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안타까운 의료현장, 붕괴되는 의학교육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2024. 8. 21.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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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로이터=뉴스1


수련병원에서 가장 큰 행사는 입·퇴국식이다. 매년 2월이 되면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가 돼 의국을 떠나고 새로운 수련과정을 시작하려는 제자들이 들어온다. 병원 교수진과 그리고 의국 출신 선배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대한 축하자리가 열린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입·퇴국식도 하지 못했다.

나 역시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군 입대를 앞두고 입·퇴국식에서 할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술도 많이 마시게 되는데 우리가 수련받던 시절 모과에서는 입·퇴국식이 있는 밤에는 응급실 침상을 2개 비워놓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문화가 없어졌지만 새롭게 수련을 시작하는 의사로선 무사히 전문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의욕이 교차하는 것은 비슷하다. 또한 젊은 날 3년에서 4년이란 긴 시간을 배우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다 보면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게 된다.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신경외과 전공의 부인은 남편이 집에 잘 오지 않고 밤에만 잠깐 왔다가 새벽에 나가니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이 첩으로 오해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수련과정을 겪는다고 해서 전공의와 교수는 서로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오래돼 수련받던 시절 감정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지금도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항상 제자들에게 가르쳐준다. 가르쳐주다 보면 배우게 되고 더 명확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병원에서 수련받는 의사들이 교수에게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제일 많이 가르쳐주는 사람은 바로 선배 전공의다. 서로 배우고 가르쳐주면서 한 명의 실력을 갖춘 전문의가 배출되는 것이다. 교수 선배 후배 동료 전공의가 서로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배우고 가르치면서 젊은 의사의 인술은 점차 완성되고 교수들의 실력은 녹슬지 않고 계속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그래서 같은 의국에서 맺어진 관계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 수련병원의 배우고 가르치는 기능은 거의 마비된 상태로 이제 7개월이 지나고 있다. 30년 방사선종양학 의사로 살았고 수백 편의 SCI논문을 게재하고 아직도 연구와 진료를 하지만 항상 모르는 것이 있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어 이런 일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 그 이유는 그런 것을 가르쳐줄 제자가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찾아보고 아하 그래서 그렇구나 하면 끝난다. 지난 4월쯤 병원을 떠난 제자들과 한자리에 모여 같이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이런 상황은 금방 끝날 것이니 조만간 예전 생활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리고 그때는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이제 사표가 수리되고 제자와 스승의 관계는 없어졌고 이 공백을 어떻게 메꿀지 너무도 걱정이 앞선다.

의사는 환자가 있기에 존재하는 직업이고 그래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자 천직이다. 그러니 이 일을 나는 중단할 수 없다. 오늘날의 의료시스템 붕괴는 마치 동일본 대지진처럼 예고 없이 의료현장에 닥쳐왔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유발했고 일본은 큰 고통을 겪었듯이 의대정원을 증원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는 관철됐지만 그 후폭풍은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다. 개선할 점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또한 의대진학의 전 국민적 열망이 강하니 정치적 관점으로 의대정원을 증원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부는 정책을 수행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국민적 불편함이나 예상치 못하게 파생되는 문제를 예측하고 대비책도 있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점은 오늘날 세계 최고의 의료수준을 이뤄 해외 동포들까지 난치병이 생기면 찾아오는 국내 의료수준은 정부의 지원보다 의료계 자체의 노력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꼭 알았으면 한다.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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