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100% 완충 위험…절반만 충전하면 화재 방지”

이종현 기자 2024. 8. 2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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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본 배터리 화재 포럼
배터리 폭발력은 수류탄의 75% 수준
인증 제품 쓰고, 과충전 피해야 화재도 예방 가능

전기차 화재로 ‘배터리 포비아’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전기차 업체들이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고, 여러 지자체가 전기차 화재에 대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리튬이온배터리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화재 조기 감지는 어렵지만 배터리를 절반만 충전하면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인증제품을 쓰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배터리 안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포럼에는 도칠훈 한국전기연구원(KERI) 책임연구원과 오기용 한양대 교수, 나용운 국립소방연구원 연구사가 주제발표를 맡았다.

지난 6월 27일 대구 서구 가드케이 대구공장에서 열린 '리튬 배터리 화재 전용 소화 장치 시연'에 앞서 원통형 리튬 배터리에 열폭주 현상을 일으키는 모습./연합뉴스

과연 배터리 포비아에 대한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떨까. 포럼 발표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배터리 열폭주 원인은.

“배터리 열폭주 현상은 배터리 내부에 있는 가연성 물질이 멜팅 포인트에 따라 순차적으로 타들어가면서 발생한다. 배터리의 SEI(배터리 제조 후 처음으로 충전할 때 음극재 표면에 생기는 얇은 막)층이 어떤 이유로 녹으면서 열폭주가 시작되는데, SEI는 녹는 점이 섭씨 60~130도다. SEI가 녹으면서 배터리 내부 온도가 높아지면 분리막이 녹는 점(120~160도)에 이르고, 분리막이 녹아 없어진다.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게 사라지면서 배터리 내부에서 작은 발열이 많아지고 내부 온도가 계속 오르게 된다. 양극은 130~250도에서 녹는데, 양극은 산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발열이 더 가속화된다. 이후 230~350도에서 전해질이 녹으면서 수소와 여러 가연성 물질이 나오고 이후 배터리의 모든 재료가 탈 때까지 불이 이어진다. 이른바 체인 리액션(연쇄반응)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배터리의 폭발력은 어느 정도인가.

“에너지 밀도로 비교하면 리튬이온전지는 ㎏당 290Wh(와트시)다. 흔히 사용하는 수류탄의 에너지 밀도가 ㎏당 385Wh다. 에너지 밀도만 보면 수류탄의 75.3% 수준이다. 수류탄과 달리 파편도 없기 때문에 배터리 자체의 살상력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불꽃이 옆으로 번지기 때문에 천장의 화재감지기로 초기 감지가 어렵고, 다른 차량으로 전이되기도 쉽다.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하는 전기차 화재의 경우 3~4대가 동시에 착화되면 소방이 진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배터리 안전에 대한 과학적 접근' 포럼에서 참석자가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뉴스1

–배터리 100% 완충은 위험한가.

“충전이 많이 될수록 리튬이온전지의 폭발 가능성도 커진다. 방열이 없는 상태에서 전지를 계속 가열하면 언젠가 폭발한다. 배터리는 에너지저장장치다. 에너지가 있다는 건 폭발 가능성도 항상 있다는 이야기다. 배터리를 안전하게 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필요할 때만 충전해서 쓰는 것이다. 배터리 화재는 완충된 상태에서 여러 안 좋은 조건이 겹치면서 발생한다. 과거 연구를 보면 배터리를 절반만 충전해 놨을 때는 열폭주가 일어나더라도 화재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결과도 있다. 완충해 놓고 쓰는 게 사용자 입장에서는 편하겠지만, 안전을 생각하면 잘못된 것이다. 시내 주행만 할 때는 50% 정도만 충전해서 쓰는 게 안전하고, 장거리 주행을 할 때는 90%까지만 충전해 놓고 써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배터리 충전율을 90%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본다.”

–사용자 입장에서 더 신경써야 할 것은.

“전기차보다 더 위험한 게 전동킥보드다. 2023년 기준으로 리튬배터리 화재에서 전동킥보드가 114건으로 전기자전거(42건), 휴대폰(12건), 전기오토바이(9건)보다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전동킥보드를 보통 가정 내에서 충전한다는 점이다. 전동킥보드에는 배터리가 60개 정도 병렬도 들어가는데, 한번 불이나면 절대로 가정 내에서 불을 끌 수 없다. 개인이 대응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화재가 번질 수 있는데 많은 사람이 가정에서 전동킥보드를 충전하고 있어서 굉장히 위험하다.

사용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또 다른 노력은 인증 제품만 쓰는 것이다. 요즘 중국산 저가 제품을 많이 사용하는데, 안에 들어간 배터리가 인증 받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실제 화재 사례를 보면 배터리를 충전한 첫 날 불이 난 경우도 있다. 집에서 청소기 충전을 많이 하는데, 저가형 제품은 과충전이 될 수도 있다. 외출할 때도 어댑터를 빼놓는 것이 좋다.”

지난 7월 14일 오전 세종시 금남면 성덕리 전동킥보드 보관창고에서 불이 나 창고 건물과 전동킥보드, 배터리 등을 태운 뒤 1시간여 만에 진화됐다./세종소방본부

–100% 안전한 배터리는 가능한가.

“화재가 절대로 나지 않는 100% 안전한 배터리는 불가능하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양극 산화물을 기반으로 하는데, 산화물이 기반이 되면 화재의 원인이 되는 과산화물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안전을 높일 기술 개발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배터리 내부 온도가 150도만 돼도 폭발했는데, 이제는 열폭주를 억제하는 기능이 추가되면서 230도까지도 버틴다. 배터리 내부의 온도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냉각하는 장치들을 달아서 화재 위험을 낮춰야 한다.

화재가 나더라도 주변 차량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기차 충전 공간에는 격벽을 세워서 한 차량의 화재가 옆으로 전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동킥보드다 전기스쿠터도 가정에서 충전하지 않고 별도의 충전소를 만들어서 모아서 충전하게끔 해야 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집중적으로 불을 끌 수 있도록 소화 시스템을 배치하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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