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으로 재건축 이주 수요 돌려막는 '땜질 대책'

김성아 기자 2024. 8. 21.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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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영구임대주택 다시 지어 1기신도시 이주민 흡수한다"
전문가 "취약계층 쫓아내는 모양새, 더 섬세한 고민 필요"
정부가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의 이주 대책으로 '영구임대주택 재건축'을 활용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재건축 이주 수요를 또 다른 재건축으로 감당하겠다는 구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1기신도시 가운데 하나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 단지. /사진=김성아 기자
정부가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재정비 사업의 관건으로 꼽힌 이주 대책으로 '영구임대주택 재건축' 카드를 꺼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수도권에 있는 영구임대주택을 재건축해 1기 신도시 재건축에 필요한 이주 주택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지만 영구임대주택은 지방자치단체가 건설(매입)한 임대 주택으로 임대 기간이 50년 이상이다.

영구임대주택을 밀어버리면 이들의 이주대책도 필요하기 때문에 재건축 이주 수요를 또 다른 재건축으로 감당하겠다는 이 같은 구상이 비판을 받는다.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1기 신도시 등 노후계획도시 재건축을 위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인 '노후계획도시정비기본방침'(안)을 발표했다. 이주 대책 관련 방안도 포함됐는데 영구임대주택을 먼저 재건축해 1기 신도시 이주민에게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1기 신도시에서는 2027년부터 매년 2만~3만 가구가 착공에 들어가게 되는데 각 지자체는 이에 따라 대규모 이주수요가 발생하면서 이주 물량이 부족해지거나 인근 전셋값이 크게 흔들리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이주 대책 수립을 요구해 왔다.

이에 국토부는 저밀도인 만큼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 연면적의 비율)을 올리면 신규 주택 공급에 유리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가 소유자여서 일반 정비사업에 비해 사업 속도를 앞당길 수 있는 영구임대주택을 이주 대책으로 제시했다.

1기 신도시 내 영구임대주택은 경기 성남시와 경기 고양시, 경기 부천시 등에 총 1만3950가구가 있다.


"1기 신도시 이주대책이 취약계층 쫓아내는 모양새"


전문가들은 이주 수요를 감당할 뾰족한 묘수가 없는 만큼 성공적인 재건축 진행을 위해선 정부가 더 섬세한 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진은 1기 신도시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아파트 밀집 지역. /사진=뉴스1
정부가 제시한 영구임대주택 재건축 사업이 순항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기 신도시 이주민 수용을 위해 영구임대주택 재건축에 들어가면 기존 영구임대주택 거주민들을 다시 이주시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데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영구임대주택은 입주민들의 소유가 아닌 만큼 재건축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간 주택을 재건축하는 경우 재건축을 통한 자산 증식을 기대해볼 수 있어 재건축 수요가 높지만 영구임대주택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이주 문제도 있다. 영구임대주택을 재건축 할 경우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1만4000가구가 이주해야 하는데 영구임대주택은 다른 공공임대주택보다 임대 기간이 길고 보증금이 저렴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등이 주로 거주한다.

자금 여력이나 사회 활동이 비교적 적어 주거 이동이 제한적인 사회취약계층을 거처에서 쫓아내는 모양새인 만큼 사회적 반발이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임시 주택을 제공한다고 해도 비용이 발생하는 데다 또 다른 임대주택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일각에선 고물가로 인한 원자잿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치솟은 상태에서 낮은 사업성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미 신규택지 8만가구 공급 등 재정 부담이 큰 LH가 사업성이 불분명한 영구 임대 재건축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도 분명치 않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국토부 도시정비지원과 관계자는 "영구임대주택 거주민들의 이주문제에 대해선 심도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거주민들이 이주하기 용이하고 재건축이 진행되고 난 이후에는 30년이 넘은 영구임대아파트를 새로운 아파트로 지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마련할 것"이라며 "사업성의 경우 용적률을 늘려 분양을 통해 높일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제시안은 뚜렷한 해법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영구임대주택 재건축 방식이 이주 수요를 흡수하는 방안 가운데 하나로 쓰일 수는 있지만 1기 신도시 이주민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혁신적인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이주 수요를 감당할 뾰족한 묘수가 없는 만큼 성공적인 재건축 진행을 위해선 더 섬세한 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전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영구임대주택 거주민에 대한 정책은 구체적으로 마련된 것이 없다"며 "규제 완화를 통해 재건축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주 대책과 관련된 사회적인 고려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장에서 소화가 가능할 만큼의 재건축이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섬세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도 정부의 계획에 우려의 목소리를 보탰다. 서 교수는 "이주 대책을 마련할때 구체적으로 기존 임차인의 이주 대책을 우선해야 하고 용적률을 높였을 경우 주거환경 악화의 문제와 기존 1기 신도시 주민들을 흡수할 수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재원 마련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지는데 영구임대주택을 재건축해 분양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쉽지는 않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주 대책을 마련해 사회 혼란을 막고자 하는 정책 취지는 좋으나 어떻게 정책을 실행해 나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건축비가 치솟은 상태에서 재원 문제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돼 구체적인 실현 방향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김성아 기자 tjddk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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