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졸속 여론수렴으로 광화문 광장‘국가주의 공간’화 안된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려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서울시가 ‘형식’만 바꾼 국가상징공간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게양대는 아니지만 태극기를 활용한 상징물을 세우겠다고 한다. 시민 의견 수렴 결과, 찬성 의견이 59%로 반대보다 더 많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서울시가 제시한 ‘시민 의견’은 설문 과정도 허술하고, 접수된 의견도 500여건에 불과해 시민 의견을 제대로 대표한 것인지 의문이다.
서울시가 제시한 시민 의견은 지난달 15일부터 한 달간 홈페이지에 접수된 것이다.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 조성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총 522건이 접수됐다. 그중 찬성이 308건으로 59%, 반대는 40%(210건), 기타는 1%(4건)로 집계됐다. 가장 적합한 상징물로는 태극기가 215건(41%), 무궁화 11건, 나라문장 및 국새 각 2건, 애국가 1건 등이었다. 그러나 네이버나 구글 계정을 통해 받은 이번 설문은 한 사람이 여러 계정으로 참여할 수 있는 데다, 답변도 찬반을 묻는 객관식이 아니라 개인 의견을 서술하는 주관식인 것으로 나타났다. 찬반 응답률도 서술형 의견을 서울시가 임의 분류했다고 한다. 서울시 ‘입맛에 맞춘’ 설문조사라는 의구심을 살 만하다.
당초 ‘광화문광장 태극기 게양대’를 둘러싼 논란은 ‘100m 높이 초대형 국기게양대’라는 과도함에 대한 문제제기뿐 아니라 국가주의적 설계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자유롭고 개방된 만남의 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그런데도 오세훈 시장은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형식적 여론 수렴을 거쳐 재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놨다”면서도 “태극기를 활용하는 게 제일 설득력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 수도를 대표하는 광장이다. 따라서 서울 시민들만의 것이 아니며 서울시 차원의 문제로 볼 수 없다. 서울시민뿐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굳이 추진하겠다면 보다 정밀한 여론조사 설계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여론조사 기관에 맡겨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상, 이순신 장군상 등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념물이 넘친다. 이런 마당에 국가상징공간을 추가하겠다는 것은 광장의 존재 이유에 대한 보다 본질적 질문을 하게 한다. 모름지기 비어야 광장일진대, 왜 자꾸 채우려고 하는가. 게다가 그것이 애국주의를 강요하는 듯한 구조물이라면 광장을 찾는 시민들은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오 시장은 국가상징공간 조성 계획을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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