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압도한 환상…캔버스 위 수영장에서 벌어진 일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8. 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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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 나무가 울창한 정원 속 고급 풀빌라.

햇빛이 일렁이는 잔잔한 물 아래로 비치는 수영장 바닥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강유진 작가의 'Pool in the garden with fire(불이 있는 정원의 수영장)'은 언젠가 작가가 여행 중 찾았던 풀빌라의 평온한 풍경을 재해석해 그린 반추상 풍경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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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작가 강유진 개인전 열려
인사동 선화랑서 회화 38점
강유진 ‘Pool in the garden with fire’(캔버스에 에나멜·아크릴, 90.9×65.1㎝, 2024). 선화랑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 나무가 울창한 정원 속 고급 풀빌라. 야외에서 수영하기 좋은 화창한 날이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휴가를 단박에 깨뜨리는 매서운 화염이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 있는 사람은 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입수 전 스마트폰으로 이 초현실적인 장면을 찍고 있는 걸까. 햇빛이 일렁이는 잔잔한 물 아래로 비치는 수영장 바닥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강유진 작가의 ‘Pool in the garden with fire(불이 있는 정원의 수영장)’은 언젠가 작가가 여행 중 찾았던 풀빌라의 평온한 풍경을 재해석해 그린 반추상 풍경화다. 실존하는 공간이 포함돼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실재할 수는 없는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과 불, 자연의 푸르름과 인공적으로 건축된 수영장 공간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모여 이룬 하나의 장면은 조화로운 색감과 균형 잡힌 구도로 보는 이를 유혹한다.

재미 작가 강유진의 개인전 ‘환상의 파편: 풍경의 새로운 시각’이 오는 9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신작 38점을 선보인다. 주로 건물 도색에 쓰이는 페인트인 애나멜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잘 흐르는 성질을 활용해 표현한 물결·화염 등 작가만의 회화기법을 살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영장은 평소 수영을 즐기는 강 작가의 안식처 같은 공간이다. 그는 “어딜 가든 수영장부터 찾는다”며 “수영장에선 ‘정해진 틀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어떨 땐 수영장이 나 자신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강 작가는 서울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2005년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순수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초창기부터 주요 미술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잇달아 열며 주목을 받았지만 결혼과 출산, 남편의 해외 근무에 따른 잦은 이주 생활로 한국 화단에서는 간간이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지난 2019년 자하미술관 전시가 한국에서의 마지막 개인전이었고, 선화랑에서 여는 개인전은 2012년 이후 12년 만이다.

하지만 전시가 있든 없든 늘 그림을 그려왔다는 강 작가는 “오히려 생활 환경이 계속 바뀐 덕분에 화면과 그 안의 소재들도 자연스럽게 변화해 실험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작가가 주목한 것은 이질성과 의외성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풍경의 일부는 실제 작가가 여행 중 사진으로 찍은 장소를 화폭에 옮긴 것이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기보다는 색상이나 조형에 집중해 여기에 어울리는 이질적인 요소를 함께 등장시킨다. 설산 옆 용암, 겹겹이 쌓인 지층 구조와 함께 놓인 크레이프 케이크, 바위산 앞 고깃덩어리 등이다.

정통 회화를 배웠지만 유화 물감 대신 에나멜을 주 재료로 선택한 것도 색다른 재료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느낌 때문이었다. 에나멜은 유화 물감에 비해 불투명성이 강하고 빨리 굳으며 조색에도 한계가 따른다. 그럼에도 강 작가는 도전적인 상황에 자신을 몰아붙여 특유의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어냈다. 그는 “에나멜은 점성이 약해 주로 캔버스를 눕혀놓고 그려야 하고, 붓질 대신 캔버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칠할 때도 있다. 에나멜이 캔버스 위에서 흐르면서 만들어내는 우연성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고 설명했다.

강유진 작가가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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