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제국 단계’ 한국...“미-중 갈등 줄이고 평화로 견인해야”

류이근 기자 2024. 8. 2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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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탄생 100주년 포럼 기조세션1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겨레가 주최하고, 김대중평화센터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 주관하며, 경기도가 후원한 김대중 탄생 100주년 포럼 ’격랑의 한반도,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기조세션-1에서 ‘다중위기시대, 한국의 선택’ 주제로 발제 및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때 미국과 냉전의 한 축을 이뤘던 러시아(옛 소련)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벌인 지 어느덧 2년째다. 앞서 ‘패권국’ 미국과 ‘도전국’ 중국은 흔히 ‘신냉전’으로 불리는 대결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지난해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도 다중위기에 직면한 세계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외부’의 불안정성과 ‘내부’의 대립이 겹쳐 한반도에 인 격랑의 파고가 어느 때보다 높다.

21일 열린 김대중 탄생 100주년 포럼에서 ‘다중위기 시대,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한 기조 세션 1에서 발제를 맡은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는 지정학적으로 ‘경계’에 선 한국이 안팎의 위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미-중 갈등을 완화하고 평화로 견인하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먼저 박 교수는 지금의 내부 진영 간 적대적 대립 상황을 짚었다. 그는 “같은 국민조차 (서로) 인정하지 않는데, 격렬한 전쟁터인 국제관계에서 다른 나라와 공존하기란 어렵다”며 “아무리 내부적으로 갈등해도 외교적으로는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 정책도 국민 통합 토대 위에 가능했다고 봤다.

그는 ‘경계국’이란 개념을 끌어와 한반도의 독특한 지정학적 역사에 주목한다. 대륙과 해양, 문화, 이념, 강대국 간 경계에 선 한반도에서 한번 전쟁이 터지면 세계 전쟁으로 번졌다고 봤다. 이런 분석 틀 아래 박 교수는 “냉전 시대에 한국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의 가장 중요한 전쟁터였다”며, 지금 미-중 패권 경쟁 체제가 ‘반도체 전쟁’으로 한반도에도 옮겨붙었다고 본다.

하지만 미-중간 갈등을 지나친 대결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오늘날 미-중 대결은 이전의 미-소 대결과는 판이하다”라며 “지금은 중첩이 많이 되고, 누가 자유의 수호자인지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냉화’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지금의 국제 정세를 냉전의 재현을 뜻하는 ‘신냉전’이 아닌 냉화(차가운 평화, Cold Peace)로 진단했다. 냉화는 마이클 도일 미 컬럼비아대 교수가 제시한 개념으로 나라끼리 긴장과 갈등이 존재하지만 직접적 군사 대결이나 극단적 이념 대립은 피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박 교수는 “신냉전이나 탈동조화(분리)로 세계를 다시 진영 논쟁으로 끌고 들어가서는 안된다”며 “다시 신냉전 기조에 포획된다면 한반도 문제를 넘어서는 중-러와의 불필요한 긴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정세는 미-중 장기협조체제의 산물이다”고 말했다.

그는 경계에 선 한국이 피동적인 지정학적 객체가 아니라 주도적,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지금 우리가 ’소용돌이’(의도와 상관 없이 휩쓸림)나 희생양 사고를 넘어서서 한반도의 전 세계적 교량과 통합, 통섭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종합 국력 6위이자, ‘준제국 단계’에 올라선 한국이 그만한 국력도 지녔다고 본다.

그는 “한반도가 김대중 대통령이 추구했던 것처럼 내부의 통합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에서 세계 평화를 선도해나가는 역할을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션 토론 참석자들도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 인식에는 한목소리였다. 이신화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는 2차 세계대전 뒤 미국 주도로 구축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미국의 상대적 쇠락과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자유진영 내 불협화음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봤다.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겨레, 김대중평화센터,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공동주관한 김대중 탄생 100주년 포럼 ‘격랑의 한반도,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가 열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는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신냉전이 아닌 냉화의 틀로 보는 진단에 동의하면서도 동아시아의 평화와 전쟁에 한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박 교수와는 견해를 달리했다. 그는 지리적 위치가 역사를 결정짓는다는 ‘역사 결정론’적 시각의 한계를 짚으면서, “한국의 복잡한 내부 정치, 사회 변화, 외교 전략” 등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봤다. 또 ’4강에 둘러싸인 상대적 약국’이자 ’강대국의 상호작용이 한국의 국제적 역할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강조했다.

현실 외교 안보 정책의 방향성에도 의견이 갈렸다. 이 교수는 “한·미·일 협력은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핵심 축”이라면서 “정부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의 속도와 범위를 현실적으로 조절하며, 독자적인 외교와 안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유럽이나 ’중간 입장 국가들’과의 관계를 지렛대로 삼아 국제사회에 한국의 의견을 더 잘 관철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토론문에서 대북 정책을 펴는 데 쌍방간 대화를 위한 노력보다 북한의 핵과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의 주요 의제로 지속적으로 부각시켜야 한다는 ‘압박 전략’에 무게를 뒀다.

같은 세션의 토론자로 나선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도 한반도를 둘러싼 대내외적 위험 인식을 함께 했다. 다만 그는 “다중위기 시대에 윤석열 정부는 위기 구조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커녕 오히려 위기를 만들고 심화하는 근본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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