계의 불만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는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도 종종 나타난다. 단기 이익만을 노린 주주들은 과도한 주주 환원을 요구하며 미래 성장 재원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논쟁, 설득을 거쳐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은 한국 자본시장이 겪어야 할 성장통이다. 그러나 한국 자본시장의 현 상황은 한쪽에 무게추가 쏠려 있다.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익이 비례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일반 주주들에게는 해외 증시라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 “국장(국내 주식시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숫자가 증명하듯 개인들은 이미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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