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티메프 사태, 일도양단의 해결책은 없다
티몬·위메프(티메프)의 정산 지연사태가 벌어진 지 한 달이 넘었다. 티몬·위메프에 입점해 있던 판매자나 물건 값을 결제해 놓고 피해를 본 소비자에 대한 보상대책을 놓고 정부와 큐텐그룹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중소규모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폐업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티메프 사태 이후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각종 투자논의와 신사업 구상이 올스톱됐고, 중소규모 쇼핑몰들은 버티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대기업 산하의 일부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우리는 안전하다"며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니 전자상거래를 대하는 소비자들의 불안과 혼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정부는 티메프 사태 이후 부랴부랴 규제방안을 내놓고 있다. 소비자가 결제한 금액을 판매자에게 정산하는 주기를 줄여 법에 명시하고, 전자상거래 업체의 운영자금과 정산대금은 회계를 분리하겠다는 명쾌한 대안이 나와 있다. 그야말로 칼 한번 휘둘러 단번에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일도양단'의 선명한 대책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각오가 보인다.
"전자상거래는 일반 제조업과 다릅니다. 소비자와의 신뢰관계가 절대적입니다. 지금 누가 티몬·위메프의 서비스를 다시 이용하려 하겠습니까. (티몬·위메프가) 회생신청을 했지만 회생할 수가 없어요." 지난 7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티메프 사태를 질타하면서 지적한 발언이다. 정곡을 짚었다. 전자상거래의 핵심은 '신뢰'다. 물건을 골라 결제하면 택배상자가 반드시 온다는 믿음이 있어야 장이 서고, 거래가 이뤄진다. 이것이 전자상거래 산업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 신뢰를 잃었으니 티메프의 회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티메프 대책에 정작 중요한 '신뢰' 대책이 안 보인다. 신뢰가 전자상거래 산업의 핵심인데, 그 핵심 대책이 빠졌다. 정부가 지금 가장 먼저, 가장 근본적으로 할 일이 소비자의 신뢰를 찾을 대책 아닐까 싶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해도 지난 한달간 폐업한 중소 전자상거래 업체가 7~8개는 된다. 소형 전자상거래 업체라도 한 업체가 폐업하면 소비자와 판매자를 합쳐 200억~500억원 사이의 피해가 발생한다. 정부가 이 피해자들의 불신과 분노를 차곡차곡 쌓으며 규제정책 만들겠다고 몰두할 때는 아니다 싶다. 그래봐야 이미 신뢰를 잃은 중소규모 쇼핑몰에 누가 물건을 사러 가겠는가.
우선 정부는 현재 전자상거래 산업 실태부터 면밀히 살폈으면 한다. 특정 기업을 때려잡으려 살피는 것이 아니다. 어느 부분에 돈줄이 막혀 당장 소비자나 판매자가 피해를 입을 만한 급한 구석이 있는지 점검해 줬으면 한다. 소비자가 안심하고 계속 거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서 제조업과는 완전히 다른 전자상거래 산업의 구조도 이해했으면 한다. 소비자의 신뢰가 핵심이니, 그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떤 정책을 쓰면 되는지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줬으면 한다. 또 국경이 없는 전자상거래의 특성에 맞춰 국내외 기업이 차별받지 않는 산업정책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
전자상거래 산업은 제조업과 다르다. 일도양단의 특단책으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산업의 핵심이 되는 소비자의 신뢰와 기술적 지원, 금융의 도덕성, 국경을 초월한 제도의 투명성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산업이다.
그러니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급한 대책부터 찾고, 전문가들과 함께 산업 특성에 맞는 정교한 대책을 만들겠다는 세심한 정책설계를 해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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