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레거시와 한반도 평화’
김대중 탄생 100주년을 맞아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격랑의 한반도,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포럼에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김대중 레거시와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다음은 그 요지이다. (편집자)
그 어느 때 보다 평화가 절실한 지금, 한반도 평화의 길을 개척한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사상과 실천 노력을 회고하고, 그의 뜻을 받들어 다시 한반도 평화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김대중의 평화사상은 반세기 전인 1970년대 초부터 다져졌다. 젊은 정치인 김대중은 국회 의정활동을 통해 전쟁을 반대하고,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하면서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평화통일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1971년에 이미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보장받기 위해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가진 미-소-중-일 ‘4대국의 안전보장론’을 주창했다. 냉전적 반공논리가 지배하던 당시 상황에서는 파격적이었고,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다. 정적들은 김대중을 용공, 급진, 좌파, 빨갱이로 몰았다.
김대중의 평화통일론은 역사적인 상황 변화에 적응하면서 ‘김대중의 3단계통일론’(1995년)으로 완성된다. 1990년대 초 동·서 냉전 종식으로 유럽의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평화질서로 전환된다. 김대중은 유럽 평화체제와 독일 통일을 목격하면서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끝내고 평화와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굳히게 됐다.
김대중은 1998년 집권 후 마침내 그의 평화 사상과 평화통일론을 실천에 옮기게 된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정책 공조를 통해 한반도 평화만들기 노력을 병행 추진하는 2중 접근전략을 택했다.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 목표를 화해 협력을 통해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고, 남과 북이 서로 오가며 돕는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실현하는 데 뒀다. 화해·협력·변화·평화가 햇볕정책의 네 키워드이다. 김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첫째 어떠한 무력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 둘째 흡수통일 할 생각이 없다, 셋째 화해·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는 평화와 대북 정책 3원칙을 천명했다.
김 대통령은 동시에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설득해 한반도 냉전 종식과 평화 만들기를 위한 대북정책 공조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했다. 평화는 남과 북의 노력만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통감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는 민족 내부문제인 동시에 주변국가들, 특히 미국이 깊이 개입한 국제 문제다. 김대중 정부는 이렇게 미국을 설득했다. “북한 핵이나 미사일 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이다. 대증요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미국이 북한을 적대시하고 북한이 위협을 느끼는 한 북한은 대량살상무기 개발 유혹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대북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관계 정상화를 해야 하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김 대통령은 2000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 남북공동선언’을 내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인적 왕래와 교역,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설치 운영 등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 됐다. 또한 ‘6·15 남북공동선언’은 미국과 북한이 새로운 관계 수립에 합의하는 ‘미-북 공동코뮈니케’ 채택으로 이어지고,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관계 정상화를 위한 미-북 정상회담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중단되고, 그동안 어렵게 쌓아올린 화해 협력의 공든 탑이 무너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남과 북은 서로 ‘주적’이라며 적대와 대결로 역주행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우발적 군사충돌이 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을 걱정하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역사적인 긴 안목으로 볼 때, 지금 잠시 남북관계가 역주행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김 대통령의 ‘화해와 평화’가 실천에 옮겨질 날이 올 것이다. 북한이 ‘우리는 동족이 아니다’라고 한다고 다른 민족이 되는 게 아니고, ‘통일을 거부한다’고 통일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평화통일은 갑자기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도전을 이겨내며 장기적 단계적으로 추진해야할 역사적 과업이다. 결코 통일을 포기해선 안 된다. 평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평화 없이는 앞으로 전진할 수 없다.
한반도 평화의 장애물인 북핵 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이다. 북핵 문제를 군사적 압박과 경제적 제재로 해결하려는, 조지 부시 대통령 이후 미국의 접근방법은 성공하지 못했다. 상황을 악화시키고 북한의 핵 무장화를 초래한 한편, 북한을 러시아와 중국 진영으로 밀어넣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2018년 6월 미-북 정상이 직접 합의한 ‘싱가포르 미-북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 이 합의를 통해 ① 미국은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며 ② 군사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며 ③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미국이 하노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2019년 2월)에서 이 합의를 무산시켰지만,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미국의 의지와 결단이 문제 해결의 열쇠다.
북한은 1990년 미-소 냉전 종식 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외교 노력과 함께 핵 개발을 병행해 왔다. 북한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노딜’ 이후 이 병행전략의 실패를 인정하고, 일단 미국에 대한 미련을 접고 안보는 핵무력 강화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러시아와 유대 강화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무력을 완성했다지만, 지나친 모험을 자제하고 다시 협상에 나서야 한다. 핵 강국 소련의 붕괴를 보면서, 핵무기가 체제 보장이나 경제 발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나갈 길은 명백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제시한 것처럼 ‘민족 화해와 남북관계 개선·발전’ 노력을 통해서, 미-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견인하여 한반도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2000년과 2018년에 미국과의 정책 공조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한 경험이 있다. 다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한다.
이미 합의한 것처럼, 정전협정 체결 네 당사국(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4자 평화회담을 시작해야 한다. 이 회담을 통해 70년 군사정전 상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 나가는 포괄적이고 단계적인 평화 만들기를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환경과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미-북 적대관계 해소 및 북핵 문제 해결 노력과 함께, 남북이 서로 오가고 돕고 나누며 경제·사회·문화적으로는 통일된 것과 비슷한 ‘사실상의 통일’ 상황‘부터 실현해 나가야 한다. 냉전 체제를 해체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김대중 대통령이 구상하고 실천해온 한반도 평화의 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인내심과 일관성을 갖고 다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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