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희칼럼] 드러눕는 무기력 청년들

심윤희 기자(allegory@mk.co.kr) 2024. 8. 21. 17:3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학 졸업가운을 입고 땅바닥에 드러누운 중국 '탕핑족'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중국 Z세대 가운데 탕핑족이 급증하는 것은 극심한 취업난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쉬었음' 청년 가운데 "일할 의사가 없다"고 응답한 이들이 75.6%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런 비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탕핑족을 겨냥해 "고생은 사서해야 한다"고 훈계하거나, 중국 정부가 대졸자들에게 "농촌으로 가라"는 시대착오적 해법을 제시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냥 쉰다는 '한국판 탕핑족'
7월 44만명 역대 최대치
"게으른 세대" 비난만 말고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속도를

대학 졸업가운을 입고 땅바닥에 드러누운 중국 '탕핑족'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탕핑은 '납작하게 눕는다'는 뜻으로 취직, 결혼을 포기한 채 무기력하게 지내는 상태를 말한다. 중국 Z세대 가운데 탕핑족이 급증하는 것은 극심한 취업난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눕기'는 좌절의 표시이자 청년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무관심한 정부를 향한 저항이다. 최근에는 '부궁쭤'(일 안 하기) '컨라오'(부모 뜯어먹기)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청년들이 일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현상은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7월 '그냥 쉬었다'는 청년(15~29세)이 44만3000명에 달했다. 작년 동월보다 4만2000명이 늘어 역대 최대치다. 청년층 인구(815만명) 가운데 5.4%를 차지한다. 연령대를 30대로 넓히면 그냥 쉰 인구는 73만명이 넘는다. '쉬었음' 인구는 질병이나 장애가 없지만 학교를 다니지도 취업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취업자에도 실업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달 고용률은 63.3%로 7월 기준 역대 최대라지만 이 통계에 사실상 실업 상태인 '쉬었음' 인구는 빠진 것이다. 지표에는 반영되지 않는 고용시장의 어두운 단면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쉬었음' 청년 가운데 "일할 의사가 없다"고 응답한 이들이 75.6%에 달한다는 점이다. 드러눕는 퍼포먼스를 안 한다뿐이지 무기력증에 빠졌다는 점에서 탕핑족과 다를 게 없다. 일본의 장기 불황이 낳은, 돈벌이나 출세에 관심이 없는 사토리(득도) 세대와도 비슷하다.

60·70대도 아닌,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할 핵심 연령층이 그냥 쉬고 있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연애·결혼·출산 기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틀어박혀 은둔형 외톨이가 되고, 사회에 대한 분노를 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자발적 실업'을 선택한 이들을 '역대급 게으른 세대' '부모 등골 빼먹는 나약한 계층'이라고 비판한다. 대기업만 고집하고 힘든 일을 꺼리는 이들의 직업 눈높이를 탓하기도 한다. 청년지원금 등 과도한 지원 정책이 이들을 망쳤다는 지적도 일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청년 고용 현실에 대한 공감 없이 무기력증만 탓할 수는 없다. 이런 비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탕핑족을 겨냥해 "고생은 사서해야 한다"고 훈계하거나, 중국 정부가 대졸자들에게 "농촌으로 가라"는 시대착오적 해법을 제시한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쉬었음' 청년을 노동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해 1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문제를 풀려면 이들이 무작정 쉬려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많이 나온 답변은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서'였다. 고학력 청년층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벌어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야말로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일본은 한국만큼 대기업 쏠림이 심하지 않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한국보다 작은 편이어서다. 2022년 한국의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57.7%인 반면 일본 중소기업은 73.7%였다. 게다가 중소기업에 입사한 후 대기업으로의 이직도 쉽지 않다 보니 진입 자체를 주저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국가적 과제로 내세웠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할 뿐 아니라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에 속도를 내야 한다. 그래야 드러눕는 청년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심윤희 논설위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