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검찰 정권의 무너진 ‘법 앞의 평등’

기자 2024. 8. 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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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매체 서울의소리는 지난해 11월 김건희 여사가 ‘DIOR’라고 적힌 쇼핑백을 받는 듯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검찰은 최근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해 청탁금지법 위반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소리 화면 갈무리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11조)고 선언한다. 누구든 성별·종교·신분에 의해 차별받지 않으며,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정수를 담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법 앞에 평등한가. 혹여 “누더기를 걸치면 숭숭 뚫린 구멍으로 티끌만 한 죄악도 들여다보이지만 대례복이나 모피 외투를 걸치면 모든 게 감춰지”(<리어왕>)는 그런 사회는 아닌가.

국민 셋 중 두 명은 ‘한국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여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로 ‘사법·행정’에 대한 불신(56.7%)이 가장 컸다. 불공정 원인으로는 ‘기득권의 부정부패’(37.8%)가 첫 순위로 꼽혔다. 시민들이 느끼는 법은 그 위에 군림하는 ‘특수계급’ 때문에 삐뚤빼뚤하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국가의 철학>에서 “한국 현대사는 법 위에 서려는 통치자와 (그) 지배층을 법 아래 놓는 고투의 과정”이었다고 했는데, 이 결과대로면 한국 사회의 퇴행은 심각하다.

“법은 귀한 사람이라 하여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나무가 휘었다고 굽혀가며 재지 않는다”(한비자)는데 지금 법은 권력 앞에서 너무 쉽게 휜다. 바람 앞 미리 눕는 풀보다 연약하다.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4년 넘게 끌던 검찰은 여론에 밀려 조사에 나서면서 검찰청 대신 권력에 편안한 안가 출장조사를 택했다. 명품백을 준 이는 검·경·국민권익위원회가 총출동해 수사·조사 후 기소까지 됐는데, 받은 김 여사는 ‘위법 없음’이다. 전 정권 일엔 득달같이 탈탈 털던 감사원은 대통령 집무실·관저 용산 이전 감사를 다시 7번째 연장했다. 면죄부도 방탄도 눈치껏 해야 탈이 없을 텐데, 김 여사 앞에선 서슬 퍼런 사정기관들이 순한 강아지마냥 아첨하기 바쁘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헌법 7조)여야 할 공직은 ‘측근’들의 권력 사유화 놀이터가 됐다. 쇄신은커녕 찔끔 인사뿐인 것을 보면 이미 인사 능력을 잃은 것 같지만, 백번 양보해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굳건함은 불가사의다. 이태원 참사는 물론 잼버리 파행, 오송 참사, 잇단 행정 전산망 먹통 사태까지 이상민 행안부의 2년2개월은 무능 자체였다. 역대 어느 장관이 이러고도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나. 오히려 ‘이상민 장관 경질’ 보고서를 올린 여의도연구원장이 대통령의 격노로 잘렸다는 후문이 여권에서 공공연히 나온다. 9개월 국방장관, 7개월 안보실장을 만든 외교안보 라인 연쇄이동은 김용현 국방장관 만들기 때문이란 여권 핵심 관계자 전언도 있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들이다.

세번째는 국가 말기에나 나타난다는 세금의 혼탁이다. 세제는 민생에서 ‘법 앞의 평등’을 구현하는 수단이다. 그 원칙이 ‘공평과세’이고, 이는 법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세금 정책으로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해진다면 바른 것이 아니다. 부동산부터 상속세, 금융투자소득세로 이어진 윤석열 정부의 감세가 하나같이 모피 외투를 걸친 이들을 웃게 한다. 당장 상속세 감세안으로 대통령실·기획재정부·한국은행 주요 인사 셋 중 하나는 억대 혜택을 누린다고 한다. 김 여사도 상속세 4억5000만원을 덜 내게 된다. 부자 카르텔의 부패한 ‘셀프 감세’가 아닌가.

마지막으로 법이 굽으면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 한 의인들이 고난을 당한다. 김 여사 명품백 조사를 총괄한 권익위 국장은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고, 젊은 해병의 죽음을 둘러싼 외압을 막으려던 해병대 수사단장은 항명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부패방지 전문가였던 그 국장은 지인들 전언에 따르면 신념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마약조직과 인천공항 세관원들의 유착 의혹을 수사하던 경찰은 “용산에서 아주 안 좋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좌천됐다. 모두 권한을 남용한 최고권력의 격노와 외압이 어른거린다.

윤석열 정부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사회적 믿음은 이처럼 비극의 독백이 되었다. 헌법상 권리는 조롱받으며 권력자들 전리품으로 전락했다. “공직자가 권력에 굴복하면 정의가 죽고, 힘없는 국민은 위태로워진다”고 한 윤 대통령이기에 이 상황은 더욱 기이하며 모질다. 시인 김지하는 1970년 ‘오적(五賊)’에서 법 위에 군림하던 다섯 권력자를 발가벗겼는데 해학에 담긴 시적 과장만 빼고 보면 지금과 얼마나 다를까.

법은 강한 자에게 추상같고, 약한 자에게 너그러운 봄바람 같아야 한다. 그것이 인정이 있는 ‘사람의 법’이다. “3년은 너무 길다”는 말이 이제는 웃어넘겨지지 않는다. 권력은 염치가 없고, 법은 무력하다. 윤석열 정부 5년 후 한국 사회의 모습이 어떨지, 두렵다.

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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