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웹툰 해외 전략, 한마디로 ‘테라포밍’
웹(web)과 만화(cartoon)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웹툰이란 단어가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전인 2004년 6월23일, 네이버에서 ‘네이버웹툰’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지면을 통해 만화를 읽던 과거와 달리 독자들이 댓글을 통해 의견을 내고 작가와 소통할 수 있었다. 다음에서 시작한 ‘다음만화속세상’보다 다소 늦은 출발이지만 작품 수를 빠르게 늘리며 선두에 올랐다. 2012년에는 무료로 운영되던 웹툰 서비스에 PPS(Page Profit Share) 모델을 도입해 창작자가 원고료 이외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콘텐츠를 유료로 판매하고 광고·지식재산(IP) 등을 통해 수익을 거두는 방식이다.
네이버웹툰은 2014년 영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2년 만에 해외 이용자가 1800만명으로 늘며 국내 이용자 수를 추월했다. 2016년 미국에 웹툰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웹툰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이듬해 한국법인 네이버웹툰을 만들었다. 현재 웹툰(북미), 라인웹툰(동남아시아), 네이버웹툰(한국), 라인망가(일본) 등의 플랫폼을 통해 150여개 국가에서 웹툰을 서비스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웹툰엔터테인먼트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었다. 웹툰 서비스를 제공한 지 20년 만이다.
네이버 사원으로 입사해 지금의 네이버웹툰을 일군 김준구 웹툰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조석·김규삼·손제호 등 네이버웹툰 1세대 스타 작가가 나란히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선 모습을 보는 국내 만화계 사람들의 심경은 남달랐다. 박인하 만화평론가는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한국 만화는 지난 100년간 ‘하꼬방(판자로 임시로 만든 집) 비즈니스’에 가까웠다. (만화 강국인) 일본에서 세로 읽기 방식의 웹툰이 독자들을 만나고 수익 올리는 걸 상상이나 했겠는가. 한국이 전 세계 엔터 시장의 중심에서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만들며 본게임을 하게 됐다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해석은 과장이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3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미국의 웹툰·디지털 만화 시장은 2018년 1억5100만 달러 규모에서 2022년 5억400만 달러(약 7000억원, 미국의 전체 만화 시장은 약 27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그 중심에 네이버웹툰이 있다. 미국 웹툰 플랫폼 시장에서 네이버웹툰의 점유율은 약 70%로 1위다. 일본에서도 올해 1분기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픽코마와 네이버웹툰의 일본어 서비스 라인망가가 각각 일본 애플리케이션 소비자 지출 1위, 2위를 차지했다. 대표적인 두 만화 강국에서 ‘새로운 지위’를 만드는 중이다.
해외 진출 10년, 네이버웹툰은 어떻게 웹툰계 글로벌 1위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이재민 한국만화문화연구소 소장은 네이버웹툰의 해외 전략을 한마디로 ‘테라포밍(화성, 금성 등의 행성을 개조하여 인간의 생존이 가능할 수 있게끔 지구화하는 과정)’이라고 요약했다. “만화는 있지만 웹툰이 없는 곳에 들어가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며 시장을 개척해왔다. 작가들은 있으나 유통망은 딱히 없고 진입로가 아주 좁은, 그런 곳들이다.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그랬다.” 카카오가 현지의 유명 작품을 한국에 수입하고 한국의 유명 작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등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네이버웹툰은 현지에서 창작자들을 위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미국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준구 대표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미국 진출 초기 창작자 400명에게 연재 제안 메일을 보내면 1명도 회신하지 않을 정도로 웹툰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다. 맨땅에 헤딩하듯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지금은 어떨까. 네이버웹툰이 확보한 전체 콘텐츠는 5500만 개, 작품을 제공하는 크리에이터는 2400만명에 달한다. 김 대표는 “웹툰 생태계를 확대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자한 끝에, 현재 엄청난 수의 창작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캔버스(Canvas)’에 올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이유로 ‘캔버스’를 꼽는 이들이 많다. 캔버스는 네이버웹툰의 ‘도전만화’ 시스템과 비슷한 아마추어 창작 공간이다. 북미 최대 흥행작 〈로어 올림푸스〉의 레이철 스마이스 작가 역시 이곳을 거쳐 데뷔했다. 로어 올림푸스는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로맨스 판타지물로,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미국 ‘윌 아이스너 어워드’에서 3년 연속 웹코믹 부문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나 혼자만 레벨업〉 〈‘킬링 스토킹〉 등이 미국 그래픽노블 시장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지난 4월부터는 ‘캔버스’에 후원 기능인 ‘슈퍼 라이크’를 도입해 독자가 작가에게 직접 후원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런 제도는 창작자들이 캔버스에 유입되거나 머물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재민 소장은 “네이버웹툰이 작년부터 캔버스에 연재하는 작가들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정식 연재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팬덤이 있는 작가나 작품이 캔버스에 머물 수 있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마블과 DC 등 히어로물 중심의 코믹스와 그래픽노블이 주도해온 미국 만화 시장에도 틈이 생겼다. 전보다 데뷔가 수월해졌다. 박인하 평론가는 “히어로물이 아닌 만화를 그리는 작가의 경우 특히 진입장벽이 높은데, 어딘가를 거치지 않고 캔버스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그 작품이 북미 대표 만화(〈로어 올림푸스〉)로 선정될 정도로 올라갔으니 유의미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코믹스와 다른 만화를 그리고 싶었던 작가들에게는 중요한 대안이 되고 있다.” 박 평론가는 ‘하트스토퍼’를 예로 들기도 했다. 10대 성장기를 다룬 LGBTQ 만화로, 단행본이 먼저 나왔지만 반응이 없어서 캔버스에 무료 연재를 했다가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테크 기업이자 콘텐츠 기업
그렇게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작가들이 네이버웹툰에 모였다. 장르 역시 다양하다. 드라마·판타지·코미디·액션·로맨스·슈퍼히어로·SF·스릴러·초자연·미스터리·스포츠·역사·호러 등 세밀하게 나뉘어 있다. 어떤 취향이라도 하나쯤은 맞는 작품을 발견할 확률이 크다. 이런 다양성이 앞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높이기도 한다. 조경숙 만화평론가는 “장르 다양성 면에서 네이버웹툰이 굉장히 노력을 하고 있다. 회빙환(회귀·빙의· 환생)이 유행한다고 해서 거기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라 공포나 스릴러·호러 같은 소수 장르를 꾸준히 유치해왔다”라고 말했다. 상장 직후 김준구 대표도 다양성을 네이버웹툰의 경쟁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몇 년, 그렇게 확보한 웹툰 IP를 기반으로 2차 사업의 확장에 힘쓰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 영상화를 추진 중인 네이버웹툰과 웹소설의 IP 수는 100개가 넘는다. 2021년 사용자 9000만명을 보유한 캐나다의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한 후 설립한 ‘왓패드 웹툰 스튜디오’도 오리지널 IP를 영상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창의적인 작가들, 작가에게 판을 깔아준 네이버웹툰, 샐러리맨의 신화가 된 김준구 대표의 리더십 등 네이버웹툰의 현재를 만든 요소는 다양하다. 한편에서는 단독의 결실이라기보다 웹툰을 세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가 더해진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조경숙 평론가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웹툰을 포함한 번역 공모전을 계속해서 진행해왔다. 웹툰을 해외에 번역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지원을 해온 셈인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네이버웹툰뿐만 아니라 여러 주체들의 힘이 모아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네이버웹툰이 테크 기업이자 콘텐츠 기업이라는 걸 자주 강조하는 김준구 대표는 앞으로의 목표를 ‘포스트디즈니(Post-Disney)’라고 밝혔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 인구가 늘고 있는 동남아나 북미 시장을 겨냥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팬데믹이 종식된 후 주춤해진 이용자 증가세, 아직 코믹스 스타일이 주류인 미국과 기존 만화를 웹이나 모바일로 보는 데 익숙한 일본의 소비자 패턴은 남은 과제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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