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지적장애 이유로 대출 거부는 차별···의사능력 구체적으로 살펴야”
지적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은행이 대출을 거부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A은행에 “지적장애 때문에 대출이 나오지 않은 피해자가 대출받기를 원하면 심사를 다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지적장애인에 대한 의사능력 확인 시 알기 쉬운 단어와 표현을 사용해 설명하도록 하는 매뉴얼을 준수하라”는 권고를 했다고 21일 밝혔다.
B씨는 10년 넘게 일하며 돈을 모았고, 아파트 청약 장애인 특별공급에 당첨돼 직장 근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그는 지난 3월 아파트 분양 대금 잔금을 치르기 위해 A은행 경기 지역 지점에 ‘장애인 디딤돌대출’을 신청했다. 은행 대출 담당자는 전화로 “대출금이 많은 편인데,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을까요?” “매달 상환 예상 금액은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상환 방법은 원금 상환, 원리금 상환, 체증식 상환 중에 어떤 것인가요?” “거치 기간은요?” 등을 물었다. B씨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대출은 승인되지 않았다.
인권위에 따르면 해당 은행은 B씨가 대출상품 내용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답했다. 은행은 후견인 없이 B씨의 대출을 승인하면 그 효력이 인정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고 보고 대출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B씨의 형은 “은행이 지적장애를 이유로 대출을 거부하고 후견인 증명서나 후견인이 필요 없다는 법원 판결문을 제출하라고 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인권위는 은행의 판단이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은행이 B씨의 의사능력 유무를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봤다. 인권위는 “추후 분쟁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의사능력을 문제 삼아 대출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디딤돌대출이 장애인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장애인 가구에게 금리우대를 적용하는 상품인데다가 B씨가 이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담보로 잔금 대출을 받으려고 했던 점에서 대출을 거부한 것에 합리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B씨가 2014년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해 10년간 경제활동을 해온 점도 참작됐다.
인권위는 A은행의 ‘장애인 응대 매뉴얼’에는 발달장애 손님이 찾아오면 어려운 단어보다는 그 단어의 의미를 살리되 쉬운 단어로 대화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쓰인 것을 짚었다. 그러면서 이 매뉴얼을 준수할 것을 권고했다. 지적장애인 대출 시 의사능력 유무를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후견인 증명서나 법원 판결문을 요구하는 업무방식도 시정하라고 했다.
인권위는 금융감독원에 재발 방지를 위한 지도와 감독을 권고하고, 금융위원회에도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대출 등 금융상품에 대한 알기 쉬운 안내서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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