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건전 재정이라는 어려운 길

2024. 8. 2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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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3분의 2가 거의 지나가는데, 연초의 불확실성이 크게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과 중동의 확전 가능성 등으로 세계가 뒤숭숭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풍요로움이 영아 생존율, 평균수명, 문해율, 맑은 물과 전기의 이용 가능성 등 인간다운 생활의 많은 면과 연관이 깊기 때문에 1인당 국민소득 같은 지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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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걷고 덜 쓰겠다는 기조
쉽지 않지만 중요한 함의
복지와 자유 사이 균형잡고
지출도 양보다 질에 초점
돈 풀어 민심사는 일 경계를

한 해의 3분의 2가 거의 지나가는데, 연초의 불확실성이 크게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과 중동의 확전 가능성 등으로 세계가 뒤숭숭하다. 자본시장은 미국 고용지표 악화에 크게 출렁였다. 주요국의 통화정책 행보와 반대로 가던 일본은 시장의 혼란에 땔감을 댄 셈이 되어 주목받았다.

시절이 수상하고 정보가 쏟아질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되짚어야 한다. 특히 정부는 일관된 원칙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이를 국민에게 잘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세금을 걷고, 계획한 지출을 하고, 입법부에 협조하여 규제를 만들고 집행한다. 따라서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은 1차적으로 세제개편안과 예산안에 드러난다. 둘 다 현재 초미의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에서 강조하는 기조는 '건전 재정'이다. 구체적으로는 덜 걷고, 쓰기는 더 쓰지만 덜 많이 쓰겠다는 것이다. 복지 지출을 비롯해서 법으로 정해져 있는 정부 지출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세금을 덜 걷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결정이다. 세부적으로는 구조적인 개선을 담고 있다는 의의도 있다. 덜 많이 쓴다는 것도 정권이 재량적으로 쓸 부분을 줄여야 해서 보통 의지로 해낼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건전 재정 기조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전 정권과의 차별성을 넘어 원칙적으로 중요한 함의가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보호이고, 국가의 목표는 현대사회에서 복지국가다. 복지국가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짐을 선언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인간 존엄성의 정수인 자유 사이 충돌에서 바람직한 균형을 잡으려는 국가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씀씀이가 작을수록 개인의 자유에 더 무게를 두는 것으로 해석된다. 세금으로 경제적 자유가 뺏기는 것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가의 목표가 단순하지 않다 보니 국가에 대한 평가 역시 기업에 대해 수익성을 보는 것처럼 단순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풍요로움이 영아 생존율, 평균수명, 문해율, 맑은 물과 전기의 이용 가능성 등 인간다운 생활의 많은 면과 연관이 깊기 때문에 1인당 국민소득 같은 지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소득 불평등 정도를 재는 지표들을 보완적으로 쓰면 큰 그림에서 국가가 목표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놀라운 속도로 늘어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행정 데이터에 근거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도 지난 20년간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소득상 하위의 근로자 소득이 상위보다 더 높은 비율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세계 경제의 흐름에 편승하여 위아래로 돈 벌 기회가 확대된 한편, 소외된 계층에 대한 복지제도를 꾸준히 개선한 결과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랬지만, 인구가 감소하는 것처럼 우리 경제도 정점을 지난 것 같다는 우려가 많다. 좋은 일자리가 빠르게 늘지 않으니 약간의 기득권이라도 지키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정부는 미래 성장이라는 지향점을 갖고 갈등을 조정하면서 정부 지출은 '양보다 질'로 효과를 높이는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 일단은 정부가 나서서 키워야 하는 핵심적인 기술과 산업에 쓸 돈은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복지 지출이 선순환의 씨앗이 되는 시스템을 고민할 때다.

이럴 때 돈을 풀어 민심을 사는 쉬운 길을 가면 재정건전성은 나락으로 간다. 빚더미 일본 정부가 속수무책인 것에서 크게 배워야 한다. 그 쉬운 길은 가랑비에 옷 젖듯 국민이 정부에 예속되는 길임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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