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할 때마다 이복현 허락 구해야?... 초법적 권력기관 된 금감원에 불편한 시선

오귀환 기자 2024. 8.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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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24년 8월 20일 17시 29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두산그룹의 사업 개편안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제동이 ‘장기화’하면서 자본시장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권한을 남용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장사가 분할, 합병이나 신규 상장 또는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 자금 조달을 하려면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내야 한다. 투자자들 참고 목적으로 제출하는 상장사의 증권신고서를 금감원이 반려하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다. 금감원이 건건이 제동을 걸기 시작하면, 스스로 법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 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산그룹이 법적으로 문제 될만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가 갖고 있는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에 넘기는 안을 골자로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소액주주들은 두산로보틱스는 고평가, 두산밥캣은 저평가받은 채로 주식 교환이 진행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상장회사회관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24.6.26/뉴스1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16일 두산밥캣 합병과 관련한 정정 증권신고서를 공시했다. 두산그룹은 개편안 승인을 위해 지난달 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중요사항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 차례 퇴짜를 맞았다. 두산그룹의 이번 증권신고서도 반려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이 ‘무제한 정정’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지난 8일 “(증권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을 두지 않고 정정 요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퇴짜를 맞을 경우, 내달 25일로 예정된 두산그룹 사업 재편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는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소액주주들이 불만을 갖는 포인트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교환 비율 1대 0.63이다. 두산밥캣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합병 후 두산로보틱스 63주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두산밥캣이 연간 1조원대 영업이익을 거둔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줄곧 적자를 기록한 만큼 교환 비율이 적정하지 않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문제는 두산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상장사 간 합병은 법적으로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할인, 할증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전례를 보면 금감원은 오히려 상장사 간 합병에서 할인이나 할증을 적용했을 때 문제를 제기했었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두산로보틱스가 고평가됐다고 두산이 인정하더라도, 주가를 할인해서 교환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이 경우 두산로보틱스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장사 간 합병 때 법적으로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제한한 것도 애초 취지는 지배주주가 계열사 간 합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비율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었다. 금감원이 위법하지 않은 행위에 제동을 건 것은 권한 남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로보틱스 순자산비율(PBR)을 10배로 만든 것도, 두산밥캣 PBR을 0.6배로 만든 것도 모두 시장이 한 일인데, 욕받이는 두산그룹이 하고 있다”며 “두산밥캣이 저평가라지만, 오랜 기간 시장에서 적정가로 판단한 가격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금감원도 이런 비판을 의식해 우회 카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증권신고서 정정뿐만 아니라 지난 13일엔 주주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은 자산운용사 실명을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정정은 ▲중요 사항이 거짓으로 기재되거나 ▲중요 사항이 기재되지 않거나 ▲불분명한 경우에만 요구할 수 있다. 교환 비율이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취지와의 부합 여부로 정정을 요구할 경우 ‘정무적 판단’이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최근 분위기라면 유상증자도 밸류업에 역행하는 행위라며 못하게 할 것 같다”면서 “두산 사례가 두산밥캣 소액주주들에게 그렇게 억울하다면, 이참에 법을 고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이 점점 초법적 기관이 되고 있다”면서 “법적으로 근거가 없는 곳에도 칼을 들이밀면, 기업은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아진다”고 토로했다.

금감원 개입이 오히려 주주 권리를 뺏는 것이란 의견도 있다. 두산밥캣 기존 주주는 사업 재편에 반대할 경우 주당 5만459원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날 두산밥캣 주가는 3만9800원으로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현재 주가 대비 26.7%의 이익을 낼 수 있다. 다만 두산그룹은 두산밥캣 매수청구권 총행사금액이 1조5000억원을 넘으면 교환을 취소할 수 있다고 앞서 공시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금감원은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은 주주총회에서 최종 결정될 사안으로, 금감원은 이에 대한 검사 권한이 없으며 주주들의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충실히 제공될 수 있도록 증권신고서를 심사하고 필요시 정정을 요구하고 있다”며 “합병 비율을 조정할 때까지 신고서 정정을 무제한 요구하겠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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