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방송 KBS, ‘대통령의 방송’ 되나…“검증 없고 정권 홍보”

박강수 기자 2024. 8. 2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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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달 임기 마치는 최경진 시청자위원장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7일 오후 한국방송(KBS)을 통해 방송된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 백 논란과 관련해 박장범 앵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연합뉴스

최경진(66) 한국방송(KBS) 시청자위원장은 박민 사장 취임 이후 한국방송에 대해 “뉴스 저널리즘 시스템은 망가졌고,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 역할을 하지 못하면 시청자는 결국 떠나게 돼 있다”면서, 티브이 시청률과 온라인 플랫폼 양쪽에서 이미 크나큰 이탈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3일 최 위원장은 31기 시청자위원회 마지막 회의를 마쳤다. 시청자위는 시청자 권익을 대변하여 방송사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내용과 편성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감시 기구다. 방송법(88∼90조)에 따라 방송사업자에게 설치 의무가 부여된다.

최 위원장은 지난해 11월16일 취임 인사차 회의를 찾아온 박민 사장 앞에서 준비해온 입장문을 읽으며 7분여간 조목조목 제작·편성 침해 논란을 지적한 것을 시작으로 ‘땡윤뉴스’,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불방’ 등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거침없이 의견을 내왔다. 지난 1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최 위원장을 만났다.

최경진 한국방송(KBS) 시청자위원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박민 사장이 들어온 뒤 한국방송 보도는 어떻게 바뀌었나.

“저널리즘의 핵심인 권력 감시·비판 기능이 거의 사라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장범 앵커(‘뉴스 9’ 진행자)의 ‘특별 담화 대통령실을 가다’(2월7일)다. ‘윤비어천가’ 비판을 받았지만, 여전히 방송 내용을 잘게 쪼개 이런저런 뉴스에 활용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십여차례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보도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될 공약사업에 대한 검증 보도는 찾을 수 없었다. 그 밖에도 ‘시사기획 창: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 다큐는 노골적인 정권 홍보 방송이라는 질타를 받았고, 다른 지상파·종편과 달리 한국방송만 채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를 유튜브 채널에서 중계하지 않은 일도 있었다.”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역사저널 그날’ 등 프로그램이 본부장 지시로 제작 도중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사쪽에 여러 차례 책임을 추궁했으나 납득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안다.

“‘세월호 다큐 불방’과 관련한 한국방송의 태도는 ‘불통’의 극에 달했다. 강력하게 유감을 표명하고 제작 속개를 요구했으나 담당 책임자인 이재원 제작1본부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자초지종을 논의하고자 지난 3월부터 시청자위 출석을 요구했으나 일방적인 이유를 담은 서면 답변만 제출하고 마지막 정례회의까지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시청자 권익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제작책임자로서 답변 의무를 저버린 처사였다. ‘역사저널 그날’ 역시 갑작스럽게 진행자 교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여 오랜 기간 사랑받던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불협화음과 불통으로 시청자 권익만 침해된 셈이다.”

지난 2월7일 방영된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 한 장면. KBS 방송화면 갈무리

―이번 광복절에 이승만 대통령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기적의 시작’을 방영하면서 빚어진 역사 왜곡 논란은 어떻게 봤나.

“이 다큐는 이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제작자의 주장과 달리 이승만이라는 정치인의 긍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4·19 혁명 때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눠 희생자를 낸 참사는 대통령 개인과 거리가 있다는 취지로 꾸며졌고, 제주 4·3 사건은 공산 세력의 선동이 빚은 비극으로 폄훼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영화진흥위원회 심사에서도 독립영화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해 탈락했다. 그런 영화를 어떤 절차로 공영방송에서 편성하게 됐는지, 심지어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 고가에 구매한 배경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케이비에스는 시청자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편파·불공정 논란이 반복되면서 한국방송의 매체 경쟁력도 약화하는 것 같다.

“3월 회의에서 ‘시청자가 케이비에스 뉴스를 떠나고 있다’는 제목으로 의견서를 냈다. ‘뉴스 9’ 시청률이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계속 감소하고 있다(닐슨코리아 조사 1∼5월 평균 5.9%). 가장 큰 원인은 시청자층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갔기 때문인데, 유튜브에서도 한국방송은 고전 중이다. 구독자 1위로 치고 올라온 문화방송(MBC)과 영향력 차이가 크다. (케이비에스 1라디오 유튜브 채널은 박민 사장 부임을 전후해 지난해 10월 2900만에서 11월 1400만으로 조회 수가 반토막 났고, 지금은 월 300만 선이다. 문화방송은 지난 6개월 기준 시사라디오 채널이 월평균 3400만회, 뉴스 채널이 월평균 4억회를 기록 중이다.)”

유튜브 관련 데이터 분석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나타난 ‘KBS 1라디오’ 채널의 월평균 조회 수 추이. 박민 사장이 취임한 지난해 11월부터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플레이보드 갈무리

―지금 한국방송을 둘러싼 논란은 어디서부터 비롯됐나.

“거버넌스 문제가 가장 크다. 권력의 흐름에 한국방송이 그대로 먹혔다. 방송법을 개정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 때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으나 하지 않았고, 지금은 국회를 통과해도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서 거부하고 있다. 최근 야권의 방송법 개정안은 과거보다 훨씬 시청자와 시민에게 친화적인 법안이라고 본다. 국회에서 지혜롭게 처리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해 12월26일 방영된 ‘시사기획 창’의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 방송. 한국방송 영상 갈무리

―박민 사장과 각을 세웠던 31기 시청자위는 마무리되고 다음달부터는 32기가 출범한다.

“시청자위는 원래 사쪽과 가깝게 지내기 어렵고 불편한 자리다. 간부진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머지않아 한국방송을 떠날 사람이지만, 더 오래 일할 후배들에게 공영방송 케이비에스는 언론인으로서 이상과 철학을 실천할 소중한 보금자리다. 공영방송의 생명은 공정성과 공공성이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선후배 간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길 바란다.”

최경진 위원장은 독일 뮌스터대에서 미디어 상호 비평에 관한 논문으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작년까지 대구가톨릭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으로 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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