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승려와 '물 갈등' 귀농 70대, 면사무소에 총기 난사

김송이 기자 2024. 8. 2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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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해결 안 되자 악감정, 2명 사살…무기징역형[사건속 오늘]
복수 위해 총기 허가증 취득, 사격 연습…승려는 어깨 맞고 생존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엽총을 난사해 공무원 2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 모 씨(당시 77세)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안동경찰서에서 대구지법 안동지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8.8.23/뉴스1 ⓒ News1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2018년 8월 21일 오전 9시15분께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 77세 노인 김 씨가 엽총을 들고 들이닥쳤다. 분노에 가득 찬 김 씨는 엽총을 발사했고, 가슴팍에 총알이 박힌 공무원 2명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사건 발생 4년 전 봉화군 외딴곳에 귀농해 소규모로 아로니아 농사를 짓던 김 씨를 그토록 분노에 차오르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 "수압이 너무 안 좋다"…새로 온 이웃의 '모터 펌프 설치'

군 간부 출신인 김 씨는 원래 수원에 살고 있었는데 후배가 봉화에 귀농을 권했다. 이에 김 씨는 2014년 11월부터 봉화군 소천면 임기2리에 정착했다.

김 씨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닌 오지에 자리를 잡았다. 이 때문에 김 씨는 주민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는데, 귀농을 권유했던 후배마저 김 씨가 이사 온 후 세상을 떠났다. 그런 김 씨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은 김 씨 집에서 50m 정도 떨어진 작은 사찰의 승려였다.

시골에 정착한 김 씨는 큰 문제 없이 2년을 보냈는데 2016년 원래 있던 승려가 나가고 새로운 승려 임 모 씨(당시 48세)가 이사 왔다. 새 이웃이 된 임 씨는 자신의 사찰이 지대가 높아 수압이 좋지 않은 것이 불편하다며 모터펌프를 설치하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자기 집 수압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탐탁지 않아 했으나, 임 씨는 김 씨의 집에 피해가 생기면 모터펌프를 제거하고 다시 원상 복구하겠다고 약속했고, 김 씨는 공사를 수락했다.

ⓒ News1 DB

◇ 노인과 승려의 신고 전쟁

그런데 임 씨는 모터펌프를 설치한 뒤 '김 씨네 수압도 좋아지지 않았냐'며 대뜸 설치비와 전기료를 공동부담하자고 요구해 김 씨의 화를 돋웠다. 또 당시 가뭄으로 물이 부족한 상황이 되자, 김 씨는 임 씨네 모터펌프 때문에 물이 안 나온다고 생각해 두 사람의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

김 씨와 말다툼하던 임 씨는 "김 씨가 나를 총으로 쏴 죽인다고 위협했다"며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는 "내가 언제 그랬냐"며 펄쩍 뛰었고, 실제로 당시에는 김 씨가 총을 소지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경찰은 화해를 권유하고 넘어갔다.

김 씨 역시 "사찰에서 태우는 쓰레기 냄새 때문에 못 살겠다"며 수차례 면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했으며, 하루는 임 씨가 기르는 개 10마리가 김 씨 집 앞으로 몰려가 위협을 느낀 김 씨가 임 씨를 신고하는 등 이들의 다툼은 2017년 내내 이어졌다.

ⓒ News1 DB

◇ "한통속 아냐? 다 쓸어버려야겠다"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2018년 7월 김 씨는 자신의 주소지가 등록돼 있는 수원으로 가 총포 소지 허가를 취득했다. 이어 수렵면허에도 합격한 김 씨는 봉화군청에서 유해조수 포획 허가도 취득했다.

김 씨는 엽총 한 자루와 실탄 200발을 구입한 뒤 관할 파출소에 이를 영치했다. 이후 김 씨는 2018년 7월 25일부터 사건이 일어난 8월 21일까지 까치 등을 쫓는다며 약 한 달간 10여차례 총기를 반출해 집에서 사격 연습을 했다.

김 씨의 복수심은 극에 달해 있었는데, 임 씨를 향한 분노는 모터펌프 설치업자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았던 마을 이장, 파출소 경찰, 면사무소 공무원에게까지 번져 있었다.

엽총 난사 사고가 난 소천면사무소 유리창에 탄흔이 남아있다. 2018.8.21/뉴스1 ⓒ News1

◇ 승려 놓치고 면사무소에서 난사…대형 참사 막은 박종훈 의인

범행을 결심한 김 씨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 7시50분께 파출소에서 평소처럼 총을 인출했다. 김 씨는 먼저 오전 8시 15분께 이장에게 전화해 만나자고 했다. 이장이 병원에 가야 한다며 안 된다고 하자, 김 씨는 농사일을 나가 있던 임 씨를 기다렸다. 오전 9시 10분께 귀가하던 임 씨는 김 씨에게 어깨를 맞고 혼비백산으로 달아났다.

임 씨를 놓친 김 씨는 9시 16분께 면사무소를 찾아갔고, 근무 중이던 공무원 손 모 씨(48)와 이 모 씨(38)가 가슴팍에 총을 맞았다.

당시 면사무소에는 임신부를 포함한 20명 정도가 있었고, 자칫하면 김 씨의 난사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했는데 목숨을 걸고 뛰어든 이가 있었다. 경로당 보수 공사 관련 일로 업무를 보러왔던 건축업자 박종훈(당시 53세) 씨였다.

김 씨에게 달려든 박 씨는 총신을 잡아 흔들었고 이 과정에서 두 발의 추가 발사가 있었으나 다행히 아무도 맞지 않았다. 박 씨가 겨우 김 씨의 총을 뺏어 던지자, 다른 면사무소 직원이 함께 김 씨를 제압했다.

김 씨는 곧 출동한 경찰에 긴급 체포됐고, 총에 맞은 손 씨와 이 씨는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이후 박 씨는 LG복지재단에서 주는 LG의인상과 상금 3000만 원을 받았다. 상금 전액을 유족에게 기부한 박 씨는 2019년 2월 대통령 국민포장도 수상했다.

경북 봉화군 '엽총 사건'에서 범인을 제압해 추가 인명피해를 막은 공로로 'LG의인상'과 대통령 국민포장을 받은 박종훈 씨. ⓒ News1

◇ 무기징역 선고…여생은 감옥에서

2019년 1월 16일 대구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7명 가운데 사형 의견을 낸 배심원은 3명이었고 나머지는 무기징역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김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김 씨가 치밀하게 준비해 저지른 범행으로 피해자의 유족과 국민을 정신적 충격에 빠뜨렸지만 천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양형기준과 배심원 의견 등을 종합해 형량을 정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넉 달 뒤 2심 재판부도 1심 판단을 유지했고, 결과를 받아들인 김 씨는 형을 살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syk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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