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완벽한 집은 어디인가" 집을 쫓아 북극으로 향한 순례자 서도호

손효숙 2024. 8. 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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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서도호 개인전
첫 전시 후 21년 만의 서울 귀환
영상 설치 등 30년 작업 집대성
'만약에' 사유로 풀어낸 상상의 집
24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다리 프로젝트'(2024)의 한 장면. 리만머핀 제공

서울과 미국 뉴욕, 영국 런던에 있는 집을 연결할 수 있을까. 한 남성은 자신이 살았던 서울과 뉴욕의 집, 현재 살고 있는 런던의 집이 만나는 곳에 자신만의 '완벽한 집'을 세우고 싶었다. 그는 각기 다른 대륙에 있는 세 도시를 같은 길이의 직선으로 연결하고, 선이 만나는 부분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다리를 놓는 상상을 한다. 다리들이 만나는 지점은 북극 보퍼트해 인근의 고원. 고원 위를 지나는 다리에 집을 지은 그는 한국에 있는 성북동 손칼국수 식당, 미국의 가족식당을 대관람차에 실어 그곳으로 옮긴다. 서도호 작가의 '다리 프로젝트'는 이 모든 상상을 담은 24분짜리 애니메이션이다.

서도호 작가가 '브릿지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코오롱스포츠와 협업해 만든 구명복. 태양열 패널을 붙여 자가 발전으로 보온을 하고, 조난신호기까지 달고 있는 옷에 남자는 '완벽한 집 S.O.S(Smallest Occupiable Shelter)' 이름을 붙였다.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작은 대피소라는 뜻이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세계적 설치미술가 서도호, 누구인가

서도호 작가. 아트선재센터 제공

서도호(62)는 세계적인 설치미술 작가다. 영국을 기반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가 한국에서 대규모 전시를 연다. 전시 제목은 사변, 추론, 사색을 뜻하는 '스페큘레이션스(speculations)'. 2003년 첫 개인전을 열었던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선보인다. '다리 프로젝트'는 전시장 입구에서 상영된다.

스페큘레이션스에 대해 서도호는 "나의 모든 작업은 '만약에'(What if)라는 질문을 던지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진행된다"면서 "(스페큘레이션스는)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작품을 구상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시간·공간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그의 모든 작품이 사실상 '스페큘레이션 프로젝트'이고, '다리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인 셈이다.

서도호는 한국화 대가인 산정 서세옥(1929~2020)의 아들이며 서울대 동양화과에서 공부했다. 2001년 이탈리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알려진 후 세계 곳곳을 돌며 '완벽한 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아래 '집 작업'을 선보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2019), 스미스소니언박물관(2018), 휘트니미술관(2017), 일본 모리미술관(2015)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내년 5월 영국 테이트모던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이번 전시는 60대가 된 그가 20년 만에 시작점으로 돌아와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회고전 성격의 전시다.


상상과 현실 사이, 시공 초월한 집의 난장

서도호가 살았던 모든 집의 모형으로 만든 '나의 집/들, 양(1/30 스케일)'. 아트선재센터 제공

전시 제목처럼 서도호의 사변, 추론, 사색이라고 할 만한 모든 것이 망라됐다. 1991년 미국 예일대 유학시절부터 동일한 스케치북에 해온 드로잉 작품 수백 점을 포함해 건축 모형과 영상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질문을 던지며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진면목은 1층 전시장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는 2010년 시도한 '완벽한 집: 다리프로젝트'를 통해 뉴욕과 서울의 중간 지점인 태평양 한가운데 집을 지으려 했다. 이번에는 런던까지 포함한 세 도시의 중간 지점인 북극해에 집 짓기를 위해 물리학자, 건축가와 협업해 조류, 바람을 견딜 수 있는 집을 상상했고 그 결과물이 드로잉 수백 장과 영상으로 구현됐다.

2층 전시장에선 집을 정주의 장소가 아닌 이동 가능한 매체로 다루는 태도가 드러난다. 서도호가 나고 자란 서울 성북동 한옥집은 런던의 한 다리 위에 존재하기도 하고 미국 샌디에이고 미술관 위에 불시착하기도 한다. 집과 정원을 16톤 트럭에 싣고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상상도 더해진다. 2012년 샌디에이고의 7층 건물 꼭대기에 오두막을 위태롭게 설치한 '별똥별', 2010년 영국 리버풀비엔날레 당시 리버풀의 두 빌딩 사이에 작가가 살았던 집을 끼워 넣어 설치한 '다리를 놓는 집'이 이번 전시에서 모형으로 재현됐다.


"'천으로 만든 집'은 빙산의 일각일 뿐"

300여 명의 군상이 조각의 좌대를 들고 이동하는 '공인들(1/6 스케일)' 아트선재센터 제공

미국 워싱턴 국립아시아미술관 앞에 설치된 조각 '공인들(1998)'도 이번 전시에서 상상이 가미된 신작으로 돌아왔다. '공인들'은 인종과 성별이 저마다 다른 익명의 다수가 힘을 합쳐 거대한 기념비를 머리 위로 들고 있는 모습을 구현한 작품이다. 이번에는 '키네틱 아트' 기술을 통해 기념비 아래의 작은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실제 조각의 6분의 1 크기로 제작했다.

전시장을 아무리 둘러봐도 서도호의 출세작 '천으로 만든 집'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한복을 지을 때 쓰는 은조사(銀造紗·여름용 한복감으로 사용하는 견직물)를 꿰매 만든 한옥 설치 작품으로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천으로 만든 한옥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다'는 발상에서 발전된 작업"이라며 "천 작업은 빙산의 일각일 뿐 지금도 셀 수 없는 프로젝트가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고 했다. 종착지 없이 열린 결말로 나아가는 그에게 집이란, 정주할 수도, 안주할 수도 없는 질문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전시는 올해 11월 3일까지.

전시 포스터. 아트선재센터 제공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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