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재밌고 유익한 국어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 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성곤 전 KBS 아나운서.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위원. 가천대 특임교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대인에게 필요한 역량으로 흔히 '4C'를 든다. 첫째로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 의사소통 능력이다. 타인의 글과 말을 접하고 뜻한 바를 파악하며 자신의 글과 말을 전달력 있게 실현하는 힘을 말한다.
둘째는 협업 Collaboration. 사람들과 일을 함께함에 있어 협력과 협동을 통해 시너지를 내고 최선의 성과물을 도출하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 Critical Thinking이 세번째다. 상황과 현안을 파악하고 문제의 맥을 짚어 모순을 찾아내면서 개선점을 찾는 역량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창의성 Creativity이다. 뛰어난 아이디어는 새로운 관점, 혁신적 접근과 통한다. 다양한 경험과 맞닥뜨리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겁내지 않아야 할 터다.
그런데 이 4C를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4C를 갖췄음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말이다.
결국은 언어다.
인간은 언어라는 집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말과 글, 언어의 뭉근한 위력은 엄청나다.
크게 보면 우리 언어환경은 세가지다.
문법과 문학을 주로 접하는 학교 국어, 일상을 영위하는 회화의 영역, 그리고 미디어 언어다.
누군가는 국어라고 하면 여전히 학교 국어를 떠올리며 맞춤법과 표준어에 대한 강박적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반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어문규범의 답답하고 고루한 원리주의와 교조주의를 성토하는 이도 존재한다.
한편으로 한자 교육의 부실을 지적하며 추락한 문해력에 혀를 끌끌 차고, 또 다른 지점에서는 순 한글 주의를 좇아 토박이말 살리기에 투혼을 불사른다.
일상 회화의 마당에서는 자신의 말하기 실력 부족을 탓하며 프레젠테이션 등에서 발표 공포와 불안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국어 능력이 떨어져 언변이 왜소해지는게 아닐까 여기는 것이다.
우리말의 보루가 돼야 할 미디어 언어 쪽은 그 중요성과 영향력이 막대함에도, 빈번한 오류를 넘어 국어의 가장 큰 오염원이 아닐까 의심들 정도로 우리말의 위상 저하가 말이 아니다. 신문의 문장은 난삽하고 어지러운 방송 자막은 낯을 붉게 만든다.
단어와 표현의 힘이 관건이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는가.
정오正誤의 지평은 맨 앞자리가 마땅하다.
언제나 단단해야 할 정확한 말글의 영토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알맞고 실효적인 단어와 어우러지는 세련되고 근사한 표현이 자리한다. 그리고 마무리는 시대적 흐름인 소수자·다원성·비주류를 의식하는 배려언어의 자리이지 싶다.
필자는 37년간 공영방송 미디어인 KBS의 아나운서로서 읽기와 말하기를 업으로 살아왔다.
보도본부의 뉴스 원고와 교양국, 예능국의 각종 대본 등을 매일 접하며 단어와 표현, 텍스트의 허와 실을 파악하는 안목을 키웠다.
뉴스, 시사, 음악 등의 방송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했고 입사 시험 출제, 신입사원 교육, 공채 면접관 노릇도 자주했다.
KBS한국어능력시험(KLT)은 나의 분신이라 할 만하다. 제1회 시험부터 17년간 출제위원과 검수 위원을 맡아 청춘을 불태웠다.
대학교수, 고등학교 교사, 국립국어원의 연구원, 국어학 박사과정 젊은이 등과 수시로 합숙하며 '시험용 국어'와 씨름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언어특위 활동을 통해 외래어·외국어의 남용, 부적절하거나 부정확한 표현, 신조어·통신언어·유행어, 과격하거나 폭력적인 표현, 자막 오류, 비속한 표현, 무례하거나 억지스러운 표현 등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강사라는 색다른 경험도 했다.
국어문화학교는 국어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어문규정과 국어사용 능력을 전수해주는 과정이다.
여기서 나는 표준 발음법 과목을 도맡아 방학 때마다 중·고교 교사들과 만났다. 발음은 이론이 아니라 실습이 본질이기에 교수·박사 대신 공영방송 아나운서에게 강의의 기회가 온 것이었다. 소중하고 뿌듯한 기억이다.
'어름사니'라는 말이 있다.
남사당놀이 중 하나인 줄타기의 고수줄꾼을 말한다.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말과 글어름에서 행복한 줄타기를 해왔다.
말하는 직업인 아나운서라는 정체성에 각종 국어시험 출제, 텍스트수정·보완, 글쓰기 노하우를 병행해 온 삶이었다.
아나운서는 국어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국어를 사용하는 가장 예민한 관찰자요, 철저한 검수자다.
학자들이 책상 앞에 골똘히 앉아 있을 때 우리는 '현장'을 바삐 서성거린다. 특히 '말하기'와 '읽기'라는 기능 국어의 영역에서 본보기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왜 그렇게 틀리는가?""어째서 매번 헛갈리는가?""방법과 대안은 없나"라는 틀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당신이 목마를 대목이 이 점이라고 여겨서다. 무심히 쓰는 관성적 표현을 톺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빈틈을 헤집으며 유쾌한 반란을 감행하기도 한다.
통사론·의미론·형태론 등을 관통하는 국어적 오류와 수정이 다수지만 PC(정치적올바름)와 현대에 맞는 윤리에 따른 배려 언어를 다룬 대목, 그리고 한글 자모의 정확하고 명료한 음가 내기 등의 노하우는 독자적이며 오롯이 새로운 차별화 지점이다.
신조어에 관대한 편이다. 선정성·폭력성·저급성의 잣대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엄지척, 넘사벽, 웃프다' 등은 좀체 미워하기 힘들다. 이 책은 '알잘딱깔센'에 해당한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만든 국어의 만화경이다.
'중꺾마'라고 했던가? 백번 옳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국어는 그동안 당신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못했다. 사뭇 굼뜨고 너무 딱딱하고 무척 강퍅했다. 그러나 재밌고 유익한 국어는 가능하다.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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