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 아너’ 정의의 한계 앞에서 손현주의 ‘변신’은 시작됐다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4. 8. 2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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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그렇게 시작된다.

ENA 월화드라마 ‘유어 아너’의 김강헌(김명민 분)이 아들 김상현(신예찬 분)을 죽인 진범으로 확신한 송판호(손현주 분)의 빈집을 둘러볼 때, 송판호 침대 머리맡의 패드는 이 ‘변신’을 독송하고 있었다.

고결하고 존경받던 판사에서 한순간에 낯설고 끔찍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송판호의 심경을 대변하고 앞날을 예견케 하는 은유적 연출이다.

드라마는 ‘자식을 위해 괴물이 되기로 한 두 아버지의 부성 본능 대치극’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구호마따나 주인공은 존경받는 판사 송판호와 공포의 대명사 김강헌, 두 아버지다.

송판호는 공평무사하고 정의로우며 연민할 줄 아는 판사로 명성이 높다. 김강헌은 내력있는 조폭 집안의 계승자로 양지로 나와 우원그룹을 세웠으며 자신이 만든 우원시에선 먹이사슬의 정점에 서 있는 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송판호의 아들 송호영(김도훈 분)이 몰던 차에 김강헌으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은 오토바이를 몰고 달리던 아들 김상현(신예찬)이 치인다. 천식으로 고통받던 송호영은 채 119 신고를 마치지 못하고 현장을 이탈하고 김상현은 사망한다.

김강헌은 아들의 부음을 교도소에서 들었다.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권력은 있지만 양지의 원칙을 따르려 수감생활에 성실했던 김강헌은 형기만료 두 달을 앞두고 예의 자신의 권력을 앞세워 조기 출소한다.

아들로부터 사고 소식을 들은 송판호는 아들을 자수시키려 경찰서를 찾았다가 사망한 피해자의 아버지가 김강헌임을 알게 된다. 법을 다루는 송판호는 잘 안다. 김강헌이, 그리고 우원이 합법을 가장하고 있지만 이는 기생 열녀전 끼고 다니기에 다름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잔인한 인물이 김강헌이고 어느 조직보다 폭력적인 집단이 우원이란 사실을. 법이 아들을 처벌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저들은 자신의 아들을 앗아갈 것이다.

송판호의 사건 조작이 시작된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처음엔 사고차량만 어떻게 처분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정치를 하며 뒷세계를 제법 알고 있는 국회의원 친구 정이화(최무성 분)에게 부탁했다.

정이화로부터 부탁을 받은 부두파는 한번씩 부려먹는 이상택(안병식 분)에게 오더를 내린다. 그 이상택은 운 나쁘게도 교통신호 위반으로 걸려 도주하고, 도난 신고된 차량은 건재한 채 나머지 증거들을 쏟아낸다. 이상택은 그렇게 차량절도범에 이어 김상현 살해범으로 쫓기게 된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죽기 시작한다. 이상택의 집은 방화로 전소돼 무고한 이상택의 노모와 딸이 숨지고 송판호가 위로비조로 5억을 건넨 그 이상택조차 김강헌의 큰아들 김상혁(허남준 분) 손에 부두파 조직원 3명과 함께 처형된다.

김강헌은 부두파 두목 조미연(백주희 분)에게 말했었다. “항상 일을 복잡하고 크게 만드는 건 거짓말이야.” 감당 못하게 부풀려진 상황 전개에 송판호는 친구 정이화 앞에서 좌절한다. “대체 내가 얼마나 사악해져야 해결이 될 일이야? 대체 몇 명이 죽어야 끝날 일이냐고 이게!..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짓이었어!”

그런 송판호를 향해 친구 정이화는 시니컬하게 한 마디를 던진다. “자네 안전은 더 단단해진 거 아닌가?” 충고도 덧붙인다. “처음부터 사악해지기로 했으면 더 악랄하게 사악해지게. 그 사악함이 흔들리면 자네 무너져. 처음부터 사악하기로 마음 먹은 건 내가 아니야. 자네라고!”

이 대사와 연관된 장면들도 있다. 아들 사건과 판박이 사건에 유죄 판결을 내린 송판호는 자신이 도피자금을 건넨 이상택의 추적상황이 궁금해 형사 장채림(박지연 분)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이상택 사망사실을 듣고는 무슨 일로 불렀는 지를 묻는 장채림에게 웃으며 말한다. “아니야. 해결됐어.”

정이화 앞에서 상황에 대한 좌절과 한탄을 토로하던 중에도 이상택이 캄보디아로 동행하겠다던 그 아들의 행방을 묻기도 한다. 이렇게 이미 송판호의 이기심은 양심으로부터 멀어져 사악의 길로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발생한 결정적 사건. 카센터의 외국인 근로자 티랍의 협박이 시작된다. 티랍을 미행하던 송판호 뒤엔 김강헌의 안테나가 따라붙는다. 티랍과의 협상이 몸싸움으로 번질 즈음 김강헌이 등장하고 김강헌은 송판호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댄다.

“스물 한 살 생일을 맞은 아이였어. 생일선물로 가장 갖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오토바이라더군. 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재밌고 신난다고. 그런 아이를 네가 죽였어.”

김강헌은 여전히 송판호를 범인으로 알고 있었고 총알 한 방에 자신이 죽고 나면 아들 송호영은 안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송판호의 생존본능이 잿빛 뇌세포를 작동시킨다.

“오늘 아침에 김상혁이 잡혔다. 이상택과 부두파 조직원 3명을 살해한 혐의로 해경이 잡았어. 이상택의 아들 이청강이 목격자고 살아있어. 이상택의 조모와 손녀까지 죽인 사실이 밝혀지면 사형을 면치 못해. 내가 무죄를 받아줄 수 있어. 지금 날 죽이면 당신 하나 남은 아들 살릴 기회를 놓치는 거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송판호는 장채림이 경찰 내부에도 보고하지 않은 이청강의 존재와 김상혁 체포 소식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는다.

당장 죽이고 싶지만 죽일 수 없는 부정(父情). 김강헌은 “약속을 증명해” 라며 권총을 건넨다. 티랍을 죽이라는 소리. 그 장면은 촬영되고 있었다.

갈등하는 송판호의 눈동자에 비친 겁에 질린 티랍의 모습. “왜 이러세요. 당신 판사잖아. 판사가 사람을 어떻게 죽여. 내가 죽을 때까지 호, 호영이..” 아들의 이름이 나온 순간 송판호는 방아쇠를 당긴다. 탕, 탕, 탕. 세발이나.

애초에 일이 잘못되더라도 아들 대신 자신이 죽고 말 결심으로 사고 장본인을 본인으로 각색했다. 본의 아니게 가족을 잃은 이상택에게 5억을 건넬만큼의 양심도 있었다. 티랍도 용인할만큼의 요구를 해왔다면 받아들일 각오로 미행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이상택의 부고를 들었을 때 안도한 것도 사실이고, 당장 살기 위해 이청강의 안위를 넘긴 것도 사실이다. 아들의 이름을 티랍이 입에 올렸을 때 그 가련한 외노자의 숨통을 끊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존경받는 판사 송판호의 정의는 딱 그 만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딱 그 만큼까지 였다. 사건 조작에 이은 살인. 존경하는 재판장님 송판호는 과연 어디까지 사악해질 것인가?

김강헌은 공포의 대명사다. 하지만 사랑하는 자식들에겐 밝은 세상을 살게 해주고 싶다. 그러자고 법이 살라는 대로 죗값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죽었다. 자신이 선물한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를 당했다. 스물 한 살. 여전히 재밌고 신난 채 세상을 살던 아이가 길바닥에 팽개쳐진 채 30여 분을 고통에 신음하다 목숨을 잃었다.

아들을 죽인 자가 세상에서 존경받는 법조인 송판호 판사란다. 그 가증스런 인간은 사건을 조작했다. 그깟 존경을 받기 위해 온 몸이 산산이 부서진 아이를, 그 끔찍한 고통을 핏물과 함께 토해내는 아이를 길 위에 버려두었다. 그래 놓고, 내 아들을 그렇게 죽여 놓고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다는 건가? 자신이 동경했던, 아이들이 누리길 바랐던 그 양지의 세상도 이 따위로 돌아간단 말인가? 강헌은 딸 김은(박세현 분)의 품에서 속울음을 운다. 사람들은 약해서도 울지만 어떤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강했기 때문에도 운다.

이제 김강헌은 하나 남은 아들 상혁을 지켜야 한다. 그에게 상혁은 아픈 손가락이다. 엄마를 일찍 잃고 엇나간 아들이다. 자신이 넘겨주고 싶었던 밝은 세상 대신 자신이 벗어나고팠던 어둠 속으로 자꾸만 가라앉는 아이. 난폭하고 잔인한 성정조차 자신을 닮아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철천지 원수 송판호가 내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다.

총구의 위협 앞에서 끝내 아내를 배신한 아내의 비서.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날, 피묻은 손이 자꾸 신경에 거슬린다. 아무래도 자신의 손은 그렇게 피에 젖을 운명인 모양이다.

이 편파적인 아버지들의 싸움. 손현주와 김명민이란 완숙한 연기자들의 기싸움이 화력을 더해 간다.

여기에 어쩐지 복선같은 한 가지. 김상혁의 2년 전 폭행사건의 내막도 궁금증을 남긴다. 당시 김상혁은 무죄를 받았고 그 사건에 대해 장채림 형사는 “2년 전 그 때가 생각났어요. 판사님도 고통스러웠고 저도 너무 고통스러웠던... 이제 그 놈 잡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저 김상혁 잡을 겁니다.” 그리고 그 2년 전은 송판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 해였다. 송판호와 김강헌의 또 다른 악연, 아니 혹시 악연의 시작이 그 때였던 것은 아닐까?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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