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곡 1607석 옮기던 배가 사라졌다…조선시대 출몰한 ‘세금 도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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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도둑'이라는 말이 신문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요즘은 세금을 엉뚱한 곳에 낭비할 때 주로 세금 도둑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조선시대에는 실제로 세금으로 낸 쌀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금 도둑들은 세곡(稅穀)을 팔아 버린 뒤 배를 침몰시켜 훔친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
당시 세금 도둑들은 미리 세곡을 빼돌리고 위험한 시기에 조운선을 몰아 침몰시킨 뒤 자연 재해 때문이었다고 변명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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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도둑’이라는 말이 신문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요즘은 세금을 엉뚱한 곳에 낭비할 때 주로 세금 도둑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조선시대에는 실제로 세금으로 낸 쌀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운(漕運)’ 즉 물길을 이용해 세금을 옮겼기에 가능했던 일인데, 이런 세금 도둑들은 조선시대 내내 끊이지 않았다.
당시 가장 대담한 절도 방법은 조운선 ‘고의 침몰’이었다. 세금 도둑들은 세곡(稅穀)을 팔아 버린 뒤 배를 침몰시켜 훔친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 정부는 고의 침몰이 입증되면 관련자를 사형시킨다고 경고했지만,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듯이 처벌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립해양박물관 기획전시 ‘조행일록, 서해바다로 나라 곡식을 옮기다’에서 전시 중인 조운선 침몰에 관한 수사기록(이하 사안(査案)·사진)은 ‘나는 자’였던 세금 도둑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사안’은 1880년 음력 6월, 경상도 좌조창(左漕倉, 현 경남 마산합포구)의 세곡 1607석을 싣고 서울로 가던 배 한 척이 흥양현(현 전남 고흥군)에서 침몰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수사 내용에 의하면 흥양현에 정박해있던 좌조창의 배는 강풍을 맞아 표류하다 불타 없어졌다. 물론 바닷길로 세금을 옮기다 보니 침몰 가능성은 늘 있었지만, 이 사건은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출발한 시기가 수상했다. 경상도 조운선은 3월 중순에 출발하여 5월 중순에 서울에 도착해야 했다. 태풍 부는 시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좌조창의 배는 음력 6월, 태풍의 위험이 한창일 때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배는 강풍에 휩쓸려 닻이 끊어졌고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당시 세금 도둑들은 미리 세곡을 빼돌리고 위험한 시기에 조운선을 몰아 침몰시킨 뒤 자연 재해 때문이었다고 변명하곤 했다. 그렇기에 수사 담당자도 사건의 고의성을 강하게 의심했다.
무엇보다 쌀을 한 톨도 건지지 못했다는 점이 의심스러웠다. 대개 조운선이 침몰하면 쌀을 건져 내는 과정에서 빈 쌀가마라도 찾아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세곡을 미리 빼돌리고 배를 불태워 증거를 없앤 것은 아닐까. 의심에 불을 지핀 것은 다름 아닌 뱃사공의 진술이었다. 사공 배치신은 배 주인인 손치도가 세곡 1607석 중 900석을 빼돌렸다고 증언했다. 그러니 더욱 고의 침몰로 의심됐지만, 수사 담당자는 혐의를 증명할 수 없었다.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진술만으로는 고의 침몰로 단정할 수 없었다. 결국 ‘사안’은 속 시원한 결말 없이 상급 기관의 추가 수사 지시로 끝을 맺는다.
뒷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지금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현재의 세금 도둑들은 어떤 방법을 쓰고 있을까? 시대는 발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같은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 국립해양박물관·국제신문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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