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안세영, 목소리의 자격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편집자주<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여성학자 정희진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에 대해, "억울한 일이 있으면 바로잡으면 되지, 출세까지 해야 되나"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지만, 계층별 목소리의 균형이 깨진 한국 사회에선 갑질당하지 않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출세'가 유용하긴 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에 대해, “억울한 일이 있으면 바로잡으면 되지, 출세까지 해야 되나”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지만, 계층별 목소리의 균형이 깨진 한국 사회에선 갑질당하지 않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출세’가 유용하긴 하다. “목표 없이 평범하게 하루하루 살아도 괜찮아요”라는 위로조차, 평범한 사람이 아닌 유명인의 말이어야 받아들이는 세상 아닌가.
□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22) 선수가 얼마 전 파리 올림픽에서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딴 직후 대한배드민턴협회를 저격하며 “꿈을 이루기까지 원동력은 분노”라고 했다. “올림픽을 우승하고 싶었던 꿈, 또 악착같이 달렸던 이유 중 하나가 제 목소리에 힘이 좀 실렸으면 좋겠는 바람 때문”이란다. 세계랭킹 1위 선수조차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사람들이 내 말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단 게 안타깝다.
□ 안세영은 올해 초 협회 측에 선수촌이 아닌 소속팀에서의 재활과 전담 트레이너 배정, 선수촌 내 생활 개선을 요청했으나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7년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가 돼서 7년 내내 막내 생활을 하며 선배 라켓 줄 갈기, 선배 방 청소 및 빨래를 도맡았고, 외출 할 땐 19명의 선배에게 일일이 따로 보고해야 했다고 한다. 안세영은 “‘너만 그런 게 아니다’, ‘넌 특혜를 받고 있잖아’라는 회피보다, ‘한번 해보자’ ‘그게 안 되면 다른 방법을 함께 생각해보자’라고 귀 기울여주는 분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실체를 확실히 알 수 있겠으나, 안세영이 겪어온 부조리는 사회 곳곳 ‘썩은 조직’ 속에서 부서져 가는 수많은 여린 꿈과 의욕들을 돌아보게 한다. 그가 제기한 구시대적 훈련 방식, 부족한 재활 지원, 개인 후원 억압 문제 등이 진작 공론화되고 개선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또 만약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그는 폭로를 하지 않았을까. ‘능력(혹은 성취)’이 없으면 부조리 타파를 요구하는 목소리조차 거세당하는 이 사회의 속성이 새삼 아찔하다.
이진희 논설위원 river@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충 산다고요?" 코에 뱀장어 끼고 '쿨쿨' 몽크물범의 생존 비밀 | 한국일보
- "음식서 2㎝ 머리카락" 환불 요구에 "나는 3㎜" 셀카 공개한 사장 | 한국일보
- 풍자, 수입 얼마길래..."1년 외식비만 1억" 고백 | 한국일보
- 온주완 "부모님 모두 암 투병…건강검진 중요해" ('벌거벗은 세계사') | 한국일보
- 성착취 백인 총으로 살해한 미국 흑인 피해자, 징역 11년형 타당한가? | 한국일보
- 유튜버에 불법 촬영 적발되자 "죽어버린다" 협박... 경찰에 체포 | 한국일보
- "영화관 티켓 비싸다는 최민식, 극장에 출연료 기부라도 했나" | 한국일보
- '나는 신이다' PD "경찰이 날 조주빈과 동일시... JMS 비호하나" | 한국일보
- "시간이 다가왔다. 울지 마라" 세계 최고령 할머니 117세로 숨져 | 한국일보
- '지역 비하' 과거 정면돌파…영양군수 등장시킨 '피식대학'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