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 주인 살리고 죽은 개… 보존·육종해야할 품종으로 등재[자랑합니다]
거창한 오석(烏石) 기념비 전면에 개의 형상이, 최근 충남 보령의 한 석재상에서 새겨지고 있다. 새겨지는 이 개는 바로 1000년 전 호남지역에서 불길 속의 주인을 살리고 죽은, 살신성인의 의견으로 유명한 ‘오수개’이다. 내가 희한하게 생각하는 까닭은, 1000년 전에 동네 주민들이 이 개의 죽음을 기리자고 세운 의견비(충견비) 전면에 죽어서 승천하는 개의 형상을 글자 한 자 없이 그렸다(새겼다)는 것이고, 1000년 만에 다시 개의 형상을 기념비 전면에 또 새긴다는 것이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1000년 전의 승천하는 모양의 개 형상을 뒤집어 놓고 보니, 지금 1000년 후 복원한 개의 모습과 거의 100% 흡사하다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냐는 것이다. 1000년 전에 세운 기념비 뒷면에는 비 건립에 기여한 시주자 70여 명(현재까지 확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1000년 뒤인 오늘 세우는 비 뒷면에는 30여 년 동안 복원 과정에서 애쓰고, 앞으로 더욱 애쓸 50여 명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일은 어찌 된 연유일까? 어찌하여 1000년 뒤인 지금 시점에서 비 앞면에 비문(碑文)이 없이(기념비 제목만 있을 뿐) 개의 형상을 조각하는 ‘기념비’를 세우는 것일까? 그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여러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생물학적으로 복원에 성공한 ‘오수개’가 지난 6월 30일 유엔 세계농업기구(FAO)가 운영하는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의해 보존·육종해야 할 한국의 4품종 개(오수개, 삽살개, 풍산개, 불개)로 등재됐기 때문이다. DAD-IS는 동물 유전자원의 접근과 이익 공유를 위한 글로벌한 정보공유체계를 갖추고, 동물 유전자원의 보전, 관리 및 활용을 지원하는 국제 시스템이다. 현재 199개 나라 39축종(畜種) 1만5188계통의 정보가 등재돼 있다.
이에 임실군(군수 심민)과 오수개연구소(운영위원장 심재석)는 ‘오수개’라는 한국 고유품종의 국제기구 등재를 계기로 세계적인 반려동물의 성지로 부상하고 있는 임실 오수개의 위상과 그 의미(문화적 고찰)를 널리 알리고자, 오는 8월 29일 오수개 기념비를 건립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정말로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것이 그 유명한 오수의견비여. 세운 지 족히 1000년은 넘었을 것이구먼”이라는 어느 한촌 촌로들의 1000년 넘게 구전돼 오던 말이, 드디어 금석문학자 손환일 박사의 탁본에 의하여, 의견비 건립연대, 즉 간지(干支)가 확인된 역사적인 순간의 보고회가 지난해 임실문화원에서 있었다. 머지않아 종합학술대회가 개최돼 학계에서 건립연대를 공인받게 되면, 이 비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개 비’로 세계적인 토픽이 되어 반려동물 인구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각광을 받아 관광명소로 발돋움할 게 틀림없다.
그런데 대체 탁본에서 확인된 ‘임술년’은 서기 몇 년일까? 아직은 정확하게 건립의 해를 찍을 수는 없으나, 1977년 정부에서 펴낸 ‘한국문화유적총람’이란 책에서 의견사건 발생의 해를 973년(전거 추적 중)이라고 적시한 것과 최자(崔滋)가 ‘보한집’을 1254년 펴낸 것을 감안할 때, 973년과 1254년 사이의 ‘임술년’일 것은 틀림없을 터. 촌로들의 ‘1000년 전’이라는 구전과 함께 사건(973년)이 일어난 후 개띠 해인 1022년의 임술년으로 추정할 수 있을 터. 건립 시기가 사건 발생 50년쯤 후라면 맞지 않을까. 물론 1022년이나 그 이후가 아니란 법은 없지만, 의견묘가 조선 초 문인 노숙동의 한시로 미뤄 짐작건대, 그때까지도 현존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때 매몰됐는지도 모르던 의견비가 1925년 을축대홍수 때 오수천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 천변으로 끌어 올려졌고, 1939년 현재의 원동산 자리로 옮겨진 역사적 사실들도 당시 언론이 분명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최영록(생활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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