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대응댐? 일제 때부터 나온 얘기…농사도 건강도 다 망친다”
“산에 밤·맥문동·고추밭 가꿔 살아, 보상받을 땅 없는데…”
“저기 푹 파인 곳 있쥬? 옛날부터 저기를 막는다고 했어유.”
“저걸 막으면 우리 농사는 이제 워째유.”
지난 9일 충남 청양군 장평면 죽림리 칡목(아랫마을) 주민들은 부여군 은산면 가곡리와 경계를 이루는 산 아래 브이(V)자 계곡을 가리켰다. 행정구역으로는 장평면 화산리 산3번지다. 이곳은 지난달 30일 환경부가 발표한 기후대응댐 후보지 14곳 중 하나다. 환경부는 기후대응댐이라고 밝혔지만 주민들은 별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댐 때문에 되레 농사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이아무개(78)씨는 “상류 쪽은 찬성하는 주민들이 많다는데 우리 마을은 뒤숭숭하다. 우리 집이 잠기는지, 농사에 영향은 없는지 뭘 알아야 대책이라도 세우지 않겠느냐”며 답답해했다.
스물두살에 이 마을로 시집왔다는 김아무개(79)씨는 “여기는 산골이다. 땅 없어도 밤나무 키우고 맥문동, 고추 농사를 지어 여섯 시동생을 뒷바라지하며 먹고살았다”며 “농사를 망치고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둘째 치고 집 외에 보상받을 땅이 없는데 댐 만들면 어디 가서 뭐 먹고 산단 말이냐”고 한탄했다.
김정구(67) 칡목 이장은 “1990년, 2001년, 2013년 등 3차례 댐 만든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 동네에 댐이 지어진다는 말은 일제강점기부터 나온 얘기다. 잊힐 만하면 한번씩 댐 얘기가 나온다”며 “우리 마을도, 묵은논(윗마을)도 다들 농사에 영향이 없을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건 아닌지 몰라 어수선하다”고 전했다.
김 이장은 댐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만수위 때 어디까지 수몰되는지, 보상 수준 등을 알아야 할 텐데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온 주민이 반대하던 2013년과 분위기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농사짓기가 어려운 고령자들은 땅을 보상받아 여생을 편히 지내고 싶다는 분들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죽림리는 윗마을·아랫마을에 48가구가 산다. 충남도 편입지역위치도(잠정)에는 이 가운데 15가구가 수몰 대상이다. 이 위치도에 따르면 수몰 대상은 부여군 은산면 거전리 74가구 중 44가구, 은산면 용두리 40가구 전체(12일 현재 37가구 거주), 청양 장평면 지천리 79가구 가운데 40가구 등 4개 리 241가구 가운데 139가구다. 댐 상류 지역인 청양 대치면 작천리에는 67가구가 거주하는데 수몰 예정 가구는 없다.
윗동네인 지천리 까치내마을 주민들도 댐 얘기가 나오자 “주민 의견은 묻지도 않고 댐을 만드네 마네 이러는 게 진절머리가 난다”며 손사래를 쳤다. 여러해 전 귀농했다는 김아무개(65)씨는 “30여년 전부터 죽림리~가곡리 계곡을 막아 70m 높이의 댐을 건설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여기는 분지여서 지금도 지천 안개가 해가 중천에 뜨도록 가시지 않는데 댐 만들면 안개가 심해져 고추 등 특산물 농사를 망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 마을은 환경이 우수해 농촌 체험 프로그램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70대 주민은 댐 건설에 반대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앞 개울에서 쏘가리와 빠가사리(동자개)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는다. 수달은 오래전부터 살았고 요즘 밤낚시를 하다 보면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며 “이런 환경을 지키지 못한다면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마을 이장들과 농민단체들로 이뤄진 지천댐반대대책위원회는 “댐을 건설하면 발생하는 안개로 인해 일조량이 부족해져 구기자, 고추, 밤, 사과, 블루베리 등 농작물 생육과 품질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농업경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청양은 초고령화 사회다. 안개 때문에 호흡기 질환이 유행하면 고령의 주민들 건강이 악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충남 청양에서 200여㎞ 떨어진 전남 화순군 사평면도 환경부가 발표한 기후대응댐 건설 후보지다. 이곳 주민들도 댐 건설 발표 이후 시름이 깊다. 벼농사가 대부분인 주민들은 30년 넘은 주암댐 안개 피해가 동복천댐 건설로 심해질 것을 걱정한다.
사평면에서 55년째 논을 일군 이몽영(74)씨는 “일교차가 심해지는 가을 수확철엔 오전 10~11시까지 안개가 낀다”며 “물기가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을 해야 하니 일할 시간이 부족할뿐더러 벼가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해 청미(푸른 쌀)가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사평면 이장단장을 역임한 김병섭(66)씨는 “오죽하면 사평 벼는 모두 가축 사료로 쓰인다는 말이 있다”며 “낙과 피해, 호흡기 질환, 일조량 부족 등 피해를 말하려면 끝이 없다”고 거들었다.
환경단체는 섬진강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봤다. 동복천은 보성강을 거쳐 섬진강과 만난다. 김종필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섬진강은 이미 수량이 부족해 염해를 입는데 지류에 또 댐이 생기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청양 화순/송인걸 김용희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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