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바다에 빠지다, 맥주에 빠지다
부산 수제맥주 브루어리가 맥주를 중심으로 한 ‘문화 공간’으로 본격 진화하고 있다. 이제 펍에서 단순히 맥주를 마시고 즐기는 것을 넘어 맥주와 지역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이벤트가 마을 주민과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제맥주 ‘성지’답게 수많은 양조장과 펍이 생성과 소멸을 지속하는 동안, 양조장 중심 커뮤니티 문화가 굳건히 뿌리 내린 것이다.
지난 5월, 부산에 새로 문을 연 수제맥주 브루어리 두 곳을 찾았다. 광안리 바닷가가 코앞인 ‘허거스’는 ‘부산다움’을 무기로 청년과 함께 지역 활력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부산 중구 중앙동 반달호텔 근처에 자리를 잡은 ‘마이행아웃’은 원도심에서 맥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마을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청년 양조사 셋, 부산에 모이다
- 검증된 국내 수제맥주 라인업
- 입문자를 위한 양조사들의 해설
- 코앞 광안리 바다의 정취까지 완벽
세 청년이 처음 만난 곳은 전북의 한 수제맥주 양조장이다. 각각 교환학생 시절, 유럽여행 중, 군대 선임과 외박 나갔다가 맥주의 매력에 빠져 양조사의 길을 택했다. “나만의 맥주를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을 이들은 공유한다. 세 청년은 이후 서울 강원도 등 서로 다른 양조장으로 흩어졌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온라인 회의를 열어 맥주에 관한 아이디어와 생활을 공유했다. “우리만의 맥주를 함께 만들자.” 세 청년은 함께 있을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
이미 포화 상태인 수도권은 패스. 지역에서 답을 찾길 바랐다. 어느 지역으로 갈 것인가. 첫 번째 답사 지역인 부산에서 실마리는 쉽게 풀렸다. 바다와 수제맥주, 그리고 관광객. 그렇게 서락원 박민철 이동휘 공동대표는 지난 5월 말, 수영구 남천동, 광안리 해변 끝자락 남천해변공원 앞에 ‘허거스’(HUGUS)를 열었다.
‘허거스’의 강점은 ①검증된 전국 수제맥주 라인업 ②수제맥주 입문을 돕는 세 양조사의 친절한 설명으로 압축할 수 있다. 다양한 수제맥주 양조장에서 근무한 이력을 살려 맛있는 맥주를 알아보는 안목은 자신있다. 바 테이블을 길게 배치해 매장을 찾는 고객과 소통에도 신경 썼다. 수제맥주를 잘 모르면 추천해 주고, 맛을 궁금해하면 시음을 권한 뒤 마셔보도록 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하면 고객도 자신과 잘 맞는 맥주를 즐길 수 있다.
‘허거스’는 부산에 기반을 두고 기여하며, 다양한 상생과 협업을 실현할 맥주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우선 맛과 품질이 검증된 전국 다양한 수제맥주를 셀렉션하고, 양조도 돌입했다. 자연스레 부산의 농산물에 주목하게 됐다.
그 결과 대저토마토는 깔끔한 에일맥주 ‘톰과에일’로, 기장 봉한꿀은 꿀향이 향긋한 브라곳 스타일 맥주 ‘꿀렁’으로 각각 출시됐다. 특히 ‘톰과에일’은 1차 판매량이 빠르게 소진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깻잎 당근 버섯 등을 활용한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도 순차로 선보일 예정이라 벌써 기대감이 높다. 일명 재미도 더한 ‘부산형 맥주’. 허거스는 “당근이나 깻잎 등은 오래 보관하기가 어려워 그해 농작물 상태에 따라 맛이 다르게 나와 품질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최대한 맥주 맛을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부산에서 청년들이 부산의 이야기를 자체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한 부산양조장네트워킹(가칭)도 고민 중이다. 다양한 분야 부울경 청년 크리에이터가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고 책 읽는 공간이라고. 허거스는 “지역 주민에게 늘 열려 있고, 부산이란 정체성이 피어나는 공간이면 좋겠다. 청년들이 모여 지역 콘텐츠를 만들고, 지역에 머묾으로써 지역 소멸도 막고 싶다. 부산 정체성을 가진 양조장으로 출발해 ‘부산다움’을 해외에도 알리는 게 목표다”고 했다.
★원도심에 주목한 전 자이언츠 통역요원
- 바닷가 아닌 중앙동에 자리한 펍
- 레트로 음악·동네술집 같은 정겨움
- 단골도 외국인도 만족하는 수제맥주들
부산의 수제맥주 브루어리는 광안리 해운대 송정 영도 등 바다 근처에 많다. 부산 상징 중 하나가 바다이고, 바다를 찾는 관광객이 쉽게 지역 수제맥주를 즐길 수 있다는 이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도심에서는 수제맥주 펍을 만나기가 상대적으로 힘든데, 지난 5월 중순 부산 중구 중앙동에 문을 연 ‘마이행아웃’은 이 같은 갈증을 해소해 준다.
‘마이행아웃’에 들어서자 1980~90년대 음악이 흘렀다. 음악과 어울리는 LP판 등을 활용한 인테리어도 눈에 띄었다. “유행을 좇지 않고, 늘 그 자리에 꾸준히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인테리어에도 신경 썼어요.” ‘마이행아웃’ 송주원 대표가 말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서 외국인 선수 통역을 담당했던 그는 선수들과 함께 여러 지역을 출장 다니며 해당 지역 맥주를 맛봤고, 수제맥주에 빠졌다. 이후 지역의 한 수제맥주 브루어리에서 펍매니저로 근무하며 고객 니즈를 파악하고 다양한 수제맥주를 섭렵했다.
이곳에서는 송 대표가 엄선한 10여 종 다양한 수제맥주를 맛볼 수 있다. 아직 직접 양조한 맥주는 없지만, 앞으로 포함시킬 예정이다. 지금은 동네 주민과 원도심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 탭리스트 절반가량이 ‘라거’인 것도 그 이유에서다.
수제맥주는 맛과 스타일에 따라 종류가 수백 가지인데, 고온에서 발효해 효모가 표면 위로 뜨는 에일과 저온에서 발효해 효모가 아래로 가라앉는 라거 등 크게 두 종류(자연발효인 람빅은 논외로 한다)로 나눌 수 있다. 에일은 과일향과 꽃향이 풍부하고, 라거는 ‘맥주’하면 연상되는 가볍고 청량한 맛이 특징이다. 단순 비교하면 에일의 종류가 라거보다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대부분 수제맥주 브루어리에서도 탭리스트 중 20~30%는 라거로, 나머지는 다양한 스타일의 에일을 선보이려고 한다.
‘마이행아웃’이 그 비율을 절반으로 맞춘 것은 ‘단골집’이란 상호명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동네 주민분도 많이 찾아오고, 식사 후 가볍게 즐기려는 고객도 많다. 가벼운 맥주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 라거를 바탕으로 수제맥주를 좀 더 가볍게 즐기도록 하고 싶었다”고. 대신 맥주의 다양성을 주기 위해 스카치 에일이나 고도수 에일도 포함했다. 수제맥주 입문자나 ‘맥덕’ 모두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라인업을 구성한 것이다.
‘마이행아웃’ 역시 원도심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매장 중앙에 널찍한 바를 배치한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다. 매장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기 쉽도록 했다. 추후에는 맥주 테이스팅 클래스 같은 다양한 이벤트도 열 계획이다.
★가볼 만 한 탭룸
- 낮맥 맛집 ‘원지’ 돌아온 ‘아울푸’
부산 영도 바다의 ‘부둣가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스페이스 원지’가 제격이다. 이곳은 수제맥주 펍이면서 대형 레스토랑이자 카페도 된다. 브런치부터 맥주까지, 낮부터 밤까지 즐길 수 있어서 ‘낮맥 맛집’으로도 이미 입소문 났다.
부두의 옛 물류 창고를 리모델링해 외관 등을 최대한 살린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대형 창으로 수리 중인 배들과 영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커피와 식사는 물론 맥주까지 즐길 수 있다 보니 가족 단위 고객도 찾는다. 도보 거리에 사우어·와일드양조장으로 송정 바다를 지키던 ‘와일드웨이브’의 레스토랑 콘셉트 브루어리 ‘사우어 영도’가 있으니 자리를 옮기며 맥주 한두 잔씩을 즐기는 ‘펍크롤’을 도전하면 어떨까.
광안리 바다 끄트머리에서 국내외 ‘맛있는 술’을 엄선해 소개하던 보틀샵 겸 탭룸 ‘아울앤푸시캣’. 팬데믹과 함께 사라졌다가 엔데믹과 함께 돌아왔다. 루프탑을 보유한 3층짜리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맥주는 물론 와인 위스키 등 국내외 맛있는 술을 모아놨다. 층별로 콘셉트가 다 다르다. 1층은 평소 접하기 힘든 다양한 주류를 캔이나 보틀로 만나는 술 애호가의 천국. 2층은 음식을 곁들여 좋은 사람과 담소를 나누기 좋다. 루프탑이 있는 3층에서는 요가 바비큐파티 등 맥주와 접목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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