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로 강남 집값 겨냥? 규모·속도 제한적 [비즈니스 포커스]

2024. 8.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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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입지에 아파트 지을 곳 많지 않아…개발 속도 빨라야



드디어 정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최후의 수단’인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카드가 나왔다. 서울 집값 상승세가 더는 두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올랐다는 신호다.

8월 8일 나온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에는 ‘투기거래 근절’, ‘시장 교란행위 단속’ 등 이번 정부 들어 찾아보기 어려웠던 용어도 몇 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다음 날 해당 방안에 대한 세부 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나선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신고가가 많이 나오는 지역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등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타깃은 분명해졌다. 수도권 집값 상승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핵심지 부동산을 집중 타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연히 시장의 눈길은 강남권 그린벨트로 쏠리고 있다. 서울시는 11월 첫 대상지를 공개할 예정이다.

후보군의 윤곽은 대체로 나와 있다. 2020년 주택시장 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던 문재인 정부 역시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했는데 당시부터 물망에 올랐던 지역의 이름이 또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문제는 이들 지역에서 강남에 ‘물량 폭탄’을 안겨줄 만한 규모의 공급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지역 부동산과 전문가들은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개발제한을 풀 만한 곳은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이미 해제해 아파트를 공급한 데다 각자 위치나 지형상 보존돼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위치 좋은 평지 드물어

강남구 세곡동 소재 운전면허학원 인근. 사진=민보름 기자


주택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과정에선 세심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상지를 잘못 선정했다가는 큰 반대에 부딪힐 수 있어서다.

1971년 박정희 정부에 의해 첫 지정된 그린벨트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을 해왔다. 서울 등 도시에 부족한 녹지를 제공하고 식수를 보호하는 한편, 도시 연담화를 방지하는 역할이 컸다. 도시 연담화란 서울 같은 대도시가 주변 지역을 흡수하며 규모를 넓혀가는 현상이다.

특히 매번 그린벨트 해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난개발과 산림훼손을 막는다는 원래 취지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반대 여론이 높았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녹지 보존을 이유로 서울 그린벨트 해제를 강하게 반대하면서 계획이 무산된 바 있다.

또 정부가 기대한 주택공급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그만큼 수요자들이 선호할 만한 입지여야 한다. 일자리가 풍부한 업무지구로 향하는 교통이 좋고, 지형 또한 평지에 가까운 것이 최선이다. 인근 생활인프라를 공유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 같은 측면에서 늘 유력 대상지로 꼽히는 곳이 강남구 세곡동 자동차운전면허학원 일대와 서초구 내곡동·우면동, 송파구 방이동 등이다. 이들 지역은 대체로 비닐하우스나 경작지가 많아 녹지 보존 효과가 낮고 대중교통 이용 또한 용이하다.

세곡동과 내곡동, 우면동에는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개발한 보금자리주택이 자리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개발제한을 해제한 38만6000㎡ 규모 수서역 인근 그린벨트에는 현재 수서역세권 행복주택이 자리하며 복합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지금까지 개발되지 못한 부지에 주택을 집중 공급해야 한다.

 

 최고 후보는 방이동…민원이 변수

서초구 내곡동 개발제한구역 일대. 사진=연합뉴스


세곡동 운전면허학원 일대 남은 땅 상당 부분은 고층 아파트 건설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성남 소재 서울공항 때문이다. 세곡동 소재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비행기 활주로 주변 땅은 아파트 개발이 어렵다”며 “전원주택 단지를 짓거나 활주로 인근을 피해 좁은 토지에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곡동, 우면동도 마찬가지다. 개발이 사실상 불가한 공익용산지 등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공익용산지는 ‘산지관리법’에 따라 재해방지와 같은 목적으로 산림청장이 지정한다. 따라서 산림청과 협의 없이는 개발이 어렵다.

이 같은 정보 때문인지 개발 호재가 들려와도 투자자들의 토지 매수문의는 뜸한 상태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그린벨트 해제 소식이 들리더라도 매도인의 호가만 높아질 뿐 이미 시세가 공지시가보다 몇 배가 높은 상태에서 현금보상을 받으면 오히려 손해”라며 “수서 행복주택 등 최근 토지보상 사례를 보면 예전과 달리 땅이 3000평(1000㎡) 있어도 아파트 분양권을 주는 경우가 드물다”고 설명했다.

결국 강남권 그린벨트 중에는 경기 하남시 감일동과 맞닿은 송파구 방이동 일대, 그린벨트는 아니지만 수서역 차량기지가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토지 전문가 김종율 부동산보보스 대표는 “현재 거론되는 서초, 강남 그린벨트 일대는 공익용산지 등의 녹지보존 문제로 개발이 쉽지 않지만 일부 부지에 전원주택 단지 등을 조성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있다”며 “대단지 아파트를 조성하려면 현재 거론되는 후보 중에는 송파와 하남 일대가 그나마 활용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방이동 그린벨트는 총 5540가구 올림픽선수기자촌 아파트 단지 바로 뒤편이다. 인접한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도 내년 초 입주를 앞두고 있다. 반대 민원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 땅은 46만4270㎡ 면적으로 1979년 운동장 부지로 계획됐다가 사업이 무산되며 2020년 해제돼 그린벨트로 남았다. 송파구는 이곳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방이동 그린벨트는 2018년에도 공공주택 개발이 추진됐으나 공사소음 및 아파트 대량공급 등에 대해 인근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한 바 있다. 당시 재건축 안전진단, 인허가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존 아파트 부지에 주택공급을 할 수 있는데 엉뚱한 곳을 개발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종율 대표 역시 “그린벨트보다 도심 재건축을 활성화하거나 이미 지정된 20여 곳에 달하는 공공택지지구 조성 사업을 앞당기는 것이 낫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4년 만에 그린벨트 토지 보상을 마치고 아파트를 공급했다”며 “현실적으로 과거처럼 신속한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면 새 쌀을 꺼내기보다 이미 씻어둔 쌀로 밥을 짓는 게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그린벨트 해제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 그린벨트 해제 정책은 거기에 얼마나 물량공급이 가능하고 시장안정 효과를 얻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모 아파트 단지가 1만 가구에 가까운 규모인 것을 고려하면 각 그린벨트 대상지에 1만~4만 가구 규모를 공급해 강남을 비롯한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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