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광복절과 ‘안동무궁화’ 이야기

관리자 2024. 8.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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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복절은 심각하게 분열된 국론을 보며 착잡한 마음으로 보냈다.

7월19일 '안동무궁화'를 주제로 그 연혁과 특징, 육성과 보급, 그리고 문화콘텐츠로 활용방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론분열과 각자도생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궁화는 지역민의 애국심을 일깨워 안동에서만 독립유공자 391명, 자정순국자 10명을 배출해 안동을 '독립운동의 성지'라 부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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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선비 닮은 우리 고유품종
민족의식 높이기 위해 식재 추정
외세침략 혼란 속 애국심 일깨워
시민 자발적 보존활동 나서 주목
공동체의식·정체성 찾는 계기로

올해 광복절은 심각하게 분열된 국론을 보며 착잡한 마음으로 보냈다. 지금까지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이날만은 온 국민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해방의 감격을 되새겨왔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물질숭배 풍조가 만연하면서 광복을 맞아 두근거리던 가슴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도 예전 같지 않더니 이번 광복절은 기념식마저 별도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러니 행사장에서 나라의 상징 무궁화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궁화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여름 꽃이다. 이규보의 시 “하루도 지탱하기 어려운 것이 (중략) 떨어진 꽃 차마 보지 못해 도리어 무궁이라 했지만 과연 무궁토록 있겠는가”에 무궁화란 이름이 나타나지만 흔히 (목)근화 혹은 훈화초 등으로 불려왔다. 구한말 애국가를 만들면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가사를 붙이고 무궁화보급운동 등을 통해 나라꽃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누가, 왜 무궁화를 국화로 선정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7월19일 ‘안동무궁화’를 주제로 그 연혁과 특징, 육성과 보급, 그리고 문화콘텐츠로 활용방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1992년 안동댐 수몰지역의 식생을 조사하던 이영로·임경빈 교수가 예안향교 중정에서 오래된 재래종 무궁화를 발견, 한국식물분류학회에 ‘Hibiscus syriacus var. micranthus’란 고유품종으로 등록했다. 일반 무궁화에 비해 크기가 작고 개화 시간이 길어 단아한 선비를 닮았다고들 한다.

‘안동무궁화’는 외세의 침탈이 본격화된 1900년 무렵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심었다고 추정된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이만도·김도화·김도현 등 지역의 나이 든 선비들은 ‘위정척사’의 기치를 들고 의병을 일으키고, 나라 잃고 수치스럽게 살 수 없다며 목숨을 끊기도 했다. 김동삼·유인식·이상룡 등 혁신유림들은 지역에 ‘협동학교’를 설립해 신식 교육을 통한 계몽운동을 펼치거나 만주로 가 해외 독립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국론분열과 각자도생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궁화는 지역민의 애국심을 일깨워 안동에서만 독립유공자 391명, 자정순국자 10명을 배출해 안동을 ‘독립운동의 성지’라 부르게 됐다.

2010년 예안향교의 ‘안동무궁화’는 수령이 다해 고사했다. 이 무궁화의 가치를 알고 있던 시민들이 ‘안동무궁화보존회’를 조직하고 죽은 무궁화의 명맥을 잇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꺾꽂이를 해서 기르던 산림청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후계목을 찾아 보존하는 한편 이를 증식시켜 독립기념관과 3·1운동 기념비, 이육사 시탑 등지에 심어 풀을 뽑고 물을 주며 해마다 안동무궁화축전도 개최하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이해가 걸린 것도 아닌데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함께한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해방 후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온 덕에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염치나 의로움보다 이해타산이 앞서면서 공동체의식은 물론 국가의 정체성마저 희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동무궁화’ 이야기가 남북분단과 양극화, 지역간 갈등 등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 명실상부한 선진국이자 국민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나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어른들과 이를 그리워하며 무궁화를 심고 가꾸는 사람들의 실천이 유난히 돋보이는 광복절이었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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