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수준의 '불평등': 지금이 부자감세할 땐가

한정연 기자 2024. 8. 2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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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시대와 尹 정부의 선택❶
세계불평등硏 올 1월 보고서에서
“韓 소득불평등 1930년대 근접”
OECD “상속세 등 불평등 완화책”
尹 정부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추진

정부가 지난 7월 확정한 상속세 개정안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최고세율 인하'다. 하지만 정작 서민에게 중요한 건 '공제 한도 조정'이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신경 쓰는 건 극소수의 초부자들이다. 이번 상속세 개정안이 부자감세를 뛰어넘은 재벌총수용 감세란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든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왜 '초부자 감세'에 집중하는 걸까. 불평등의 시대와 윤 정부의 선택 1편에서 답을 찾아보자.

경실련, 민변 복지재정위, 참여연대, 양대 노총 등이 주최한 '부자‧초부자 감세 중독에 빠진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의 모습. [사진=뉴시스]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절반으로 깎아주자던 상속세법의 정부 개정안이 7월 25일 확정됐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30억원 초과 50%'에서 '10억원 초과 40%'로 내리고, 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에게만 적용하던 할증평가(20%)도 없애는 게 핵심이다. 부자감세를 뛰어넘은 재벌총수용 감세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상속세의 공제 구간 조정이 아닌 최고세율 인하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 수그러들지 않는 상속세 논쟁=국회 의석 과반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은 일찌감치 반대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의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위원들은 지난 7월 성명을 내고 "상위구간 과표를 조정하고 세율을 40%로 낮추는 게 대체 서민·중산층과 무슨 관계인가"라며 "주택가격 상승으로 상속세 부담을 염려하는 중산층의 마음을 역이용해 엉뚱하게 거액 자산가 부담을 낮추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세율을 인하하면 중산층이든 서민이든 초부자든 똑같이 초고액을 상속받아도 세율이 떨어져 상속세가 줄어든다"면서 "그건 초부자 감세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상속세 최고세율 논쟁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4일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기획재정부에 "상속세 최고세율을 30%로 (개정안의 40%보다) 더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19일 넥슨의 지주회사 NXC가 창업자 일가 지분 6662억원어치를 사들이며 "그룹의 경영 안정과 상속인 일가의 상속세 조기 납부의 목적"이라고 공시한 이후엔 궤변에 가까운 의견까지 주목받고 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북콘서트에서 내뱉은 주장이 대표적이다. "상속세 폐지는 돈을 더 걷겠다는 방법론으로 당시(이명박 정부) 상속세율 최고세율을 낮추는 안을 국회에 가져갔지만 통과를 못 시켰다. … 세율을 낮추는 것은 증세하기 위한 정책이지,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 감세하는 것은 없다. 감세정책이란 말은 잘못됐다."

■ 부자감세의 반복=추경호 전 장관의 지난해 1월 발언도 강 전 장관의 주장과 유사하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3%포인트 인하하는 방안을 국회에 가져갔지만, 논의 과정에서 1%포인트 (인하)에 그쳤다. 법인세가 (정부) 의도대로 되지 않아서 투자세액공제율을 대폭 상향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7월 25일 "상속세와 관련해 아무래도 부자감세 논란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단순히 부자를 대상으로 감세하기 위한 건 아니다"면서 "상속세는 기업 승계와 우리 경제의 선순환이라는 측면에서 제약이 된다"고 말했다.

이익단체인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를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한경협은 2022년 11월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내리면, 기업 투자 증가율은 5.7%포인트 상승하고, 고용은 3.5% 늘어난다"며 "이에 따라 정부가 걷는 법인세수도 3.2% 증가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올해 상반기 소비와 기업 투자의 실종으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보다 0.2%나 줄었다. 올해 1~6월 국세 수입도 168조6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0조원 쪼그라들었다. 소득세가 2000억원 늘어나는 등 다른 세금이 증가했지만, 법인세가 무려 16조1000억원이나 감소한 결과다.

■ 증가하는 세계 불평등=기획재정부 전 장관들과 현 장관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쯤에서 우린 자본주의의 속성을 살펴봐야 한다. 자본주의에선 경제가 팽창할수록 불평등도 증가한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방치하면 부의 불평등이 경제 자원에 접근하는 기회의 불평등을 키우고, 결과적으로 불평등 구조를 영속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정부가 상속‧증여‧양도소득세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개인 자산에 직접 매기는 세금만이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8년 4월 'OECD 국가들의 순자산 과세의 역할과 설계'라는 보고서에서 "부자들은 고수익 투자, 고도의 금융 노하우 및 투자 조언에 접근할 기회가 더 많아서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며 상속‧증여‧양도소득세의 불평등 완화 기능을 강조했다.

하지만 자산뿐만 아니라 소득의 불평등까지 되레 악화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 각국이 제대로 된 과세를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KDB미래전략연구소가 19일 발표한 '국민계정을 통해 파악한 세계 소득불평등 동향' 보고서는 세계불평등연구소(WIL) 자료를 인용해 "세계 국내총생산(GDP) 상위 20개국에서 소득 상위 10%의 소득 비율은 2000년 40.4%에서 2010년 42.3%, 2022년 42.6%로 상승했고, 소득 하위 50%의 소득 비율은 2000년 17.2%에서 2010년 16.4%, 2022년 16.1%로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향후 불평등 악화 정도는 고소득층의 소득집중 속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는 올해 G20 의장국인 브라질이 글로벌 초부자세를 추진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프랑스 경제학자 가브리엘 주크만 UC 버클리(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6월 25일 발표한 초부자세 관련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놨다. "순자산 1억 달러 이상인 초부자(초고액자산가·Ultra high net worth) 3000여명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주식‧암호화폐‧금 등 모든 종류의 자산 가치의 2%를 매년 부유세(wealth tax)로 걷자."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6월 16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그렇다면 초부자 감세를 단행하는 우리나라는 세계 다른 나라와 달리 '불평등'이 약화한 걸까.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초부자를 위한 과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불평등도 악화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 불평등 수준은 GDP가 증가하면서도 약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불평등이 심화했다. 국제불평등연구소(WIL)는 올해 1월 발표한 '1933~2022년 한국의 소득 불평등'이라는 논문의 워킹페이퍼에서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지난 30년 동안 악화해 1930년대 식민지 수준으로 근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불평등 수준이 '일제 감정기' 때와 비슷하단 거다. 대체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어느 정도인 걸까. 이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나가보자.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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