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는 범죄인가?···관객에 찬반을 묻다
독일 희극 작가 페르디난트 폰시라흐 작품 번역
'조력사망' 둘러싼 전문가들 논쟁을 토론극으로
공연 중간 벌어지는 관객 투표 결과로 최후변론
'안락사·존엄사' 관련 사회적 논쟁 불 지필듯
누군가 스스로 죽기를 원할 때 의료진이 약물을 사용해 그를 도와준다면 그것은 살인일까. 국내에서는 논란은커녕 아직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조력 사망(안락사·존엄사)’을 둘러싼 찬반 투표가 다음 달 서울 대학로에서 이뤄진다. 투표가 열리는 곳은 정책 결정자들이 모인 국회나 토론장이 아닌 한 연극 무대.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수많은 논쟁을 낳고 있는 페르디난트 폰 시라흐(Ferdinand von Schirach)의 희극 ‘고트(GOTT)’ 이야기다.
국내에서 초연하는 ‘고트’는 류주연 연출이 이끄는 극단 산수유의 22번째 정기 공연 작품이다. 류 연출은 우연히 일본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는 ‘고트’를 접하고 이를 국내에 들여왔다. 지난 19일 서울경제신문과 서울 대학로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류 연출은 “독일 헌법재판소는 2020년 ‘조력사망 금지법’을 위헌으로 결정했지만 이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 연극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을 이어가는 낯선 문화를 한국 관객들이 경험해 봤으면 한다”며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
‘고트’는 리하르트 게르트너가 제기한 ‘사망 청원’에 대한 공청회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 속 게르트너는 아내와 사별한 후 삶을 이어갈 의지가 사라졌다며 조력 사망을 청원했지만 독일 의료 연방기관은 이를 거절한다. 작품은 게르트너의 청원을 두고 의사, 변호사, 법의학자, 종교인 등 전문가들이 윤리위원회에서 벌이는 팽팽한 논쟁을 토론극 형식으로 보여준다.
작품의 주제가 민감한 만큼 극본은 무척 섬세하다. 변호사 ‘비글러’역을 맡은 예수정은 극중에서 “자기 선택사, 일반적으로 자살이라고 하는 이 행위는 우리 법에서 범죄가 아니다”며 “살인죄는 항상 타살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해 의사 슈페르링은 “선택사를 조력하는 것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이때 언급되는 ‘선택사’는 이번 연극 무대를 통해 공연에서 처음으로 사용된다. 국내에서는 자신이 선택해 의료진의 도움으로 죽음에 이르는 행위를 ‘존엄사’ 혹은 ‘안락사’ 정도로 표현한다. 이를 ‘자살’이라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 연출은 “존엄하지 않은 죽음은 무엇인가, 자연사는 존엄한 죽음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존엄사’라는 단어의 대안을 고심한다. 이 같은 연출의 고뇌는 번역가의 깊이 있는 연구를 만나 빛을 발했다. 독일에서 유학 중인 번역가 오아인씨가 번역 과정에서 ‘선택사’라는 용어를 찾아내 제작진에게 제안한 것. 류 연출은 “독일어는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행위를 칭하는 단어가 그 의도와 결과에 따라 굉장히 다양하며, 실제로 원작도 자살과 선택사를 구분하고 있다”며 “번역가가 ‘선택사’라는 표현을 찾아 채택했는데, ‘스스로 선택했다’는 개념만 들어가는 표현이라서 더 정확하게 느껴졌다”했다.
오는 9월 6일부터 15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소극장에서 열리는 ‘고트’의 티켓은 이미 전석 매진이다. 공연장에 오는 관객들은 ‘조력 사망’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토론을 지켜볼 수 있다. 작품은 잠깐의 휴정 형식을 통해 인터미션 시간을 갖는데, 그 시간에 게르트너의 조력 사망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관객 투표가 열린다. 이후 투표 결과에 따른 위원장의 최후 변론이 이어지면서 공연이 끝난다.
약 열흘간 치러질 투표는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조력 사망 찬반 투표인 셈이다. 과연 관객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까. 류 연출은 “이 작품은 우리가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생각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공연을 오기 전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한번 정도 생각하고 와서 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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