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에서 객관식 출제는 부적절하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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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담임을 맡은 적이 있기에 최근 한 드라마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수학처럼 정답이 명확한 과목을 제외하면, 상대평가를 위한 객관식 출제는 교과 목표 달성에 부적절하다.
단편적 정보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지만, 교사는 그것이 가능한 척 자기세뇌를 하며 객관식을 출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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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기고 ‘변호사들의 교육 이야기’ ③
김나은 | 변호사
고3 담임을 맡은 적이 있기에 최근 한 드라마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 정기고사에서 출제 오류로 감점을 받은 수강생을 위해 사교육 강사가 직접 학교로 찾아가 복수 정답을 인정받는다. 이 장면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사교육에 대한 선망을 보여준다.
사교육은 수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공교육의 목표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평가와 객관식 평가가 학교 교육을 지배하면서 공교육은 본연의 역할을 잃어버렸다. 시험에서 복수정답을 인정하면 상위권 학생들의 등급 변동에 따른 책임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그 스트레스는 특정 민원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한다.
수학처럼 정답이 명확한 과목을 제외하면, 상대평가를 위한 객관식 출제는 교과 목표 달성에 부적절하다. 수업에서는 창의적 사고와 열린 관점을 강조하면서도, 평가에서는 단편적 지식 암기 여부만을 측정한다. 이로 인해 중요한 내용은 출제하지 않으며, 학생들은 이를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또한, 객관식 평가는 옳고 그름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편협한 사고를 심어줄 위험이 크다.
단편적 정보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지만, 교사는 그것이 가능한 척 자기세뇌를 하며 객관식을 출제한다. 오류는 필연적이다. 이의제기 기간 민원이 없으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으면 동 교과 교사들과 검토해 대책을 마련하는 절차가 정형화되어 있다. 이의를 제기한 학생이 빈축을 살 가능성은 아주 비상식적인 주장이 아닌 이상 거의 없다. 드라마 속 학생에게 조언할 기회가 있다면, 본인이 직접 선생님에게 가서 정중하게 말하라고 할 것이다.
시험 출제 경향은 학교 교육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내신은 선택형 정기고사로 결정되고, 수시 전형에서 중요한 학생부 자료로 사용된다. 평가 시비와 민원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학교는 논란 없는 문제를 내고, 상위권 학생들을 서열화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다.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도 수능 스타일이 아닌 학교 내신평가에 공들이기를 꺼린다. 상대평가와 객관식 평가를 당연시하는 과정에서 공교육의 가치는 서서히 왜곡된다. 교과 특성에 대한 문제의식과 교사의 교육전문가로서의 소신도 어디론가 사라져 있다.
변호사시험 출제기관이 객관식 오답 시비를 피하기 위해 “다툼이 있는 경우 판례에 의함”을 조건으로 걸고 판례의 암기 능력을 검증하는 출제에 치중하듯, 학교에서는 수능 기출 문제가 판례의 역할을 한다. 고차 사고력을 요구하는 서술형이나 수행평가를 지향하던 교사조차 객관식만이 교사의 자의적 평가를 배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 굴복하고 만다. 교사는 안전하게 수능 기출문제를 약간 변형해 출제하고, 수업에서는 수능 출제 가능성이 없는 내용을 다루는 것을 금기시한다. 결국 고3 수능 교과 수업은 기출 문제 풀이 시간으로, 비수능 교과 수업은 자습 시간으로 변질한다. 그리고 사실적 지식의 암기나 주어진 조건에서 수렴적 사고를 거쳐 하나의 항목을 선택하는 훈련을 매우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사교육과 늘 비교될 것이다.
현재의 학교는 정시 대비를 위한 졸업장 획득의 수단이자, 수시 대비를 위한 생활기록부 챙기기의 장에 불과하다. 수능으로 대표되는 입시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공교육의 정상화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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