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저출생 현상은 '정책 실패'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저출생 문제에 대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상황으로, 선진국으로 가는 통과의례이니 크게 걱정할 부분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OECD 국가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우리 사회는 경쟁이 매우 극심한데, 그 수준은 다른 선진국들과 차원이 다르다.
저출생 원인의 핵심은 경제적 요인
또 다른 이들은 여권 신장으로 인한 양성평등 인식 확대와 MZ세대의 개인주의적 성향 등 문화적 원인을 주된 이유로 찾으며, '정신 문화 개조를 위한 캠페인성 대책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저출생 현상은 경제적인 요인에 문화적 요인 등이 결합한 매우 복합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이렇듯 복잡한 문제를 공공정책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요인과 부차적 요인을 구분해 내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런데 경제적인 요인이 핵심이고 문화적인 요인은 부차적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쓰여진 대략 290조에 가까운 저출생 예산 대부분이 사회 구조개혁이 아니라 문화적·정서적 해결에 방점을 찍으며 핵심을 피해 주변부 문제를 지원하는 것으로 낭비됐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정규직 범람하면서 저출생 심화되는 구조적 모순
우리사회의 노동 계층화는 계층을 넘어 계급화라 표현할 만큼 심각해지고 이로 인한 양극화는 더 극심해졌다. 대기업에서 공무원 및 공공기관,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임금 격차는 100대 50을 뛰어 넘어서고 있다. 즉, 파견직과 계약직 같은 비정규직 채용 형태가 사회에 범람하게 되면서 저출생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최근 OECD는 지난 7월 11일 발표한 '2024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독립된 챕터로 '인구 감소 대응'을 다루며 한국에 몇 가지를 제안했다.
보고서는 저출생 문제의 시작점을 '급속한 산업화'로 진단하며, 이 과정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맞물리면서 저출생 현상을 가속화시켰다는 것이다. 자녀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게 집중된 구조, 남성의 장시간 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질적인 청년일자리 격차 등을 그 원인으로 보면서, 이러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사교육 투자 열풍'을 불렀고, 교육·취업이 집중된 수도권 쏠림 현상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며 청년들은 결혼 등 가족 형성에 심각한 재정 장벽을 마주했다는 분석이다.
중소기업에서는 '구인난이 심각해 외국인 노동자를 더 수입해 와야 한다'고 하는데, 청년 실업은 왜 늘어나고, 경력 단절 여성들의 비정규직화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혹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젊은이들이 나태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뒤집어보면, 대기업들의 독식 구조와 이를 방조·조장하는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대기업들의 중소기업 수직계열화, 골목상권 장악 등으로 우리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사업장은 수익의 여력이 없어, 인력을 최저임금 한도 내에서 쓰고 버리는 블랙기업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더 불행한 사실은 임금 노동자의 80~90%가 이러한 중소기업에 고용돼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공기업 등의 문턱은 너무 높고, 중소기업에는 미래가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애를 낳으라고 할 수 있는가.
'법인세 최고 구간 낮추자'며 인구부 설치한다는 윤석열 정부
정부는 지난 2022년 법인세 최고세율 25%를 22%로 3%p 낮추려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각 구간별 1%씩만 낮추기로 합의하여, 2023년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은 24%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 7월 4일 국민의힘과 정부는 당정회의를 통해 또다시 법인세 최고세율 3%p 인하 추진을 논의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고세율 24% 구간은 3,000억원 이상의 수익이 발생한 기업들이 대상이다. 즉 재벌 대기업들이 그 대상인 것으로, 이런 재벌 대기업들을 향한 정부와 국민의힘의 편들기는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1일 정부는 '인구부'를 만들겠다는 '정부조직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저출산에서 저출생으로 용어를 변경하는 이유를, "정책 범위를 출산 장려 중심 정책에서 주거·교육 등 사회구조 개혁을 아우르는 저출생 정책으로 확대하려는 취지다."라고 밝혔다.
재벌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정책이 운용되어 소득구조 양극화가 심각해진 우리 사회에서 이들에게 각종 지원을 다하는 정부가 어떤 사회 구조개혁을 아우르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참으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소득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계층이 대물림되어 굳어지면, 계급이 된다. 계급사회의 도래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제 정책의 중심축이 대기업에서 서민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대로 이동해야 한다. 가처분소득 증대를 위해 사회구조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저출생 현상은 정책 실패에 대한 저항의 표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저자는 경기도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을 지냈다. 저서로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가처분소득과 불평', 다시 복지국가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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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희 가처분소득정책연구소장 ycbyun3@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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