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장애인 대출 거부’ 은행에, 인권위 “업무 방식 고쳐라”

고경태 기자 2024. 8. 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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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장애를 이유로 대출을 거부하고 후견인이 필요 없다는 법원 판결문 등을 요구한 은행에 대출심사 절차를 다시 진행하고 차별행위를 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권고가 나왔다.

인권위는 지난 7월31일 피진정인인 수협은행장에게 "피해자가 대출받기를 원하면 대출심사 절차를 다시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것과 지적장애인이 대출 신청 시 의사능력 유무를 사안에 따라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함이 없이 후견인증명서 또는 후견인이 필요 없다는 법원 판결문을 요구하는 업무방식을 시정할 것" 등을 권고했다고 21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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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엔 지도·감독 권고
지난 5월7일 충북 청주의 한 가정집에서 지적장애를 앓던 장애인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관련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21일 오전 충북도청 앞에서 \'사회적 참사 추모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한 회원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적 장애를 이유로 대출을 거부하고 후견인이 필요 없다는 법원 판결문 등을 요구한 은행에 대출심사 절차를 다시 진행하고 차별행위를 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권고가 나왔다.

인권위는 지난 7월31일 피진정인인 하나은행장에게 “피해자가 대출받기를 원하면 대출심사 절차를 다시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것과 지적장애인이 대출 신청 시 의사능력 유무를 사안에 따라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함이 없이 후견인증명서 또는 후견인이 필요 없다는 법원 판결문을 요구하는 업무방식을 시정할 것” 등을 권고했다고 21일 밝혔다. 또한 금융감독원장에게는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나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에 대한 지도・감독을 철저히 할 것을, 금융위원회 위원장에게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대출 등 금융상품에 대해 알기 쉬운 안내서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진정인(피해자의 형)은 지적장애인인 피해자가 10년 넘게 돈을 모아 직장 근처에 장애인 특별공급 당첨으로 분양받은 아파트의 잔금용 대출을 위해 디딤돌대출 수탁은행인 피진정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으나, 지적장애를 이유로 대출을 거부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디딤돌대출은 장애인에게 연 0.2%포인트 금리 우대 등의 혜택이 있는데, 피해자는 이를 위해 장애 사실을 밝혔다가 대출 자체를 못 받게 된 불합리한 상황에 놓인 셈이었다.

피진정인인 하나은행은 “단순히 지적장애를 이유로 피해자의 대출을 거절한 것이 아니며, 관련 업무편람 등에 따라 피해자의 대출계약 체결을 위한 의사능력 및 상품 주요 내용 이해 여부 등을 확인한 결과 피해자의 의사능력 및 대출상품의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확인하였다”고 답변했다. 또한 “2006년 대법원 판례에서 지적장애인의 금전 계약이 무효 판결된 사례가 있는 바, 이 사건 아파트 잔금대출 과정에서 후견인 없이 대출약정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고 덧붙였다.

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장차소위, 소위원장 남규선 상임위원)는 “은행이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임을 확인한 후, 업무편람에 명시된 내용에 따라 피해자의 의사능력 유무를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추후 분쟁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피해자의 의사능력을 문제 삼아 대출을 거부한 것”이라며 “이러한 피진정인의 행위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것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7조에서 금지하는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제17조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자는 금전 대출 등 금융상품과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 인권위 장차소위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른 장애인 특별공급 및 장애인 가구 금리 우대를 적용하는 디딤돌 대출의 취지가 장애인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 점 △피해자의 대출 목적이 이 사건 아파트를 담보로 잔금대출을 받아 입주하기 위한 것인 점 △피해자가 2014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취업하여 10년간 경제활동을 해 온 점 등을 살펴볼 때, 피진정은행이 대출을 거절한 이유에 합리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22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2·3차 병합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대한민국이 알기 쉬운 버전, 평이한 언어 등과 같은 접근 가능한 의사소통 형식을 개발, 홍보, 사용하기 위한 적절한 예산을 마련하여, 장애인이 모든 공공 정보에 접근 가능하도록 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제44항).

또한 발달장애인법 제10조 제1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각종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변호를 많이 해온 손영현 국선 전담 변호사는 이번 권고와 관련해 “지적장애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없이 일괄적으로 차별적이고 과도한 조치를 강요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고, 특히 직장에서 장애인식교육이 의무화되어 있음에도 실제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장애에 대한 인식부족이 안타깝다”며 “발달장애인법이 형사사법기관에서 제대로 준수되지 못하는 것과 함께 우리 사회의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고, 이번 기회를 통해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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