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못 푼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 청문회···밝혀진 것과 남은 의문

전현진 기자 2024. 8. 2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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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이 내게 전화해 ‘용산이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백해룡 경정)

“제 직을 걸고 말씀드리는데 (대통령실로부터 연락 받은 적) 전혀 없다.”(김찬수 총경)

지난 20일 인천공항 세관이 연루된 마약 수사 외압 의혹에 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청문회에서는 치열한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증인석에 나란히 앉은 증인들의 진술이 180도 엇갈리는 장면이 국회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를 포함한 증인 21명 출석해 10시간이 넘도록 논쟁을 벌였지만 엇갈리는 주장 속에 외압 의혹의 진실은 명확히 규명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문회를 통해 밝혀진 사실과 여전히 남은 의문은 무엇인지 정리했다.

엇갈린 진술에 “거짓말 탐지기라도 해야”
마약 사건 수사 대통령실 외압 의혹과 관련해 정반대 주장을 하고 있는 백해룡 경정(전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왼쪽)과 김찬수 총경(전 영등포경찰서장·오른쪽)이 지난 2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청문회에서 번갈아가며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연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청문회’에는 외압설을 처음 주장한 백해룡 경정(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 지난해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백 경정에게 전화를 걸어 ‘용산’을 거론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찬수 총경(전 영등포경찰서장·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등 경찰 관계자들이 대거 증인으로 출석했다.

청문회 초반부터 백 경정과 김 총경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의원들의 질의도 두 사람에게 집중됐다. 수사로 따지면 대질신문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진실은 명백히 가려지지 않았다. 백 경정은 김 총경이 자신에게 전화해 수차례 ‘용산’을 거론했다고 주장했지만 녹취 등 입증할 자료는 제시하지 않았다. 김 총경은 백 경정에게 전화를 건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통화 중 ‘용산’을 거론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당시 영등포서 수사팀은 언론 브리핑 뒤 세관을 압수수색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는데 브리핑 뒤 압수수색 나서면 증거인멸 우려가 있고, 언론 대상 브리핑 내용이 상부에 보고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제지한 것 뿐이라는 게 김 총경의 해명이었다.

백 경정은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용산이 아니면 외압이 설명이 안 된다”며 “늦은 시간 전화해서 용산을 거론한 것이 일반적인 일이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총경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수사팀) 등에 칼을 꽂았다”고 했다. 그러자 김 총경은 “영달을 위해서 그랬다고요?”라고 물으며 한숨을 쉬었다.

영등포서가 입건해 수사한 사건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에 이첩하려 했다는 것도 백 경정이 주장하는 외압 의혹의 한 갈래다. 백 경정은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 등 ‘윗선’이 사건을 이첩하는 방식으로 외압을 행사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이었던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이첩 지시를 한 게 아니라 이첩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청장은 “강남 학원가 마약 사건 등에서도 사건을 이첩해 결과를 낸 사례가 있다”며 “외압이 없었다는 데 직을 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찰 간부들이 서로 상대의 증언을 거짓이라며 위증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펼쳐지자 경찰 내부에선 “거짓말 탐지기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세관 마약 의혹 “증거 없어”…백해룡 징계 민원은 관세청 직원발

청문회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도 있었다. 백 경정 휘하에서 세관 마약 수사팀원으로 있던 수사관들은 증인으로 나와 ‘(마약을 들여오다 적발된) 말레이시아인 조직원의 진술 이외에 (세관원 연루 관련) 증거가 있느냐’는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없다”고 답했다. 다섯차례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진술 외에 세관원이 마약 밀수에 개입했다는 추가 증거는 확보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사 상황과 내용을 공개하는 브리핑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는 경찰 지휘부의 주장에 힘을 싣는 내용이다.

반대로 외압설에 힘을 싣는 사실도 공개됐다. 백 경정이 공보 규칙을 위반해 경찰에서 ‘경고’를 받은 것이 관세청 직원의 민원 접수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공보 규칙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받은 경찰관은 백 경정이 사실상 유일하다는 점도 확인됐다. 무리한 징계, 나아가 외압의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백 경정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이었다.

이번 사건을 촉발시킨 빌미를 제공한 공직자들의 안이한 인식도 문제로 나타났다. 직원들을 경찰서에 보내 경찰 수사 상황을 파악하라고 지시한 고광효 관세청장은 “위법이 아니며 문제 될 게 없다”는 취지로 발언해 야당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백 경정에게 전화를 걸어 언론애 브리핑할 내용 중에 관세청 관련 부분이 포함돼 있는지 물었다가 좌천된 조병노 경무관(현 전남경찰청 생활안전부장)도 자신의 통화가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10시간 넘게 이어진 공개 청문회에서 풀지 못한 의혹의 규명은 결국 수사기관의 몫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세관원 마약 밀반입 개입 의혹 자체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백 경정이 고발한 수사 외압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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