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에이비엘 대표 "53세에 늦깎이 창업···사람을 살리는 신약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이정민 기자 2024. 8. 2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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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아스트라·제넨텍 빅파마 연구원 10년
美 '선진 제약' 경험, 회사 경영 밑거름
신약개발 내부 오디션으로 깐깐한 검증
안식달·보너스로 인재 육성에도 '진심'
환자들 "내가 이 회사 약 먹고 살아났다"
돈 버는 것보다 사람들 아픔 달래줄 것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가 16일 성남 판교 본사 입구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서울경제]

“누구나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에이비엘바이오(298380)가 개발한 약 덕분에 살았다’는 이야기로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는 게 목표입니다.”

환갑이 지난 바이오벤처 대표는 성격유형검사(MBTI)로 본인의 성격을 소개하고 서류 가방보다 백팩을 익숙해했다. 미국 유학과 글로벌 빅파마에서 10년간 연구원 생활, 국내로 돌아와 첫 번째 창업과 대기업 계열사 바이오사업부 총괄, 53세에 다시 ‘늦깎이’ 두 번째 창업에 이르기까지 30대에서 50대까지 흘린 피와 땀, 눈물의 결과를 설명하는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상훈(사진) 에이비엘바이오 대표의 얘기다. 이 대표는 21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그동안 걸어온 삶과 에이비엘바이오의 비전을 나눴다.

‘설립 34개월 만에 최단기간 코스닥 상장’ ‘1조 원대 사노피 빅딜’. 에이비엘바이오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최근에는 글로벌 빅파마들도 중단한 ‘이중항체 ADC’ 선두 주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성공한 바이오 벤처기업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탄탄대로만 걸었을 것 같지만 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이 대표는 “저는 한 번도 수제자가 된 적이 없어서 노력하는 사람이 승자라는 생각이 강하다”며 “미국 유학 시절에도 지도교수가 ‘미국 명문대 교수까지 할 실력은 안 된다’고 하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 대표는 본인의 강점으로 ‘끈기’를 꼽았다.

고등학교 때 특별 활동으로 생물반을 택할 정도로 생물학에 흥미를 느꼈던 이 대표는 서울대 생물교육과에 진학했다. 생물학 연구에 대한 열망만으로 26세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부모님이 유학 비용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건네준 2000달러는 기숙사비를 내고 자전거를 사니 동이 났다.

그는 10여 년간 카이론(현 노바티스)·아스트라제네카·제넨텍 등 글로벌 빅파마에서 연구원으로 신약 개발에 참여했다. 당시 경험은 현재의 에이비엘바이오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는 “당시 연구자로 회사 다닐 때는 몰랐는데 경영자가 돼 돌이켜보니 그때 경험이 달리 보이는 게 있다”며 “지금 에이비엘바이오에는 한국과 미국 문화가 혼재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에이비엘바이오의 신약 개발 단계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베스트 인 클래스(계열 내 최고)’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무엇을 ‘베스트’로 볼 것인지에 대한 엄격한 내부 오디션을 통과해야 한다. 오랜 시간과 돈을 들여 개발한 만큼 모든 약물에 베스트 등급을 주고 싶겠지만 이때만큼은 누구보다 냉철하게 판단한다. 이 대표는 “단순히 우리끼리 만족하는 수준이어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빅파마들이 ‘라이선스 인’할 퀄리티인지가 주요 판단 기준”이라고 말했다. 물질 자체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시장에 내놓았을 때 상업성까지 고려 대상이다. 그는 “세계 5등 약물이어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잠재력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엄격한 기준 때문에 임상 결과가 나쁘지 않은데 개발이 중단되는 프로젝트도 적지 않다. 이 대표는 “한국은 연구 중단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며 “경영자라면 과감하게 끝낼 줄도 알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제넨텍이나 아스트라제네카도 자체 기준이 굉장히 높다”며 “한국 양궁이 잘하는 이유가 매년 기준이 높아서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대표는 2009년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 스탠퍼드대 포닥(박사 후 연구원) 시절 만난 유진산 박사와 ‘파멥신’을 공동 창업했다. 이 대표는 이 결정을 ‘미친 짓’이라고 표현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시기, 1억 원에 달하는 월급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반대도 심했다. 하지만 10여 년의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창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힘든 상황에서 창업한 파멥신은 경영관 차이로 그만뒀다. 이후 신약 개발에 ‘올인’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는 말에 한화케미칼 바이오사업부로 옮겼다. 하지만 1년 만에 회사가 바이오 사업에서 철수했다. 이 대표가 꼽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첫째 아이와 초등학생인 늦둥이를 두고 가장은 백수가 됐다. 미국 생활을 다 정리하고 한국에 왔지만 당장 갈 곳이 없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 대표 인생에서 최대 슬럼프 시기에 탄생했다. 53세, 적지 않은 나이지만 이 대표는 두 번째 창업에 도전했다. 한화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좌절만을 주지 않았다. 단순히 바이오벤처가 아닌 ‘어떤’ 회사를 설립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을 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에이비엘’이라는 사명도 이런 고민에서 비롯됐다. ‘medicine for A Better Life’라는 의미를 담았는데 최상급 표현인 ‘the best(최고)’가 아닌 ‘better(더 나은)’라는 표현을 골랐다.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그는 “파멥신을 창업할 때는 유일한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었다”며 “파멥신과 한화케미칼을 거치면서 ‘인생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돈 이상의 ‘의미’를 에이비엘바이오 창업에서 찾고자 했다. 두 번째 창업인 만큼 신약 개발 2세대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그는 “파멥신 때는 유 박사가 연구해온 물질을 위주로 했다면 에이비엘 창업을 준비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회상했다.

2015년 초 ‘이중항체’라는 아이디어 하나만 들고 한국투자파트너스를 무작정 찾아갔다. 구체적인 물질은 없었다. 이후 6개월간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4-1BB 이중항체’는 이때 탄생했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가 16일 성남 판교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이 대표의 경영철학의 핵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다. 바이오벤처 대표로서 강점을 묻자 ‘사람에 대한 리스펙트(존중)’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일을 해보니까 결국 사람이 제일 중요하더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을 중시하는 그의 철학 때문일까. 창업 초기 함께한 14명의 한화 출신 연구원들이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다. 박사급 연구원들을 채용할 때는 프레젠테이션(PT) 발표를 듣고 본인만의 생각을 갖고 있는지,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는지 확인하고 선발한다. 그는 “회사를 처음 차릴 때부터 우리 연구원들이랑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제넨텍이 ‘베스트 플레이스 투 워크(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로 꼽힌 적 있는데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인재 육성에도 진심이다. 연구원들이 각 영역을 맡는 분업 시스템이 아닌 한 사람이 항체 개발, 동물 실험, 세포주 개발 등 연구개발(R&D)의 전 과정을 훑는 방식을 택했다. 자기 영역에만 갇히면 큰 그림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이런 미국식 시스템을 도입한 것에 대해 이 대표는 “제 철학은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아무도 몰라주지만 나름대로는 한국에서 신약 개발 전문가를 내부에서 기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재 육성에 되게 진심”이라고 말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해부터 안식달 문화를 도입했다. 7년을 근속한 직원에게 4주간 안식주를 준다. 이 같은 파격적인 문화는 이 대표의 제넨텍 시절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베풀고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회사 설립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직원들에게 보너스도 챙겨준다”고 말했다. 경영자로서 스스로에게, 직원들에게 한 약속을 매년 지킨 것을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그렇다고 물질적 보상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미국에서 배운 게 회사가 직원들한테 비전을 심어주지 않으면 직원들은 떠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생각하는 에이비엘바이오의 비전은 무엇일까. ‘사람 살리는 약을 개발한다는 자부심’이다. 그는 “제넨텍이나 카이론에 있을 때 환자들이 ‘내가 이 회사 약을 맞고 살아났다’며 회사로 찾아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때 ‘이 회사 다닐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 대표는 본인이 당시 느낀 감정을 에이비엘바이오 직원들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에이비엘이 개발한 약 덕분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연구원들 스스로 굉장한 프라이드가 생길 것”이라며 “이런 자부심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고 생기는 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기업설명회(IR)에서 ‘에이비엘바이오 비전 2.0’을 발표했다. 이중항체 ADC 개발에 집중해 기술 수출 계약금과 마일스톤 규모를 키워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비전 1.0은 규모를 키우는 성장이었다면 비전 2.0의 핵심은 지속 가능성”이라며 “성장보다 지속 가능성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에이비엘바이오 비전 3.0은 무엇일까. 이 대표는 3.0의 키워드로 ‘폭발적 성장’을 꼽았다. 이를 위해 글로벌 임상 성공을 강조했다. 그는 “이중항체 ADC는 에이비엘바이오가 처음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프런트 러너(선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며 “빅파마가 에이비엘바이오의 이중항체 ADC 기술을 먼저 찾게 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He is···△1963년 서울 △여의도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서울대 동물발생학 석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박사 △하버드 의대 박사 후 연구원 △스탠퍼드 의대 박사 후 연구원 △2000년 카이론 수석연구원 △2004년 아스트라제네카 수석연구원 △2005년 제넨텍 수석연구원 △2008년 엑셀리시스 수석연구원 △2009년 파멥신 부사장 △2013년 한화케미칼 바이오사업부 총괄 △2016년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이정민 기자 mind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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