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말고, ‘방’에서 삽시다 [크리틱]

한겨레 2024. 8. 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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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문화학이나 인문학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관점이 서구와 우리의 문화를 비교하는 것이다.

서유럽(요즘은 미국까지 포함한)을 지칭하는 '서구라파'를 줄인 말 '서구'는 산업과 문화적 헤게모니 덕분에 지금도 자신 외 지역을 '제3세계'라고 부를 정도의 위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서구국가처럼 한국도 이른바 '지역지구제'(zoning)란 방식으로 도시공간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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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비교문화학이나 인문학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관점이 서구와 우리의 문화를 비교하는 것이다. 서유럽(요즘은 미국까지 포함한)을 지칭하는 ‘서구라파’를 줄인 말 ‘서구’는 산업과 문화적 헤게모니 덕분에 지금도 자신 외 지역을 ‘제3세계’라고 부를 정도의 위세를 유지하고 있다. 서구와 세계, 서구와 동양, 서구와 한국 같은 불균형적 등치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이유다. 이 이상한 등치를 공간에 들이대 보자.

서구에서는 전통적으로 하나의 공간이 하나의 기능을 담당해 왔다. 먹고, 자고, 교류하는 인간의 일상 행위를 그 기능에 할당된 특정한 ‘룸’이 담당한 것이다. 베드룸(침실), 리빙룸(거실), 다이닝룸(식당) 같은 식이다. 귀족 같은 상류층들은 집에 갖춰진 룸의 개수로 서로의 문화적 수준과 서열을 가늠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게 2300개 룸의 프랑스 베르사유 궁이다. 전시, 공연, 연회, 만찬 같은 사치스러운 행위까지 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했고 거기에 맞춰 장식과 가구도 발전했다. 권력의 크기는 ‘룸’의 수로 과시되었고 건축으로 형상화됐다.

반면 한국의 공간이 서양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는 바로 ‘방’이란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방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이 특정 기능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밥상이 들어오면 식당, 책상을 펴면 공부방, 가족이 모이면 가족실, 이부자리를 펴면 침실…. 이처럼 공간은 가만있고 기능이 바뀐다. 모든 방은 한 공간에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일종의 가변적 다목적 공간이었다. 많은 방을 갖출 필요도, 집이 굳이 클 필요도 없었다. 또한, 필요에 따라 펴고 접을 수 있는 상처럼 독특한 가구 문화가 발전했다.

그런데 몇십년 만에 전통한옥에서 개량한옥, 양옥주택, 아파트로 한국인의 주거공간은 변해왔고 우리의 공간 습성도 부지불식간에 바뀌었다. 한곳에서 여러 행위를 하던 방 대신, 잠자는 침실, 티브이 보는 거실, 옷 갈아입는 옷방, 음악 듣는 음악실처럼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공간은 세분화, 전문화되었다. 집에서 하고 싶은 행위가 많아질수록 해당 ‘룸’이 필요해지고 그럴수록 더더욱 큰집에 대한 욕구는 커진다. ‘룸’이 ‘방’을 대치할수록 집도 도시도 커진다. 방이 모여 집이 되고, 집이 모여 도시가 된다.

한정된 도시 면적에 많은 사람이 살아야 하니 자고, 일하고, 놀고, 쉴 곳 등 다양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서구국가처럼 한국도 이른바 ‘지역지구제’(zoning)란 방식으로 도시공간을 나눈다. 주거지역, 업무지역, 상업지역, 녹지지역 등으로 기능을 구분해 지역을 구분하는 식이다. 19세기 산업혁명 초기, 공장과 주거지를 떼어놓기 위해 독일에서 시작된 지역지구제는 미국에서 발전되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전파됐다. 자동차 이동과 도시팽창은 가속화되었고, 기능에 따라 공간을 구분하는 ‘룸’ 개념이 확장되어 신도시, 위성도시가 양산되었다. 도시가 확장될수록 시민이 이동해야 한다. 시민의 이동은 시간과 탄소 소비의 동의어다.

하나의 기능이 하나의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서구식 공간개념 ‘룸’ 문화는 정작 서구도시조차도 한계를 절감하고 반성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대신 빌리고, 섞고, 재사용하고, 적게 사용하는 ‘방’ 도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시대다. 세계 곳곳에서 저탄소 스마트도시를 부르짖는 이때, 하루 삼 분의 일만 사용하고 나머지 시간은 비워두는 ‘룸’ 도시로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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