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택 “한국, 정치적 갈등 미국보다 심해…‘ DJ 통합의 정치’ 필요”
‘격랑의 한반도,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정치혁신과 국민통합 방안 토의
“민주주의 자체는 진전이 많이 진행됐지만 실제 우리가 느끼고 있는 정치적 갈등의 정도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21일 김대중 탄생 100주년 포럼에서 ‘정치혁신과 국민통합’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3 섹션에서 현재 한국 정치를 ‘피곤한 정치’라며 이렇게 진단했다. 한국이 헝가리, 러시아 등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의 명백한 후퇴에 견주면 비교 정치적으로 괜찮은 편이지만 다른 정당 지지자들 간 갈등의 정도는 매우 크다는 것이다.
실제 2022년 3월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국가별 상이한 정당 지지자들 간 느끼는 갈등의 정도 조사를 보면, 미국 등 19개국 평균은 매우 크다(21%), 다소 크다(38%) 등이었다. 한국(매우 크다 49%, 다소 크다 41%)은 미국(매우 크다 41%, 다소 크다 47%)보다도 갈등의 정도가 가장 큰 나라로 조사됐다. 그는 “한국은 전체적으로 90% 정도가 피곤하거나 갈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한국이 미국보다 양극화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다”며 한국은 이념이나 정책적 요인보다 정치적 사건으로 인한 갈등이 촉발되고 이후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노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한 진보의 분노에 이어 ‘박근혜 탄핵’과 뒤이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대한 보수의 분노가 반복됐고, 이 분열 위에서 ‘적대적 공생’을 하는 거대 양당의 지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 교수는 이날 발제 제목처럼 ‘김대중과 통합의 정치’가 더 요구된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화해, 용서, 통합의 정치’가 신생 민주주의를 확고하게(secure) 만드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부정과 보복의 정치’라는 악순환이 이어지면 신생 민주주의는 불안정해지는데, 김 전 대통령이 그 악순환 고리를 끊었다는 설명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김종필 공동 정부 구성을 합의했고, 대통령 당선 후에는 총리직을 비롯해 거의 절반의 내각 각료 직을 당시 자민련에 배당해 일종의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는 타협과 연합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시스템인 ‘타협, 양보의 제도화’를 언급했다. 권력 독점의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총리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하고 내각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그러면서 리더의 책임을 강조했다. 강 교수는 “강성 지지자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설사 지지층의 반대가 있어도 필요하다면 그들을 설득하고 국가 발전, 사회 통합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며 “오늘날 갈등, 대립은 소수 강경파에 휘둘리는 리더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날 분열과 대립의 정치는 정치 엘리트들의 ‘작은 정치’ 때문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큰 정치(용서와 화합, 타협과 양보, 반걸음 앞서가는 리더십)’가 그립다고 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은 “타협과 공존 없이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며 “이제는 진보도 보수도 각각 100만명씩 모일 수 있고, 유튜브 화력도 강하다. 타협 없이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도자와 국민이 함께 공유하는 국가의 공통 목표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디제이피 연합과 노무현 정부에서 이해찬 당시 ‘책임총리’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저는 총리에게 과감한 권한을 주는 시대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회에서 총리를 복수로 추천을 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총리 복수추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도 토론자로 나서 “우리나라 정치는 제도 자체가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권위적”이라며 “선거 제도부터 철저한 승자독식 시스템, 그야말로 ‘꼰대 레짐’”이라고 했다. 이어 “그러한 시스템 아래에서 타협하고 양보하는 정치 문화가 싹트길 기대하는 것은 돌 위에 꽃이 피어나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며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강 교수는 “갈등이 제일 심한 나라인 한국과 미국의 공통점은 대통령제, 양당제 국가”라고 했다. 이어 “유럽에서 새로운 극단주의 세력이 정당이 나오더라도 연립정부에 들어가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고 양보를 하지 않으면 정책 추진이 안 된다”며 “우리는 한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100대 0’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당제 선거제도 개혁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질병청 “코로나 이달 정점”…적극 방역은 ‘치명률 낮아’ 미적?
- 김건희 무혐의에 검찰 간부도 “윤 대통령이 수사했다면 기소”
-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 사법연수원 시절 음주운전으로 벌금형
- 윤 “북 정권, 가장 비이성적 집단…강력한 안보만이 오판 막아”
- 경찰차에 36시간 갇혀 숨진 장애인…“현장수칙 안 지킨 탓”
- 광복회장 “뉴라이트가 일본 용서하자는데 넘어가면 안 된다” [영상]
- 한동훈, 김건희 명품백 무혐의에 “팩트·법리 맞는 판단”
- 조국, 검찰 소환에 “오라 하니 간다, 언론플레이 할 수도 있으니…”
- 진통 온 임신부, 병원 찾다가 구급차서 출산…“27곳서 거절당해”
- [단독] ‘친윤’ 장제원 해양대 석좌교수로…자격 지적한 교수회 묵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