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무빙' 영화·노을·사랑 모두 담았다… 17일 폐막
[스포츠한국 이유민 기자] 제2회 팝업시네마: '부안무빙'이 멋진 노을을 배경으로 폐막했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제2회 팝업시네마: 부안무빙(Pop-Up Cinema: Buan Moving, 이하 '부안무빙')이 전북 부안군 변산해수욕장 일대에서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부안무빙'에는 올해의 테마로 선정된 '사랑'을 다룬 영화 '가려진 시간', '그해 여름', '파이란'의 감독과 배우가 참석해 변산 바닷가를 낭만적인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부안무빙'은 국내 최초로 팝업스토어 개념을 영화제에 도입한 새로운 콘셉트의 문화 축제로, 매해 테마를 중심으로 영화와 전시를 선정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글로컬 콘텐츠이다.
지난 15일 탱고밴드 '라벤타나'의 정태호와 재즈보컬 유사랑의 라이브 콘서트로 막을 올린 부안무빙은 감미로운 재즈 선율이 노을과 어우러져 변산해수욕장을 순식간에 시네마천국으로 물들였다.
이어서 전혜정 예술총감독이 무대에 올라 본격적인 개막을 알렸다. 전혜정 예술총감독은 "해가 떨어지는 낙조 앞에서 영화를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보면서 나눌 수 있다는 것, 영화 축제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정말 꿈 같은 장면"이라며 "올해는 작년보다 업그레이드된 '부안무빙'을 준비했다. 특히 덥다고들 하셔서 비를 약간 뿌렸다"라며 잠시 지나간 소나기를 재치 있게 언급해 박수를 받았다.
권익현 전북 부안군수 역시 "변산해수욕장은 아름다운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이 머무는 곳이다. 여러분, 붉은 노을이 지는 소리가 들리세요? 아마 들릴 거다"라는 낭만 가득한 인사로 분위기를 띄운 후 "3일간 행사 동안 좋은 시간 되기를 기원하겠다"라고 축하 인사를 전했다.
개막식에는 권익현 부안군수를 비롯해 정지영 감독,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장,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조근식 감독, 엄태화 감독, 신은수 배우, 허성재 아트필드 대표, 채은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포함한 문화예술 관계자와 언론인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부안무빙' 개막작으로 선정된 첫 번째 멜로 '가려진 시간'(2016)은 지난해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강한 존재감을 보여준 엄태화 감독의 첫 상업 영화이다. '가려진 시간'은 화노도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사건 후 멈춰진 시간 속에서 어른이 돼 나타난 성민(강동원)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단 한 소녀 수린(신은수)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멜로. 엄태화 감독과 신은수는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후, 모더레이터를 맡은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과 무대에 올라 영화 후일담을 공유했다.
먼저 엄태화 감독은 "'가려진 시간'은 커다란 파도 앞에 선 두 사람의 이미지에서 출발한 영화다. 중요한 배경으로 바다가 등장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영화를 보게 돼서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이어 "오랜만에 보니까, 제가 만든 영화 같지 않다. 어린 시절 은수를 영화로 만난 후, 바로 옆에 다 큰 은수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신은수 역시 "'가려진 시간'을 촬영하면서 바닷가를 진짜 많이 봤는데, 바다에서 관람하게 돼 기쁘다"며 "영화 촬영 당시에는 중학생이었는데, 지금 대학생이다. 내가 어렸을 때가 저렇게 생겼었구나, 어색해하며 영화를 봤다"라는 말로 8년의 시간을 더듬었다. 엄태화 감독은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수린 역에 발탁된 신은수의 오디션 상황을 떠올리며 "본인을 억지로 꾸미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열심히 하려다 오히려 얼어 버리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은수는 카메라 앞에서 전혀 떨지 않았다"며 신은수를 낙점한 이유를 공개했다.
이어서 진행을 맡은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의 깊이 있는 질문이 이어지며 현장의 눈과 귀가 더욱 무대에 쏠렸다. 주성철 편집장은 '가려진 시간' 세월호 비극을 내포하고 있는 영화라고 전하며 "영화에서 세상이 멈춘 시간은 4시 16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이 기호로 표기된 셈"이라고 부연했다. 강동원에 관한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특히 극 중 수린이 해변가 공중 샤워실에서 성민의 머리를 잘라주는 장면은 강동원의 미모가 유독 빛을 발해 개봉 당시에도 크게 화자 됐던 명장면. 이날 상영 중에도 해당 장면에서 객석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지기도 했다.
석양이 비치는 변산 해변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부안 무빙의 둘째 날인 16일, 조근식 감독이 해변에 마련된 야외 상영장을 찾아 '그해 여름'(2006)에 대한 추억을 관객들과 나눴다. '그해 여름'은 60년대를 배경으로 농촌봉사활동을 하는 대학생 석영(이병헌)과 농촌 처녀 정인(수애)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을 담고 있는 영화. 1969년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시대적 아픔을 멜로와 결합하는 시도로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는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가 모더레이터로 나서 조근식 감독과 시간 여행을 떠났다. 먼저 조근식 감독은 "2006년 이맘때 '그해 여름'을 찍었다. 그해 참 더웠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때의 여름 공기가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바다에서 보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운을 뗀 후 "이 영화는 필름으로 찍은 작품이다. 이후 영화가 디지털로 순식간에 넘어갔는데, 필름으로 작업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아날로그적이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바다에서 '그해 여름'을 감상한 소감을 전했다.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는 조근식 감독이 '그해 여름' 전에 연출한 작품이 류승범 주연의 코미디 영화 '품행제로'(2002)였다고 밝히며, "'품행제로'를 보며 한국 영화계에도 코믹한 영화를 이렇게 뻔뻔하게 만드는 감독이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차기작으로 진지한 멜로 '그해 여름'을 내놓으셔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근식 감독은 "어렸을 때, 무협지와 통속 소설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것들이 누추한 현실에서 탈출하는 해방구였다. 그런 의미에서 '품행제로'와 '그해 여름'은 나에게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했다.
조근식 감독은 영화 속에서 20대 초반과 60대 후반을 동시에 소화하며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선보인 이병헌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칭찬을 더했다. 또한, 장르의 대가인 김은희 작가의 시나리오 데뷔작이기도 한 '그해 여름'을 함께 작업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흥미로운 후일담을 관객과 함께 나눴다.
부안무빙 마지막 날인 17일, 영화 '변산'(2018)으로 변산과 인연이 깊은 배우 박정민이 생애 첫 연출작 '반장선거' 감독으로 변산을 찾았다. '반장선거'(2021)는 어른의 세계만큼 치열한 5학년 2반 교실의 반장선거 풍경을 담은 '초딩 누아르'다.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네 명의 아티스트(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가 연출한 '하드컷X왓챠 오리지널' 숏필름 프로젝트 '언프레임드'의 일환이다. 변산 해변에서 '반장선거'를 관람한 박정민은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와 야외무대에 올라 관객과 소중한 시간을 나눴다.
먼저 박정민은 "영화 변산'을 촬영할 때 한 달 반가량, 변산에서 생활했기에 저한테는 뜻깊은 곳이다. 변산에 내가 연출한 영화를 들고 다시 찾아뵐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언프레임드'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프로젝트에 참여한 가장 큰 이유는 (이)제훈이 형 전화 때문이다. 재훈이 형이 뭘 부탁하면 거절 못 하는 병이 있어서 '덜컥' 한다고 했다가 낭패를 본 시간이었다"며 솔직하고 유쾌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박정민은 "초등학생들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 안에 '갱스터의 모습', '정치인의 모습'이 엿보인다고 봤다. 그렇다면 힙합 음악도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고, 컷을 잘게 쪼개서 뮤직비디오처럼 만들어도 재밌겠다 싶었다"고 전해 연출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 관객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반장선거'는 공개 당시 리드미컬하고 빠른 편집으로 영화적 긴장감을 극대화시킨 작품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관객들의 질문도 쏟아졌다. 한 관객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으로 현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고, "연기와 감독 모두 해보신 입장에서 두 역할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묻는 말에 박정민은 "배우는 어쨌든 왔다 가는 사람이다.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로 발휘한 다음에 떠나는 사람인 반면 감독은 작품을 부여잡고 몇 년을 사는 사람, 즉 책임지는 사람이다. 제가 뭐라고, 감히 첨언할 수 없는 영역을 해내시는 분들"이라며 겸손함을 드러냈다.
지난 17일 부안 무빙은 폐막작인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2001)과 함께 막을 내렸다. '파이란'은 막장 인생의 삼류 건달 강재와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서 넘어온 불법체류자 파이란의 위장결혼을 쓸쓸하게 그린 영화. 이날 관객들과 함께 해변에서 '파이란'을 감상한 송해성 감독은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과 함께 무대에 올라 '파이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파이란'은 개봉 당시 '파사모(파이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팬덤을 형성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파이란'의 주역 최민식은 올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파묘'를 통해 젊은 팬층까지 끌어안았다. 사회를 맡은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은 "새로운 '파사모(파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과거의 '파사모'와 만나는 광경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진다"며 최민식의 존재감을 언급했다. 이에 송해성 감독은 "'파이란'은 롱테이크가 굉장히 많은 영화다. 아마, 최민식이라는 배우를 만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최민식 배우가 지닌 진정성 있는 연기가, 짧은 호흡으로 끝날 수 있었던 신들에 긴 호흡을 불어넣어 줬다"고 말했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홍콩 스타 장백지를 캐스팅한 사연과 촬영 에피소드도 공개됐다. 주성치의 '희극지왕'(2000)을 보고 장백지의 존재를 알았다는 송해성 감독은 홍콩에 연락을 취해 장백지를 캐스팅했다. 송해성 감독은 "강원도 고성에서 촬영했는데 그때 20년 만에 한파가 왔다. 영하 24도였으니 엄청났다. 장백지 씨가 '홍콩은, 영상 영도에도 사람이 동사한다'고 말해 웃었다. 당시 장백지 씨가 18세 어린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성숙하고 디테일한 연기를 잘 해줘서 고마웠다"며 감사를 표했다.
관객들의 질문도 쏟아졌다. 군산에서 왔다는 관객은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멜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묻자 송해성 감독은 "멜로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로 음악을 의미하는 '멜로스'(melos)에서 왔다. 우리가 장르를 나누다 보니까 멜로드라마로 한정돼 바라보는데, 멜로라는 건 결국 삶을 노래하고 인생을 노래하는 것이다"라고 로맨틱한 답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지난해 도예가 이능호 작가의 설치 작품 '집' 41점이 전시된 바닷가는 올해는 더욱 풍성해진 친환경 미술 작품 전시로 자연 친화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담아내는 ESG(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를 실천했다.
포스코스틸리온(김봉철 대표이사), 제로웨이스트 팩토리(양재혁 대표), 배지훈 작가의 업사이클링 미술 작품은 변산 바닷가를 한 폭의 팝업 미술 전시장으로 꾸몄다. 부안무빙을 찾은 관객과 관계자의 관심도 이어졌다. '그해 여름' 관객과의 대화 모더레이터를 맡은 이화정 영화저널리스트는 "'부안무빙'은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이라고 표현했으며, 강종순 한국관광공사 팀장은 "진짜 눈으로 봐야만 아는 보물"이라며 부안무빙을 극찬했다. 또 관람객 김도민(의사직업 58세)은 "올해 선정한 영화도 넘 좋고 두번째 오니 변산 해변을 더 사랑하게 된다"며 '부안무빙'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3일간 관광객과 영화팬의 가슴을 설레게 한 '부안무빙'는 전북 부안군이 주최하고 주관하며 후원과 협력으로는 한국관광공사, 한국영상자료원, 포스코스틸리온, 네이버 영화 콘텐츠 공식 파트너사 씨네플레이, 아웃도어 브랜드 스노우피크(Snow Peak), 왓챠가 함께 했다.
스포츠한국 이유민 기자 lum525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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