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재해에 산업계 ‘기후리스크 비상’ [심층기획-기후변화, 우리 삶을 바꾼다]

백소용 2024. 8. 2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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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경제·산업 현장도 변화
21C말 기온 4도 이상 상승할 경우
세계 GDP 최대 20% 상실 추정
저탄소·친환경 경제로 전환 시급
원자재 조달부터 제품 판매까지 악영향… 피해 최소화 총력전
IMF “기후변화, 상당한 경제적 영향
기상 충격 수용 거시경제 정책 조정을”
한은 “산업생산 증가율 최대 0.8%P ↓
”정부·산업계 함께 ‘적응협의체’ 발족
건설현장 혹서기 작업열외권 등 도입
폭염·폭우·겨울철 이상난동(暖冬) 등 일상화한 기후변화에 경제·산업 현장도 분주히 적응 중이다. 빠르게 진행 중인 기후변화가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 원자재 조달부터 제품 판매까지 기업의 생산활동 전반에 걸쳐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21일 정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평균기온 상승과 더불어 홍수, 폭염 등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가계와 기업의 물리적 손실이 증가하고 있다. 각국이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저탄소·친환경 경제로의 이행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기후변화는 상당한 경제적 피해를 줄 잠재력이 있으며 위험을 초래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IMF는 기후변화 과정이 많은 국가에 상당한 경제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에 빈번한 기상 충격을 수용하도록 거시경제 정책을 조정하라고 권고했다.

세계은행의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니컬러스 스턴은 지금의 온난화가 계속되면 21세기 말에는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4도 이상 상승한다고 전망했다. 또 이렇게 기온이 오르면 식량과 물 부족, 해수면 상승, 감염증 확산 피해 등으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20%가 사라진다고 추정했다.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는 것도 그 후폭풍 중 하나다. 스턴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화석 연료를 대체할 에너지 전환 등을 통한 경제 시스템 재구축에 성공하면 GDP 손실률을 1% 정도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기후변화가 경제·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을 연구한 결과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미국에서는 여름 평균기온이 1도 높아지면 주(州)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15∼0.25%포인트 감소한다는 내용의 논문이 나온 바 있다. 또 전 세계적으로 연평균 기온이 13도보다 높은 국가는 이로 인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이상기후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01∼2023년 이상기후 충격이 12개월 후 산업생산 증가율을 0.6∼0.8%포인트 하락시켰다. 기후변화가 노동 생산성을 떨어뜨려 농·축·수산물 생산량을 감소시키고, 조업 중단이나 원자재 수급 차질, 재고 유지비용 증가 등을 불러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결과로 풀이된다. 농림어업 생산은 최대 1.1%, 건설업은 최대 0.4%포인트 각각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대한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았으며, 전기·가스·수도산업은 이상기후 충격으로 사용량이 확대되면서 성장률이 상승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더불어 이상기후로 식료품 물가상승이 9개월 정도 지속하는 것으로도 조사됐는데, 특히 지난해 이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약 10%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도 최근 평균기온과 강수량이 증가했고, 가뭄·폭염·태풍 등의 이상기후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가 강해지고 있다. 또한 정부와 산업계는 이에 따른 대응책 마련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산업계와 함께 발족한 기후 위기 적응협의체가 기후변화 대응의 상징적인 조직이다. 협의체는 소비재, 채광·광물가공, 인프라, 대체에너지, 자원 변형, 운송 등 6개 부분으로 10개 협의체(의류섬유, 가정용품, 비철금속, 철강, 에너지, 제지, 석유화학, 기계, 물류, 자동차)로 구성됐다. 이들은 해당 업종의 기후변화 취약성 및 리스크를 파악하고 적응 대책을 마련 중이다.

윤석열정부는 이 밖에도 기후 위기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추진 중이다.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국가 기후 위기 적응 강화대책’ 마련 등이 그 성과로 꼽힌다. 기후변화에 따른 인명 피해 최소화 및 기후 위기 재난 대응을 위한 혁신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성북구 장위4구역 주택정비사업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이 현장에 마련된 무더위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산업 현장 모습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업종 특성상 외부 현장이 많은 곳의 변화 속도가 높다.

현대건설은 고용노동부의 폭염·호우 대비 안전관리 가이드 특별대응지침에 따라 9월 말까지를 ‘온열질환 예방 혹서기 특별관리기간’으로 지정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 회사는 여름철 폭염 단계별 작업관리 기준을 관심·주의·경고·위험 4단계로 구분해 옥외 작업과 휴식시간을 관리 중이다. 건강 상태에 이상을 느낀 근로자가 작업 열외를 요청하면 바로 작업에서 제외하고 잔여 근무시간에 대해서도 당일 노임 손실을 보전해 주는 ‘작업열외권’과 근로자가 위험을 감지하면 스스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 등이 핵심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폭염주의보 때는 50분 작업·10분 휴식, 폭염경보 때는 45분 작업·15분 휴식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근로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작업중지권을 요청하면 즉시 발동한다.

GS건설은 폭염주의보 발효 시 전 근로자에 보랭제품을 지급하고 시간당 10∼20분 반드시 휴식하도록 관리한다. 폭염 시간대를 피하는 탄력근무제도 도입했다.

포스코는 지난 6월부터 기상청이 제공하는 체감온도에 각 공장별 온습도를 측정한 ‘현장 실측 체감온도’를 반영해 작업 및 휴식시간을 조절한다. 기상청 체감온도와 현장 실측 체감온도 중 높은 온도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포스코는 유난히 더운 올해 여름 특성을 감안해 기존 7∼9월 두 달간 운영됐던 온열 질환 특별강조 주간을 올해는 6월부터 9월 중순까지로 대폭 확대하기도 했다.

유통업계도 폭염 피해 방지 등을 위한 조치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롯데마트·슈퍼는 점포의 사무실과 휴게실 등의 냉난방 설비를 점검, 노후 설비를 신규 설비로 교체했다. 더위가 제일 심한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옥외 작업도 금지한다. ‘넥밴드’, ‘쿨토시’, ‘아이스 조끼’ 등 보랭 장비 3종을 물류센터와 온열 질환 취약 근로자에게 지급했으며, 이동식 에어컨도 현장 곳곳에 설치했다고 이 회사 관계자는 말했다.

빙과류와 보양식을 제공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은 직원들을 위해 매일 빙과류 3만5000개를 지급한다. 수시로 직원들이 얼음을 먹을 수 있도록 제빙기도 들여놨다.

황계식·백소용·이강진·권이선 기자, 재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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