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 '행복의 나라'에서 얻은 새로운 기회[TF인터뷰]
변호사 정인후 役 맡아 작품의 길잡이 역할 해내
"만듦새가 좋은 영화적인 작품…故 이선균, 눈빛만 봐도 알아"
조정석은 지난 14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에서 법정에는 정의가 아닌 승패만이 있다고 믿는 변호사 정인후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최근 두 작품의 홍보 일정을 동시에 소화하고 있는 그는 '행복의 나라' 개봉 전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조정석은 지난달 31일 개봉한 '파일럿'(감독 김한결)이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 관해 기쁨을 표하면서도 '행복의 나라' 개봉을 앞두고 떨리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파일럿'이 잘 안됐으면 아찔했을 것 같아요. 잘돼서 한시름 놨죠"라며 "두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게 됐는데 앞으로 제 연기 인생에 이런 날이 또 올까 싶어요. 과분하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작품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10.26 대통령 암살 사건과 12.12 사태를 관통하는 정치 재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동안 두 사건을 다룬 한국 영화는 있었지만 그 사이에 벌어졌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행복의 나라'가 처음이었다.
극 중 정인후는 박태주를 살리기 위해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로, 당시의 재판 기록들과 재판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종합적으로 대변하는 창작된 캐릭터다. 이를 연기한 조정석은 하얀 피부 톤을 다운시키며 흙 감자 같은 비주얼을 완성했고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장착하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다가도 울분을 토하고 감정을 터뜨리면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이렇게 '행복의 나라'를 만나 배우로서 또 한 번 새로운 얼굴을 꺼낸 조정석은 "영화를 찍을 때부터 '내가 지금 못하고 있지 않구나'라는 좋은 감정을 많이 느꼈어요. 그때부터 영화가 기대됐고 완성본의 만듦새도 너무 좋았어요"라며 "많은 분이 저에게 유쾌하고 재밌는 연기를 연상시킨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러던 중 이 작품을 제안받았는데 저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 될 것 같더라고요. 이런 캐릭터를 제안받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 더 소중하게 다가왔고요. 그래서 도전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정석으로서 숨을 쉴 수 있는 코미디적인 부분을 아예 배제하지는 않았어요"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조정석은 관객들이 정인후를 통해서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 수 있게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연기를 하면서 조정석으로서 감정이 치솟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감정선을 잘 분배해야 이야기의 길잡이로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죠. 관객들에게 정인후의 감정을 전달하는 걸 많이 신경 썼어요"라고 연기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이날 작품의 무거운 분위기와 달리 화기애애했던 '행복의 나라' 촬영 현장을 떠올린 조정석은 유재명과 함께 호흡을 맞춘 소감을 전했다. 이번이 첫 만남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전상두로 변신한 유재명을 보고 놀랐다는 그는 "형님에게서 볼 수 없었던 눈빛을 봐서 너무 무섭고 놀랍고 신기했죠"라며 "극 중 전상두는 나긋나긋하면서도 격조 있는 생경한 느낌이었어요. 형님의 연기를 보고 수긍했죠"라고 회상했다.
특히 극 중 정인후와 전상두가 만나는 골프장신은 압권이다. 전상두가 골프를 치면 달려가 공을 주워 오는 정인후는 그에게 박태주를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상두는 '이미 재판 결과가 정해져 있다'고 당연하게 말하고 이를 들은 정인후는 전상두에게 일갈하면서 보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앞서 유재명은 <더팩트>와 만나 해당 장면을 3일 동안 여러 버전으로 촬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조정석도 처음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가장 기대했던 장면 중 하나였다고. 그는 "판타지라고 생각해요. 영화니까 가능한 장면이죠. 그래서 더 애착이 가요"라고 자신이 느낀 점을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탄생한 장면에 관해 "정확히 몇 번의 테이크를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많이 찍었어요. 제가 왼쪽 허벅지 햄스트링을 다친 적이 있는데 차가운 물에 들어갔다가 뛰고 하니까 몸이 좀 힘들었어요. 고생을 하긴 했죠"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어 메가폰을 잡은 추창민 감독에 관해서는 "그를 집요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디테일하고 섬세하고 악착같다는 수식어가 떠올라요"라고 설명했다.
앞서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조정석은 "이선균 배우에게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물었더니 조정석 배우 때문이라고 하더라. 조정석이 되게 좋은 배우 같아서 그와 함께하면서 배우고 싶다고 했다"라는 추창민 감독의 발언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기에 함께 연기한 동료를 떠나보낸 조정석의 아픔을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이날도 이선균을 향한 그리움을 드러낸 그는 "선균이 형과 굳이 이 장면에서 어떻게 하자라는 말을 나누지 않았어요. 눈만 봐도 알았죠. 그래서 매 현장이 너무 좋았어요. 촬영이 끝나고 일상에서도요. 사실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할까 봐 현실의 감정을 배제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극 중 정인후와 박태주가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에서는 무너지더라고요. 그리고 나서는 괜찮았어요"라고 말해 먹먹함을 안겼다.
그렇다면 조정석에게 '행복의 나라'는 무엇일까. 그는 "개개인이 추구하는 행복이 다르고 나라의 정의가 다를 것 같은데요. 저는 가족인 것 같아요. 작은 인원수이지만 평안하고 화목했으면 좋겠어요"라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올해 tvN '세작, 매혹된 자들'을 시작으로 뮤지컬 '헤드윅'에 이어 영화 '파일럿'과 '행복의 나라'로 대중과 만나고 있는 조정석이다. 브라운관부터 무대와 스크린까지 '열일' 행보를 펼치고 있는 그는 오는 30일 넷플릭스 '신인가수 조정석'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렇게 다채로운 플랫폼에서 쉼 없이 달리고 있는 조정석은 "모든 게 끝나면 온전히 쉬고 싶다"라는 바람을 내비쳤다.
끝으로 조정석은 '행복의 나라'를 '영화적'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영화적이라는 말이 되게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10.26과 12.12가 많이 봐왔던 소재고 저희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거지만 판타지가 들어가고 가공의 인물이 길잡이가 되어주는 영화에요. 만듦새가 너무 좋아요요"라고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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