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재부, 올해도 세수 결손 돌려 막는 ‘법 기술자’ 될 것인가

세종=박소정 기자 2024. 8. 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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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역대 최악의 세수 결손 사태가 기정사실이 됐을 때 기획재정부 내에서는 때아닌 ‘국가재정법’을 정독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1년이 지나고 국회 결산 심사를 앞둔 시기가 되니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2023회계연도 결산서에 내부 거래와 기금운용계획 자체 변경 등 당시엔 알기 어려운 복잡한 세수 결손 대응 방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입이 세출보다 적으면 지출을 줄이거나 적자 국채를 발행해 필요한 돈을 조달해야 한다. 그런데 기재부 공무원들은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국가 채무를 늘리지 않기 위해 또는 국회 심의를 피하기 위해 ‘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재정법의 모호성을 활용하면서 위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세수 결손 대응 분석’에만 장장 70여쪽을 할애한 결산 보고서로 이런 문제들을 조목조목 지적해 놓았다.

문제 삼을 수 있는 대표적인 대목은 ‘일반회계’와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의 내부거래 모습이다. 한해 각종 사업들을 집행하기 위해 쓰는, 통상 ‘예산’이라고도 불리는 돈은 ‘일반회계’에서 쓰인다. 이 일반회계에 돈을 채워야 정상적인 예산 집행이 가능하다.

일반회계는 수많은 회계·기금들의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자기금’으로부터 매년 돈을 빌리고(예탁), 과거에 빌린 돈에 대한 이자(예수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정부는 기금 주요 항목의 지출 금액을 일정 범위 안에서 변경할 수 있는데, 금융성 기금은 30% 이내, 그 외 기금은 20% 이내에서 자체 변경할 수 있다.

기재부는 지난해 공자기금으로부터 돈을 꺼내 일반회계에 18조2000억원을 추가로 집어넣었다. 이는 당초 계획의 37.9%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20% 이내로 변경할 수 있다’는 기준보다 많은 금액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18조2000억원 중 내야 할 이자를 갚지 않고 미루는 방식으로 확보한 8조6000억원이 20%에 계산되지 않는 항목이라서다. 법이 허용한 20%(9조6000억원)를 꽉 채우고 추가로 돈을 당겨 쓸 묘수를 찾아낸 셈이다.

2023년 일반회계와 공자기금의 내부거래. /국회예산정책처

기재부의 대응 방식은 사실 ‘위법’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미심쩍은 정황으로 꼽힌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의 공자기금 예수 원금 조기 상환, 법정 전출금 미지급 등 과정에서도 정부는 법적 근거를 자신 있게 설명한다. 야당의 ‘송곳’ 결산 심사 예고에도 기재부가 “세수 결손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돈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에 따른 시각 차이”라며 “모든 결정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쉽사리 비판적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국가재정법은 과도한 기금 계획 변경과 이에 따른 재정 운용의 남용을 막고자 변경 한도 제한을 뒀을 테다. 명문화한 규칙은 지켰으나, 취지엔 부응하지 못했다. 제때 갚지 않은 이자에는 가산 이자가 붙고 이는 결국 미래의 재정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부작용’은 결과적으로 국회에서 검토될 기회를 잃었다.

올해도 작년과 비슷한 세수 결손이 예상된다. 감세와 부담금 정비 등을 통해 돈 들어올 구멍은 막기만 하면서 건전 재정을 운용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는 여전하다. 그런데 명확한 대책이 안 보인다. 재정 전문가들은 기재부가 또 기금을 활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올해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세수가 얼마나 비고, 무슨 회계·기금들을 어떻게 끌어다 쓸 것인지 빠짐없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문제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 예상되는 부작용은 무엇인지, 그것이 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보다 나은 선택지인지 소상히 설명해 적절성에 대한 논의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법문 해석 가능성을 십분 활용해 법의 목적을 왜곡하는 ‘법 기술자’와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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