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팩트체크 플랫폼의 퇴장이 유독 씁쓸한 이유

박재령 기자 2024. 8. 21. 10:4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언론의 팩트체크 기사 진흥 사업을 해오던 SNU팩트체크센터가 출범 7년 만에 활동이 무기한 중단됐다.

팩트체크 기준 마련, 인턴 지원 등 애초에 센터가 하던 사업들은 언론사에 국한된 일들이었고 설령 그 언론사의 팩트체크 기사를 읽었다 하더라도 뒤에 센터 지원이 있었다는 걸 알기는 어려웠다.

센터와 협업하는 언론사들은 팩트체크 기사를 쓸 때 실명 취재원, 근거자료 명시, 수정내역 공개 등을 강제 당하는데 하나라도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센터 연구원들에게 전화가 온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자수첩] 정치권 압력으로 사라진 SNU팩트체크센터…정치적 목적 아래 저널리즘 인질로 잡힌 것 아닌가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 박성중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월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언론의 팩트체크 기사 진흥 사업을 해오던 SNU팩트체크센터가 출범 7년 만에 활동이 무기한 중단됐다. 독립적으로 저널리즘 기구를 운영해도 정치권 압력으로 문을 닫는 세상에서 앞으로 누가 그 책임을 떠맡으려 할까.

SNU팩트체크센터(센터)는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가 30여개 언론사들과 협업하던 비영리 팩트체크 플랫폼이다. 그동안 네이버의 자금 지원으로 운영됐는데 '좌편향'됐다는 여당의 공세 이후 지난해 네이버가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센터장은 네이버가 정치권 압력으로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고 폭로했다.

[관련 기사 : “네이버, 국정감사 전에 팩트체크 내려야 한다고… ” 정치권 포털 압박 증언 나왔다]

네이버를 둘러싼 외압이 드러났지만 대중적 관심도는 적었다. 팩트체크 기준 마련, 인턴 지원 등 애초에 센터가 하던 사업들은 언론사에 국한된 일들이었고 설령 그 언론사의 팩트체크 기사를 읽었다 하더라도 뒤에 센터 지원이 있었다는 걸 알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센터는 조용히 활동을 중단했다.

이번 퇴장이 유독 씁쓸한 이유는 센터가 한국에 몇 안 되는 독립적 저널리즘 기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돈을 받지 않고 기업 영업을 따로 하지 않으며 '좋은 저널리즘'이라는 열의가 관계자들에게 있었다. 언론의 기형적 수익 구조 속에서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 유일한 섬처럼 보이기도 했다.

'팩트체크'는 당연하지만 '팩트체크 기사'는 당연하지 않다. 센터와 협업하는 언론사들은 팩트체크 기사를 쓸 때 실명 취재원, 근거자료 명시, 수정내역 공개 등을 강제 당하는데 하나라도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센터 연구원들에게 전화가 온다. 빨리 기사를 쏟아내야 하는 언론사에게 매우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다. 기자들은 귀찮아했을까.

그 반대였다. 지난해 열린 한국언론학회 가을학술대회에선 TV조선, 연합뉴스, CBS 등 각기 다른 팩트체크팀 기자들이 모여 '효능감'을 얘기했다. 홍혜영 TV조선 기자는 “팩트체크 기사를 통해 기자의 정체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고 이웅 연합뉴스 기자는 “기자 생활 22년 정도 됐는데 (팩트체크 기사를 담당한) 2년 동안 들인 노력과 애착 등 차이 나는 게 많다”고 말했다.

▲ 정은령 센터장 발제자료 갈무리.

데이터로 입증된 유의미한 차이도 있었다. 정은령 센터장이 이 학술대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센터에 게재된 팩트체크 기사의 평균 길이는 2017년 1183자에서 2023년 3421자로, 팩트체크 기사 평균 근거 수는 2017년엔 0.45개에서 2023년 7.9개로 증가했다. 정 센터장은 “최근의 어떤 팩트체크 기사는 20개가 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센터가 사라지면 다시 언론사는 '가성비'를 찾게 될 것이다. 근거자료를 찾는 대신 단순 인용하는 게 영리한 선택이 될 것이며 아무도 모르게 기사를 수정해도 딴지 걸 사람이 사라질 것이다. '고품질 저널리즘'엔 비용이 많이 든다. 그 비용을 부담하기엔 언론사들의 기초체력이 너무 얕다. 저널리즘의 상실은 사회의 몫인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건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 한계 속에서 기자들의 무력감은 쌓이고 있다.

센터가 활동을 중단한 사이 국민의힘은 '가짜뉴스' 공세를 계속했다. 지난 16일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은 '가짜뉴스 방치하는 플랫폼! 공적책임 강화 정책토론회'를 주관했다. 지난해 1월 박성중 당시 국민의힘 의원은 센터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가짜뉴스 선동자로 전락시켰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가짜뉴스'는 무엇인가. 정치적 목적 아래 저널리즘을 인질로 잡는 건 아닌가. '팩트체크'를 논할 자격은 될까.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