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만 늘리면 탄소중립인가… 정부 기본계획에 빠진 것
한국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제로)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2023년 4월에는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탄소중립기본계획)을 수립해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를 줄이는 정책을 발표했다. 녹색전환연구소는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에서 개인도 국가와 같이 40%를 감축해 1인당 탄소배출량을 5.9t으로 만드는 실험을 해봤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개인의 삶’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사회로 확장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실험 참여자 23명은 도전에 실패했다. 이 실험이 감축 책임을 개인에게 묻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부의 느슨한 신호, 기업은 ‘버티기’
우리가 소비하는 제품의 전 주기 탄소배출량을 보면, 스마트폰은 제작 과정에서 76%, 전기자동차는 제조와 제조 전 단계에서 65.4%, 의류는 원료 및 제조에서 88%가 배출된다. 이것은 기업이 원료 채취와 제조, 생산 단계에서 원천적으로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2023년 정부는 산업 부문 배출량 목표를 2억2260만t(14.5%)에서 2억3070만t(11.4%)으로 오히려 3.1%포인트 낮춰줬다.
기업도 버티기는 매한가지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만들고 있다. 지속가능성 공시에는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 같은 기후 정보를 공개하도록 한다.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등 4개 경제단체는 공시 의무화 시기를 2029년으로 미루고, 직접 제품 생산 외에 협력사, 물류, 제품 사용과 폐기 과정 등 전체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스코프3’ 배출량은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태양광 설치 용량은 2021년 4GW로 정점을 찍고 2022년 3GW, 2023년 2.7GW로 오히려 줄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국무조정실, 금융감독원, 감사원이 태양광 실태조사와 감사에 나서면서 관련 산업계는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독일은 2030년 전력 중 재생에너지 비중을 80%, 영국은 70%, 프랑스는 40%를 목표로 한다. 우리는 탄소중립기본계획에서 보급 목표가 2030년에도 21.6%에 불과하다. 이 낮은 목표라도 달성하려면 연간 6GW씩 신규 용량이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산업부의 행정력은 원전 수출과 추가 건설에만 집중해 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건물 옥상에 설치할 수 있는 지붕형 태양광과 베란다 태양광을 늘리는 일이다. (사)넥스트가 잠재량을 분석한 결과, 일반 건물에는 약 35GW, 산업 단지 내 건물에는 약 7GW의 지붕형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이야말로 ‘내가 쓰는 전기는 내가 생산하는’ 시민 태양광발전 붐을 일으키기에 적기다.
계획 수립해도 예산 제대로 투입하지 않아
2022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 부문이 건물과 농축수산이었다. 건물 부문은 도시가스 소비량이, 농축수산 부문은 가축 사육두수가 증가한 요인이 컸다. 탄소중립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그린리모델링(집수리 단열개선 사업) 160만 건(2022년 7.3만 건)이 목표다. 매년 전국적으로 20만 건의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계획은 수립했으나 예산을 제대로 투입하지 않고 있다. 농축수산 분야 대책은 스마트농업, 논물관리, 저메탄·저단백 사료 개발과 같이 생산 부문의 감축 정책만 있다.
소비 차원에서 육식을 줄이면서 축산농가가 적정 사육두수를 유지하고 제값을 받을 방법도 찾아야겠다. 정부와 지자체의 탄소중립 계획은 교통 분야에서 전기차 보급이 가장 많은 감축 비중과 예산을 차지하고 있다. 이동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전략, 승용차를 줄이기 위한 도로 구조 개편, 자전거와 보행 정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프랑스 파리는 올림픽에서 봤듯 소비단위 감축 정책을 펼친다. 15분 도시로 시민의 이동 거리를 줄이고, 자전거도로를 구축하고, 로컬푸드와 채식식단을 제공한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 칼라사타마의 모토는 “매일 시민들의 시간을 한 시간씩 아껴주자”이다. 원격근무와 교통인프라로 이동 거리를 단축하면 시민들에게 산책하고, 요리하고, 가족과 보낼 시간을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외식’과 ‘배달’이 아닌 신선한 채소와 집밥을 먹기 위해 필요한 정책은 ‘노동시간 단축’, 즉 ‘시간’일 수 있다.
2023년 정부는 2024년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재정규모를 17조2414억원으로 수립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확정된 기후대응 예산은 총 13조8259억원으로 3조4155억원(19.8%) 모자란다. 정부도 거대 양당도 기후위기 대응이 우선순위가 아닌 것이다.
2024년 5월까지 17개 광역지자체가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수립했고, 현재 226개 기초지자체가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개중에 뾰족한 감축 실험을 펼치는 지방정부가 있다. 경기도는 도민회의를 통해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수립했다. 도민들은 31개 시군이 경기도 전체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설치 잠재력이 높은 시군에 더 많은 보급량을 할당하는 방식에 합의했다.
충북 괴산군은 산림바이오매스를 이용해 마을에 열을 공급한다. 서울 성동구는 이번 겨울이 오기 전에 연탄 난방을 없애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반지하 전수조사를 해 위험 거처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주거 기본조례도 제정했다. 경기 광명시는 저층 주거지역의 그린리모델링을 지원하면서 시공 표준화를 시도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는 베란다 태양광 지원을 확대하고, 태양광발전차액 지원제도를 운영한다. 2022년 이후 경기도 과천 축제는 쓰레기 없는 축제로 다용용기 사용이 자리잡았다. 경북 청송은 전 군민 무상버스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모두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면서, 민생정책이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녹색전환연구소는 이번 실험을 통해 개인의 삶은 도시 구조와 국가 정책 시스템에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함을 확인했다. 따라서 우리 일상을 ‘1.5도 라이프스타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사회경제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2024년 9월7일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기후정의행진 집회가 열린다. 지금 세상은 상위 10% 부유층이 전체 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기울어졌지만, 1.5도 계산기를 두드리며 실험을 결심하는 이들과 공공저널리즘으로 이를 전달하는 언론, 기후정의행진 광장에 모일 수많은 이들이 그 자체로 대안이자,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힘껏 1.5도 라이프스타일을 가능하게 만들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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