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국회판 사회적 대화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강요했다.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한국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은 사회적 대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1998년 1월 노사정위원회가 대통령 자문기구로 출범했다. 노사정위는 재벌개혁, 실업대책, 노동기본권 신장,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방안 등을 담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내놓았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98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여건 속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양보로 노사 간에 대타협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평가받는 해외 사례가 적지 않다. 스웨덴의 살트셰바덴 협약, 네덜란드 폴더 모델 등이 대표적인 예다. 김 전 대통령도 노사정위가 그런 역할을 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노사정위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명칭이 바뀌는 동안 그런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1999년 2월 대규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반발해 탈퇴하면서 반쪽이 됐고, 한국노총도 탈퇴와 참여를 반복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경사노위는 유명무실한 조직이 됐다. 김문수 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경사노위원장으로 재직한 22개월간 대면 회의를 단 한 차례만 주재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의제가 쌓여 있지만 논의는 겉돌고 있다.
최근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중심의 사회적 대화를 제안하고 나섰다. 우 의장은 21일 민주노총을 방문해 “국회가 사회경제적 대화의 플랫폼으로 거듭나서 노동, 환경, 산업전환 등 다양한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새로운 대화의 미래 모델”이라고 했다. 민주노총도 우 의장 제안에 부정적이지 않다고 한다. 우 의장은 민주당 원내대표이던 2018년에도 국회 내에 여야와 모든 사회경제 주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연대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국회판 사회적 대화’는 우 의장의 오랜 의제인 셈이다. 그의 제안이 꽉 막힌 사회적 대화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이 될지 주목된다.
정제혁 논설위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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