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쌓으며 살아가기[유희경의 시:선(詩:選)]

2024. 8. 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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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을 펴냈다.

사진과 시를 묶어 지금껏 나의 삶을 풀어내 보았다.

탈고하고 나니 한 번 더 살아본 기분이 들었다.

책이 나올 즈음이 되니 이곳저곳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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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살고만 싶다고 말한 사람이나 평생을 죽고만 싶다고 말한 사람이나 모두 벽돌을 쌓는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 묻고 싶은 말이 있는 얼굴이다// 그래도 쌓아간다는 건 좋은 일 같아/ 좋았던 날들을 기억하려는 마음 같아서’

- 이승희 ‘벽돌을 쌓는 사람들’(시집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산문집을 펴냈다. 사진과 시를 묶어 지금껏 나의 삶을 풀어내 보았다. 아슬하고 애틋한 작업이었다. 탈고하고 나니 한 번 더 살아본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부끄러웠다. 책이 나올 즈음이 되니 이곳저곳이 아팠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야. 책을 받은 선배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와 위로해주었다.

책의 편집자이자 후배 시인이기도 한 S가 염색약을 선물해줬다. 기분을 전환해보라는 뜻이리라. 성성해진 흰머리를 지금껏 감춘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해볼까. 한 번 하고 나면 그치기 어렵다는데. 그럼에도 후배의 마음에 동한 호기심을 접지 못했다. 아내의 도움을 받았다. 거울 앞에 서니 웃음만 나왔다. 꼼짝없이 나이를 의식하는 것 같아 뜨끔했다. 정작 내 머리를 본 친구들은 감탄했다. 이제 사십대로 보여. 한 사람이 외쳤다. 나는 원래 사십대인데. 나의 볼멘소리에, 염색을 했으니 사십대를 인정한 셈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염색했다는 건, 내 나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뜻이겠구나. 절로 주억거리게 되는 것이다. 한편 묘하게도 의젓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 나이를 순순히 인정하게 되었다니. 어설프게 지금까지를 정리해보게 된 까닭도 아마 지금에 다다른 덕분이겠지. 어쩐지 위로가 되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든 딛고 오르고 쌓아가고 있다. 의도와 우연이 빚은 성실함으로, 때로 근사하게 그보다 잦은 서?으로 ‘나’라 할 만한 형태를 이뤄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숨길 수도 없거니와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검은 머리든 흰머리든 나는 나라는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기에.

시인·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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