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구쯔하오에 작년 패배 설욕하며 우승
실수는 반복되지 않았다. 지난 1년간 가슴을 짓눌렀던 아픔을 후련히 씻어냈다. 왜 신진서가 세계바둑 1인자인지 확인시켜 주는 결승전이었다.
신진서(24) 9단이 제2회 란커(爛柯)배 세계바둑 오픈전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1일 중국 취저우(衢州) 국제바둑문화교류센터 대국장서 거행된 결승 3번기 제2국에서 디펜딩 챔피언 구쯔하오(26) 9단을 191수 만에 흑 불계로 제압, 2연승으로 우승을 장식했다. 6전 전승 무패의 퍼펙트 우승이다.
지난해 이 대회서 우승 8부 능선을 넘고도 준우승에 그쳤던 전철을 피하려는듯 신진서의 출발은 매우 신중했다. 그리곤 두터움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잡아나갔다. 박정상 TV해설자는 “중반 상변 전투 과정에서 신 9단의 착점이 14번 연속 인공지능의 선택과 일치했다”며 감탄했다. 이후 줄곧 앞서가던 신진서는 좌중앙 마지막 전투에서 위기를 맞았으나 초읽기에 몰린 상대 실착을 추궁하며 승리를 굳혔다.
두 기사 간의 상대전적은 신진서 기준으로 최근 6연승 포함 13승 6패로 벌어졌다. 작년 란커배 패배 후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자국 랭킹은 신진서가 56개월 연속 1위, 구쯔하오는 7위.
무엇보다 신진서가 최근 국제무대 부진을 마감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신 9단은 올해 초 LG배(28회) 제패, 농심배 6연승 마무리 등 기세를 이어가다 갑자기 춘란배, LG배(29회), 잉씨배 등 메이저 대회서 연속 초반 탈락했다. 잉씨배와 LG배는 그가 보유 중인 타이틀이어서 아픔이 더했다.
위기감을 느낀 신진서는 이후 모든 일과와 일정을 이번 란커배 결승에 맞췄다. 구쯔하오의 대국보를 AI(인공지능)으로 샅샅이 해부했다. 결승 직전 열린 중국 갑조리그 출전을 고사했고, 빠른 적응을 위해 당초 계획보다 하루 일찍 현지로 출발했다. 홍민표 대표팀 감독이 동행, 컨디션을 관리했다.
우승이 결정된 뒤 신 9단은 “이번 대회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는데 우승하게돼 기쁘다. 지난해 아쉬움을 털어내 다행이고, 성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
이번 결승은 국제 바둑대회 사상 세 번째 ‘리벤지 매치’로 기록됐다. 1993년 제6회 후지쓰배 결승서 유창혁에 패한 조훈현이 이듬해 7회 결승서 설욕한 것이 첫 기록. 이어 2011년 23회 TV아시아선수권서 쿵제에 패한 백홍석이 다음해 결승서 되갚았다.
세계 6대 메이저 타이틀 분포에도 변화가 왔다. 신진서는 LG배, 잉씨배, 란커배 등 3관왕으로 전체의 절반을 점유하게 됐다. 나머지는 변상일(춘란배), 딩하오(삼성화재배), 리쉬안하오(몽백합배)가 한 개씩 점령 중이다. 국가별로는 한국이 4개, 중국 2개다.
신진서의 통산 세계제패 횟수는 7회로 늘었다. 이창호(17회), 이세돌(14회), 조훈현(9회), 구리(8회), 커제(8회)에 이은 6위다. 1개만 추가하면 중국 최다 1위 기사들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신진서가 어린 시절부터 1차 목표로 설정했던 메이저 두 자릿수 우승에도 3개 차이로 접근했다.
구쯔하오는 2017년 삼성화재배, 지난해 란커배에 이어 메이저 세 번째 우승을 노렸으나 물거품이 됐다. 이번 란커배 우승 상금은 18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3억 4000만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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