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원조들이 본 윤 정부의 ‘뉴라이트 소동’

박찬수 기자 2024. 8. 2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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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칼럼]
을지연습 첫날인 19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 곳곳에 반국가세력이 암약하고 있다. 북한은 개전 초기에 이들을 동원해 혼란을 가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박찬수 | 대기자

‘뉴라이트’가 처음 출현한 건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4년 무렵이다. 그해 11월 서울 명동에서 운동권 출신 70여명이 모여 자유주의연대라는 단체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의 진보적 지향, 특히 대북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선언문에서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구체적 대안이 결여된 섣부른 자주외교는 한-미 동맹의 표류와 대북 안보 불감증의 확산을 초래했다”고 출범 이유를 밝혔다.

이 단체의 핵심 중 다수는 ‘엔엘(NL·민족해방) 전향파’들이었다.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던 ‘강철’ 김영환씨가 주도한 잡지 ‘시대정신’이 뉴라이트 탄생의 이념적 기반이 됐다.

북한을 추종하다가 반북(북한 민주화)으로 돌아선 뉴라이트는 보수 진영엔 매우 유용한 무기였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 두번이나 정권을 뺏긴 기존 보수세력은 이들에게 ‘뉴라이트’(신보수)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보수 부활의 전사가 되길 기대했다.

뉴라이트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박근혜 의원을 꺾고 대선 후보에 오르는 데 기여했다. ‘이명박은 뉴라이트, 박근혜는 올드 라이트(old right)’라는 구분은, 아버지 유산에 기반을 뒀던 박근혜에겐 불리한 프레임이었다.

하지만 뉴라이트의 화려한 날은 그리 오래가질 못했다.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대선 과정에서 뉴라이트에 기대 정치적 출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참신함은 사라지고 정치적 욕망만 분출했던 탓이다.

또 하나는, 일부 전향파 경제학자들이 일본 우익 시각과 맞닿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공공연히 주장해 국민적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을 주도했던 ㄱ씨는 “이런저런 이유로 뉴라이트 운동은 이명박 정부 초기나 중기에는 사실상 소멸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유주의연대 핵심 멤버 중 한 사람인 ㄴ씨도 “그때 뉴라이트 운동은 끝났다. ‘엠비(MB·이명박 대통령의 애칭) 2중대이면서 친일파’라는 비판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십수년이 흐른 지금, 다시 ‘뉴라이트 소동’이 불거졌다. 불을 지피고 키운 건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라고 말하더니, 올해 광복절엔 일제 침략과 만행에 대해선 언급 없이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강력히 열망하도록 변화시키겠다”고 밝혔다.

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선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반국가세력을 동원해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다.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북·친일’은 뉴라이트에 찍힌 낙인과 같다. 그런데 정작 뉴라이트 인사들은 윤 대통령의 언행이 당혹스럽다고 말한다. ㄱ씨는 “우리의 처음 목표는 북한 민주화였는데, 지금은 실체도 없는 뉴라이트가 오직 ‘친일·극우’로만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광복절 경축사인데, 일제 침략과 항일 독립운동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게 맞는 건가. 조선을 합병하는 조약이 무효라고 하면서 1948년에 건국했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ㄴ씨는 윤석열 대통령 발언은 오히려 과거 개발독재 시절의 올드 라이트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ㄴ씨는 “오래전부터 건국절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극우 성향의 ‘올드 라이트’들이었다. 이들이 새로운 이미지를 위해 ‘뉴라이트’라는 머리띠를 둘렀을 뿐이다. 지금 뉴라이트라는 어휘엔 정치적으로 한자리하기 위한 방편 외엔 남아 있는 게 없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요즘 윤 대통령 발언은 ‘새로운 보수’라는 말로 치장하기엔 너무 거칠고 원색적이다. 친일과 개발독재에 뿌리를 둔 한국의 강경 보수세력이 김대중·노무현 집권 이후 가졌을 분노와 증오의 그림자를, 윤 대통령 발언에서 느낄 수 있다. 정부를 비판하면 손쉽게 ‘반국가세력’으로 몰고, 전쟁이 발발하면 암약하던 이들이 들고일어나 북한군에 협력할 거란 겁박을 했던 게 거의 반세기 전 일이 아닌가. 시대정신과 자유주의연대에 참여했던 ㄷ씨는 “윤 대통령 발언을 보면, 부정선거와 5·18 북한군 개입만 빼고는 ‘태극기 부대’ 주장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뉴라이트든 네오콘(neo-conservative)이든 명칭이 중요한 건 아니고, 지금 윤석열 정부 인사들이 뉴라이트인지 아닌지 엄밀히 따질 필요도 없다. 진짜 문제는 뉴라이트 원년 멤버들조차 우려할 정도로 윤 대통령이 자기만의 성에 갇혀 역사를 거꾸로 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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