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에게 광화문이란…참을 수 없는 '개조의 유혹'
정도전, 화마 북상 막으려 한양 배치 축 기울여
일본, 총독부 기준 새 축 만들어 한반도 장악
박정희, 총독부 건물 복원 등 개조 가장 적극적
역대 대통령과 서울시장 거의 모두 개조 추진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6·25 전쟁에 함께한 22개국 참전국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국가상징공간'을 광화문광장에 조성하겠다고 천명했다.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다음 달 설계 공개모집을 거친 뒤 내년 5월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해 내년 9월까지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형 태극기를 둘러싼 논란 등 반대 여론이 만만찮지만 오 시장과 서울시는 이를 정면 돌파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식 설문조사나 투표가 아닌 '의견 수렴'이라는 변형된 형태로 찬성 우위 상황을 만들어 국가상징공간 조성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일고 있지만 시는 더는 물러서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로써 광화문 일대는 2022년 8월 지금의 모습을 갖춘 뒤 또 한 번 변화를 겪게 됐다.
역사적으로 광화문과 이 일대는 역대 위정자들에게 개조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였다.
광화문광장이 있는 세종로와 광화문 네거리 일대는 600년 고도(古都)인 서울의 중심 가로이자 국가 상징가로다. 조선왕조가 이곳에서 시작된 이후 서울의 역사는 이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졌고 이 때문에 권력을 잡은 이들은 늘 이곳을 자신의 뜻대로 바꾸려 해 왔다.
광화문광장은 세종로에 자리 잡고 있다. 세종로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할 때부터 정도전의 설계 하에 너비 58척(尺) 규모로 조성된 대로였다. 세종로는 조선 관서인 6조(曹)와 주요 관아가 있다는 이유로 육조 앞이나 육조거리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의 기틀을 잡은 설계자로 평가 받는 정도전은 이 육조거리가 경복궁의 배치 축과 일치하지 않게 했다. 화마가 남쪽 관악산에서 경복궁 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계획적으로 육조거리와 숭례문까지 길을 직통으로 연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정도전이 설계한 국가 상징 축은 일제강점기 들어 훼손됐다. 일본은 강제 합병 직후 조선 왕조의 정당성과 권위를 훼손시키고 식민지 통치에 적합한 수도로 만들겠다며 서울시의 공간구조를 계획적으로 재편했다. 광화문을 아예 헐어버리려던 일본은 조선과 일본의 지식인들의 반대에 직면하자 광화문을 조금 옮기는 방식으로 꼼수를 썼다.
이로써 조선총독부, 경성부청, 조선신궁 중앙부가 연결되는 일제의 축이 형성됐다. 육조거리는 사라졌고 나지막한 고개였던 황토현은 뭉개졌으며 일제의 축 선상에는 은행나무가 식재됐다. 한반도를 영구히 지배하려던 일본이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릴 정도로 수명이 긴 은행나무를 이곳에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 후 광화문 일대가 다시 큰 변화를 겪은 것은 박정희 정부 때였다.
광화문 바로 뒤에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는 광복 후 중앙청으로 불렸는데 이 건물이 박정희 정부 때 온전하게 복구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 잔재라며 철거를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중앙청 복구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마무리했다.
박정희 정부는 이후에도 광화문 일대에 계속 손을 댔다. 1964년 5·16쿠데타 3년을 기념해 중앙청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구간 녹지대에 위인 석고상 37점을 세우기도 했다.
1966년에는 5·16민족상 수상자인 풍전산업 사장 이한상이 상금 50만원을 서울신문사에 기탁한 것이 계기가 돼 새 동상 건립을 위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조직됐다. 이 위원회는 1970년대 초까지 활동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애국선열 15명 동상 건립을 추진했다.
광화문 네거리에 건립된 이순신 장군 동상은 당시 세워진 동상 중 하나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서울 중심에 세움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이순신과 같은 구국의 지도자로 끌어올리려 했다.
광화문 지하도도 박정희 정부 때 생겼다.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광화문 지하도를 공사 시작 후 164일 만인 1966년 9월 준공했다. 김 시장은 세종로 확장도 밀어붙였다. 세종로 확장 공사는 1971년 제7대 대통령 취임식을 앞둔 시점에 끝났다. 세종로-태평로 구간이 중앙청을 기준으로 확장됨에 따라, 중앙청에서 출발하는 일제 강점기 당시 축선은 더 강화됐다.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은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앙청으로 이전하는 예상 밖의 행보를 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국보를 전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옮긴다는 발상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당시 정부는 '모욕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겠다'는 것을 이전 이유로 들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경복궁 복원과 함께 옛 조선총독부 건물 이전을 추진했다. 정권 후반기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되면서 노 대통령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실제로 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것은 후임인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추진한 김 대통령은 1993년 8월 총독부 건물 철거를 지시했고 1995년 광복절 총독부 건물 첨탑 제거 행사를 열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형된 광화문 일대와 단절하겠다는 취지였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광화문 복원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박정희 대통령 친필인 광화문 현판 글씨를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글씨로 교체하기로 정했다. 이에 당시 야당은 박정희 유산 청산 운동의 일환이라며 반발했다. 고증 부족과 목재 표면 갈라짐 등 수년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현판에 새겨진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1865년 경복궁을 중건했을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것이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광화문광장에 '호국보훈의 불꽃'과 대형 태극기를 설치하려다가 민주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의 반대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박원순 시장 본인도 광화문광장 개조를 추진했고 일부 목표를 달성했다. 박 시장은 경복궁 월대 복원, 측면광장 조성, 지하공간 개발 등을 추진했다. 논란이 커지자 박 시장은 2019년 9월 "광장의 주인인 시민과 소통을 강화하고 의견수렴 과정을 더 가질 것"이라고 밝힌 뒤 2020년 사망했지만 그의 구상은 후임인 오세훈 시장 재임 시기에 일부 반영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권력자들은 광화문과 그 일대를 자기 철학에 따라 개조하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아 왔다. 전문가들은 광화문광장 개조의 이면에 정치인의 욕망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상복 목포대 교수는 '광장과 정치-광화문광장의 비판적 성찰'이라는 논문에서 "광화문광장은 서울을 브랜드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조형해내기 위한 문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그러한 프로젝트의 완성은 곧 그것을 기획하고 추진한 정치적 주체의 존재와 영웅적 능력을 보여주는 연극 정치"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시절의 정치권력과는 달리 유연하고 세련되며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격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민주주의 시대에 광화문광장의 주인은 위정자가 아닌 시민이라며 공간 개조 역시 그 중심에 서울시민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염복규 서울시립대 교수는 '1960~2000년대 광화문 공간의 재구축에서 전통과 현대'라는 논문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낼 광화문광장의 미래가 어떻게 되더라도 그것은 이런 역사의 흔적을 미래로 전하는 매개체로 기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광장이라는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시민의 의식으로 돌아간다"며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주인은 결국 그것을 이용하는 시민이며 그로부터 광장의 의미도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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