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무지(無知)한 무례(無禮)

강소윤 통번역가 2024. 8.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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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5일은 제79주년 광복절이다.

"광복(光復)"이라는 단어는 '잃었던 빛을 되찾다'라는 의미로,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동안 잃어버렸던 주권과 독립을 다시 회복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여 광복절로 명명되었다.

광복절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기념하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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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윤 통번역가

2024년 8월 15일은 제79주년 광복절이다. "광복(光復)"이라는 단어는 '잃었던 빛을 되찾다'라는 의미로,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동안 잃어버렸던 주권과 독립을 다시 회복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여 광복절로 명명되었다. 이날은 단순한 해방을 넘어, 빼앗겼던 나라의 주권과 자유를 되찾았다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광복절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기념하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날이다.

10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도 어느덧 수년이 흘렀지만, 매년 광복절이 돌아올 때면 꼭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일본 대학 생활은 동아리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갓 일본으로 건너간 새내기였던 나는 하루빨리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 녹아들고 싶다는 욕심에 자연스럽게 여느 일본 대학생들처럼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학교에는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을 지원해 주는 '학생회관'이라는 건물이 있었고, 동아리별로 배정된 방이 있었다. 동아리방에 가면 항상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고민 상담도 할 수 있었기에, 나를 포함한 많은 신입생들은 공강 시간에 동아리방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공강 시간에 학생회관으로 가서 동아리방 문을 열었다. 하필이면 공강인 사람이 많았는지 동아리방은 이미 꽉 차서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인사만 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한 선배가 나를 붙잡았다. "다 같이 더 넓은 장소로 이동하면 되지!" 선배의 배려에 고마운 마음과 감동이 차오르던 찰나였다. "식민지(植民地)에 가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식민지라니? 일본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그 단어를 가볍게 입에 올리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마냥 상냥한 줄로만 알았던 이 선배도 속내는 혐한(嫌韓)으로 가득했던 걸까? 일본은 돌려 말하는 문화가 강해서 괴롭히는 말도 돌려 말한다던데, 이게 바로 일본식 은근한 괴롭힘인 걸까?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선배를 따라간 곳은 학생회관 한쪽 구석에 있는 한산한 로비였다. 그 로비가 워낙 구석에 있어서 다른 동아리 사람들은 존재 자체를 몰라 거의 우리 동아리 사람들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한국 대학교였으면 '아지트'라고 불렀을 법한 그 장소를, 일본인 대학생들은 '식민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오랜 일본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달았지만, 그 선배를 비롯해 '식민지'라는 표현을 썼던 일본인들은 나에게 악의가 있어서 그런 표현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저 무지(無知)했을 뿐이었다. 식민지 역사 속에서 한국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일본이 한국에 어떤 가해를 했는지,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배운 것이라고는 일본이 불쌍한 패전국이라는 것, 일본인은 가엾은 원폭 피해자로 고통받았다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나서, 타인의 무지한 무례(無禮)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다. 무지에서 비롯된 무례는 의도치 않은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그 무지 역시 의도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그저 일신상의 사정으로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빼앗긴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상대의 무례에 분노만 하면 오해와 악감정이 남지만, 상대가 무지하게 된 배경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면 좋은 관계가 남는다. 강소윤 통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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