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오염수 이후 30년’ 한탄하는 어민, 그 바다엔 피서객들이

홍석재 기자 2024. 8. 2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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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1년…25일까지 8차 방류
18일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에서는 시가 운영하는 기타이즈미 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이 늦은 피서를 즐기고 있다. 도쿄/홍석재 기자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지난 1년간 오염수 방류 자체로 지금 사람들 몸에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10년, 20년, 30년 뒤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누가 장담하겠냐.”(☞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지난 18일 후쿠시마현 어촌 신치마치에서 만난 어부 오노 하루오(72)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 8월24일 시작한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이렇게 한탄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어부였고 그는 15살 때 뱃일을 시작했다. 그의 세 아들도 업을 물려받았다. 손주들도 후쿠시마현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로 인해 그의 삶은 큰 변화를 맞았다.

사고 뒤 후쿠시마 어업은 직격탄을 맞아 중단됐다. 일본 정부가 2020년 모든 어종에 대한 출하 제한을 해제하며 후쿠시마 연안 어민들의 기대도 부풀었으나, 지난해 오염수 방류 사태를 맞았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라는 방사성 물질 제거 설비로, 물과 비슷한 성질을 지닌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제거한 뒤 바닷물로 희석해 방류하기 때문에 피해는 없다며 후쿠시마 어민들의 반대를 꺾고 오염수 방류를 강행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꺼리는 것은 헛소문으로 인한 피해를 뜻하는 ‘풍평 피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노는 “오염수를 수십년간 (바다에) 방류하는데, 삼중수소 등으로 인한 바다의 피해를 정말 예측할 수 있는 것이냐”고 말했다.

‘더 이상 바다를 더럽히지 마라 시민회의’ 활동가 가타오카 데루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이들에게 이 근처에서 잡힌 어떤 생선을 먹일 수 있을지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그는 “어민 가운데는 자신들이 분노할수록 수산물이 판매되지 않을 거라는 모순적 상황에 놓여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하마다 다케시 전 일본 도쿄해양대 교수(수산학) 등 전문가 8명은 책 ‘알프스 처리수(오염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현지 어민들은 오염수 방류를 용인하면 ‘바다를 팔았다’, 반대할 경우엔 ‘국익을 훼손시킨다’고 비판받는다”며 “(일본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어민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신치마치에서 남쪽으로 25㎞쯤 떨어진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에서는 시가 운영하는 기타이즈미 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불과 25㎞ 거리의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지난 7일부터 ‘8차 오염수 방류’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피서객들은 물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피서객은 “수질이 좋아서 두 아이도 수영하고 왔다. 방사선은 전혀 없다”고 일본 정부 발표를 온전히 신뢰하는 모습이었다.

도쿄전력은 지난해 8월24일 이후 이미 일곱차례 오염수 방류를 끝냈다. 한차례 방류에 17일 정도가 걸리고, 하루 약 460㎥씩 모두 7800㎥ 정도의 오염수가 배출된다. 지금까지 모두 5만4734㎥ 분량의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나갔다. 지난 7일 다시 8차 방류가 시작돼 25일 종료가 예정됐다.

오염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 뒤 원전에 빗물 등이 흘러들어가 방사성 물질과 접촉하면서 발생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사고 뒤 오염수를 물탱크에 보관해왔으나,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작업을 위해 더 이상 물탱크를 늘릴 수 없다며 2021년 4월 오염수 해양 방류를 결정했다. 도쿄전력은 19일 기준 탱크에 보관된 오염수는 131만㎥ 분량으로 탱크 수용 한계의 96%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알프스로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 대부분을 기준치 이하로 제거하기 때문에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라고 주장한다. 방류 전 오염수를 바닷물에 섞어 한차례 희석한 뒤, 후쿠시마 앞바다로 이어진 1㎞짜리 해저터널을 통해 버리고 있다.

지난해 8월24일 일본 후쿠시마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관계자들이 바닷물로 희석한 방사성 물질 오염수가 해저터널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일본은 이날 오후 1시3분께부터 후쿠시마원전 부지 내 물탱크에 보관되어 있던 오염수를 원전 앞바다에 연결한 해저터널을 통해 방류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교도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오염수가 바다 환경과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극히 미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전성을 보여주겠다며 알프스로 걸러진 이른바 ‘처리수’ 안에 광어 등을 키우고, 이를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 등에 사나흘 간격으로 공개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지난 1년간 오염수 배출 과정에서 나온 삼중수소 총배출량을 8조6천억베크렐(2023년 4.5조베크렐, 2024년 8월 현재 4.1조베크렐)로 집계하고 있다. 한국의 고리원전에서 나오는 삼중수소(한해 49조베크렐)보다 낮은 수치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오염수 방류 전부터 이런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데 사고로 수소폭발이 일어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과 정상 가동 중인 다른 원전을 삼중수소 배출량만을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이 많다.

최소 수십년간 계속될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방류가 언제 끝날 수 있을지도 기약이 없다. 일본은 후쿠시마원전을 2051년까지 폐로하는 목표를 내세우고 폐로가 완료되면 더 이상 오염수도 생성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일본은 폐로를 위해 가장 중요한 작업인 ‘데브리’(핵연료가 녹아내려 주변 구조물과 엉겨 붙은 덩어리) 제거에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원전 1~3호기 원자로 바닥에 남아 있는 총 880t에 이르는 데브리에선 사람이 가까이 가면 1시간 안에 죽을 정도의 고선량 방사선이 새어 나온다. 이런 이유로 사람 대신 로봇이 들어가 작업을 해야 하는데 로봇 성능에 계속 문제가 생기고 있다.

도쿄전력은 오는 22일 파이프를 원격 조작하는 방식으로 시험적으로 3g 이하의 데브리를 꺼내기로 했다. 사고 뒤 13년이나 지나서야 시작한 이 시험 작업이 성공한다 해도 880t이나 되는 데브리를 언제 다 꺼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데브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하루 80t 정도의 방사성 물질 오염수가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앞세워 국제 여론전을 펼치고 있지만 직접 영향을 받는 주변국 상당수는 납득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30일에도 우장하오 주일대사를 통해 “일본이 오염수 해양 방출을 일방적으로 추진해 핵오염의 위험을 전세계에 계속 확산시키고 있다”며 “중국은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러시아 역시 일본 정부가 일본산 수산물의 안전성을 입증할 정보를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지난해 8월24일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시작하자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처를 취했고 러시아도 지난해 10월 같은 조처를 취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50㎞가량 떨어진 어촌 마을 신치마치에 어선들이 늘어선 사이로 한 주민이 낚시를 하고 있다. 후쿠시마/홍석재 기자

일본의 오염수 관리 부실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 9일 후쿠시마원전 2호기 내부의 사용 후 핵연료 냉각 수조에서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오염수 25t이 흘러나왔다. 도쿄전력은 오염수가 배수구를 통해 건물 지하로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며 외부로 유출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관리 부실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지난 2월에는 후쿠시마 바다로 방류 중인 오염수 정화 장치에서 5.5t이 누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닫혔어야 할 밸브가 실수로 열려 배관에 남은 오염수와 세정용 물이 섞여 배기구로 흘러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에도 배관을 청소하던 직원 2명이 오염수를 뒤집어써 치료를 받은 바 있다.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의 책임을 묻기 위해 사고 당시 도쿄전력 경영진을 고소한 ‘후쿠시마원전 고소·고발단’의 원고 단장인 무토 루이코는 한겨레에 “도쿄전력은 오염수 방류 뒤, 바다에 방사성 물질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방류로 어떤 영향이 발생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알프스 처리 과정에 오염수가 누출된 일까지 있는데 오염수 방류를 당장 그만두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바다를 더럽히지 마라 시민회의’ 등 일본 시민단체들은 오염수 방류 만 1년이 되는 오는 24일 오염수 방류 중단을 위한 국제 연대 행사인 ‘글로벌 행동 2024’를 열기로 했다.

후쿠시마/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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